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식·균열·스크래치… ‘훼손된 사진의 힘’이 보여준 미학

김은영 기자 TALK new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부산갤러리 30일까지 박남사 개인전
‘PATINA 파티나’로 ‘개념 사진전’
“부식이 곧 아름다움이 되는 역설”
박남사, 파티나. 부산갤러리 제공
박남사, 파티나. 부산갤러리 제공


“부식이 많이 돼 폐기 직전의 사진들만 골랐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진 아카이브를 보유한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자료 가운데 물리적 손상으로 보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돼 퇴출 위기에 놓인 사진들만 골라서 원본 혹은 재가공한 사진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지난 15일 부산 사하구 부산갤러리(낙동대로 82-7)에서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계속되는 ‘PATINA 파티나–부산 순회전’이다. 전시 작가는 비주얼 아티스트 혹은 시각예술가로 부를 수 있는 박남사(본명 박상우, 서울대 미학과 교수)이다. 2023 대구사진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했다.

박 작가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날마다 수억 장의 사진이 생성되기 때문에 사진의 우주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사진은 초과잉이며 현대인에게 시각적 피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는 예술 밖의 공간에서 버려지거나 버려질 운명에 있는 낡은 사진들을 뒤졌다. 그에게 사진은 더 이상 ‘찍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박남사, 파티나. 부산갤러리 제공


박남사, 파티나. 부산갤러리 제공


사진 원본에 대한 저작권 문제는 없는 것일까. “지금은 누구나 접근 가능합니다. 전부 오픈돼 있고 원화질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작가적 시선이 개입한다. “이 시선에서 중요한 것은, 100년이 훌쩍 넘은 19세기 사진 중에서도 부식, 균열, 스크래치 등 시간의 상처를 고스란히 지닌 채 버려질 운명에 처한 익명의 이미지들을 소환하는 거죠. 곰팡이가 슬어서 부식된 상태 그대로의 원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크롭(Cropping)하거나 리프레이밍(reframing), 네거티브(Negativ) 등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아카이빙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평범했던 19세기 초상화는 잘라내고, 지우고, 클로즈업하는 과정을 통해 폭풍 치는 파도 형상이 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현대 추상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제목 ‘파티나’도 여기서 나왔다. 라틴어 파티나(patĭna)는 얇은 접시, 얇은 층을 의미하지만, 청동과 같은 금속 표면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부식층을 가리킨다. 물리적 손상의 흔적인 파티나가 시간이 만든 미적 형상으로 재인식된 것이다. 박남사는 훼손된 아카이브 사진에 ‘부식이 곧 아름다움이 되는’ 역설을 적용했다.

부산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박남사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그다음 의문이 든다. 자신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도 아닌, 이 사진도 박 작가의 작품일까. 그의 대답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새로운 사진을 탐색하는 동시대 일부 작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타인의 사진을 차용해 자신의 작업 소재로 삼아 왔어요.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작품이 대표적이죠. 마르셀 뒤샹의 변기(작품명 ‘샘’)는 또 어떻고요? 전통적인 포토그래퍼 개념은 아니에요. ‘컨셉추얼(Conceptual·개념) 사진’이라고 할까요. 이번 전시는 매체만 사진인 거죠. ‘개념 사진전’입니다.”

박 작가는 10년 전인 2015년에도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이란 제목으로 미국 정부에서 필요 없다고 판단한 사진에 구멍을 뚫은 10만 장을 구해서 전시를 열었다. 또 단색조 회화, 즉 모노크롬 열풍을 냉소적으로 고찰한 ‘뉴 모노크롬: 회화에서 사진으로’를 열기도 했다.

이번 전시도 원래는 순회전으로 기획한 건 아니었는데, 연결 또 연결되는 전시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전시를 대전 갤러리에서 초청했고, 대전 전시를 본 부산갤러리 대표가 부산 전시로 유치했다. 이게 또 내달엔 중국으로 가게 된다.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성에서 열리는 핑야오 국제사진페스티벌에 초대받았다.

부산갤러리 외부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갤러리는 부산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지난해 10월 문을 연 신생 갤러리이다.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월요일 휴무). 문의 051-715-1839.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