1심 징역 20년, 2심서 심신미약 인정돼
“술 많이 마셔 다른 대상으로 생각한 듯”
부산에서 흉기로 이웃을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항소심 법원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돼 감형받았다. 술을 마시다 러시아 괴한이 덮친다고 착각해 방어한 것이라 주장한 그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 죽어간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며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부산고법 형사2부(박운삼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 A 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에 대한 보호관찰 2년 명령은 그대로 유지했다.
A 씨는 올해 1월 3일 오후 6시께 부산 영도구 자신의 집 거실에서 흉기로 50대 여성 B 씨를 수십 차례 찌르고, 둔기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려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B 씨는 다음 날 부산 서구 한 병원에서 숨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 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다 첫 공판기일에 철회했지만,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했다”며 “A 씨는 피해자와 원한 없이 잘 지내던 사이였고, 주량보다 훨씬 많은 막걸리를 마셔 매우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A 씨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했다”며 “당시 녹취된 내용 등을 종합하면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가 아닌 다른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여 심신미약 상태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 동거인이 A 씨에게 사과를 받았고, A 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약 10년 전부터 이웃이었던 B 씨 집에서 사건 당일 오전 11시부터 막걸리를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B 씨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이동해 술을 더 마신 A 씨는 같은 날 오후 6시께 갑자기 격분하며 B 씨를 수십 번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이날 오후 6시 30분께 경찰에 전화로 직접 신고해 “내가 사람을 죽였다, 죽어간다”고 말하며 둔기로 B 씨 머리를 계속 내려쳤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상태에서도 B 씨 등을 여러 차례 찌른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 과정에서 A 씨는 범행 직전 B 씨를 러시아 괴한으로 착각했고, 자신을 공격하려고 해 방어 목적으로 흉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A 씨 측은 “당시 러시아 말을 하는 시커먼 남자가 다가와 목을 조르려 했고,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방어를 한 것”이라며 “상대방을 B 씨로 인식했던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가 B 씨를 살해한 살인죄가 성립되며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와 B 씨는 함께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었고, 갑자기 B 씨를 러시아인 괴한으로 인식한 경위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설령 러시아인 괴한으로 생각했더라도 ‘사람’을 살해할 고의를 가졌던 건 분명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또 “결국 주량을 훨씬 초과하는 막걸리 4병을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112 신고 당시에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