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인 구달의 당부

천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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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 박사가 지난 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였다.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평생을 야생 침팬지 연구 등 동물행동학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인간의 특성으로 여겨졌던 도구 제조와 사용을 야생 침팬지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196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침팬지가 다양한 소리와 몸짓으로 풍부하게 의사소통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1977년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야생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생태계 보전을 위한 인간의 변화를 촉구했다.

구달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96년 첫 방한을 시작으로 수차례 방문했다. 2014년 11월 구달 박사가 찾은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에는 그를 기리는 ‘제인 구달 길’도 조성됐다. 2020년엔 한국 곰 사육 종식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통해 “지각이 있는 곰을 웅담용으로 사육하는 끔찍한 관행을 종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3년 방한 때에는 비무장지대를 찾아 한반도 평화 회복과 생태 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구달 박사가 생전에 강조한 메시지의 골자는 생명을 사랑하고,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넷플릭스는 지난 3일 ‘명사들의 마지막 말(Famous Last Words)’이라는 인터뷰 시리즈의 첫 편을 공개했다. 이 시리즈는 대상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내용을 공개하는 형식을 취한다. 첫 주인공은 구달 박사였다. 녹화는 지난 3월 진행됐다. 구달 박사는 차분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인류가 미래 세대를 위해 기후 위기 극복 등의 노력을 해줄 것을 촉구하는 등 당부를 이어갔다. 작은 행동이 수백 만, 수십 억 번 곱해지면 거대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구달 박사는 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등도 언급했다. 그는 “머스크의 우주선에 태워 그가 발견할 행성으로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며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을 명단에 올렸다. 이들의 행동이 공격성으로 서열을 다투는 ‘알파메일’ 침팬지와 닮았다는 설명이다. 힘으로 지배력을 과시하는 리더십 때문에 위태로워진 글로벌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인 셈이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요즘 세상이 그에겐 ‘야생으로의 퇴행’으로 보였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차 강조한다.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의 절절한 당부를 보며 다시 희망을 길어올린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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