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그네새

천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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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번식을 통해 개체를 이어가는 것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대다수 야생동물들은 생존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렝게티의 건기가 시작되면 누와 얼룩말 등은 풀을 찾아 북쪽 마사이마라 평원으로 이동한다. 순록도 알래스카 남단과 북단을 오가며 삶을 이어간다. 야생동물 중에서도 조류는 이동 권역이 가장 광범위하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제비,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황로 등의 여름철새, 가창오리 등 겨울철새들도 동남아시아나 북극권 등의 더위 또는 추위를 피해 수천km를 이동한다.

철새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기착하는 철새는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텃새도 일반적인 철새도 아니기에 ‘통과철새’라고 불리는 이른바 ‘나그네새’들도 종종 눈에 띈다. 나그네새들은 번식지 또는 월동지로 이동하던 중 우리나라에 잠시 들러 먹이를 먹고 체력을 보강한다. 그런데 이번에 국내 탐조인들이 울산 방어진 동쪽 약 20km 해상에서 관찰 활동을 진행한 결과 지느러미발도요, 북극도둑갈매기 등 총 10종 3만 1000여 마리의 희귀 나그네새들을 대규모로 발견했다. 군집을 이뤄 바다에서 작은 어류를 잡아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알래스카와 캄차카반도에서 번식한 뒤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 중간 기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울산 앞바다가 나그네새들의 중요한 이동 경로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나그네새들의 쉼터는 바다만이 아니다. 부산 낙동강 하구 등도 나그네새에게 중요한 중간 기착지다. 주로 이동 거리가 긴 도요새나 물떼새 종류들이 잠시 머물며 체력을 보충한다. 낙동강 하구에서 자주 목격되는 큰뒷부리도요의 경우 유라시아 대륙 북부와 알래스카 서부에서 번식한 뒤 월동을 위해 유럽,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호주 등까지 날아간다. 최근 충남 보령에서는 알락개구리매가 10년 만에 포착됐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던 중에 한국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인간의 무관심 때문에 한국을 찾는 철새 개체 수는 감소하고 있다. 예전 낙동강 하구를 대표하는 여름철새였던 쇠제비갈매기 등은 행적조차 묘연하다. 이 와중에 날아든 다양한 나그네새들의 소식은 무척 반갑다. 철새뿐만 아니라 나그네새의 이동 경로에 자리한 바다와 하천, 습지 등을 보호하려는 한층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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