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⑥ 너와 나-부재를 말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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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9. 오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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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재의 '재현'과 기억의 '윤리'

영화 '너와 나'는 세월호 이후 한국 영화가 상실과 애도를 어떻게 감각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응답이다.

조현철 감독은 참사를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여학생 세미와 하은의 일상을 따라가며, 비극이 닿기 직전의 사적 영역을 섬세히 포착한다.

이 평범한 하루는 곧 끊어질 시간을 품은 채 흘러가고, 관객은 예감된 비극의 그림자를 그 위에 덧씌워 보게 된다.

사건의 중심을 비껴가며 주변을 응시하는 이 전략은 한국 영화의 애도 서사를 확장시킨다.

재현보다 여백을, 진술보다 감각을 택한 영화는 ‘기억의 윤리’를 새롭게 제시한다.

영화는 세월호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 침묵의 언어를 영화 전체의 정조로 변환시킨다.

캠코더를 팔아 여행비를 마련해야 하는 설정과, 불길한 징후처럼 스며드는 이미지들은 모두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흔든다.

관객은 이러한 단서들을 따라 비극의 실체를 스스로 복원한다. 영화는 비극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며, 영화 '너와 나'는 개인의 상실을 공동체의 감정으로 번역한다.

그렇게 영화는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남긴다.


■ 시점의 흔들림과 애도의 방식

서사를 이끄는 것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불안이다.

세미의 불길한 꿈은 예감이자 동시에 예언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가 된다.

이야기는 명확한 중심을 두지 않은 채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상실 이후의 시간이 시각적으로 재현된다.

관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재’인지, 과거를 회상하는 하은의 ‘기억’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혼란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의 방식이다.

이 불확실성은 애도의 감각, 즉 사라진 존재를 느리게 되살려내는 시간의 형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에게 다소 거리감을 남긴다.

현실과 환상이 분리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서사는 감정의 여운을 깊게 하지만, 동시에 서사적 단서가 희미해져 몰입이 쉽지 않다는 지점 역시 공존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너와 나'는 다시 볼수록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는 불분명했던 시간의 균열과 상실의 이미지가 다시금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 비로소 영화가 지닌 감정의 결이 드러난다.

관객은 혼란을 겪으면서도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해는 느리게 스며들고, 그 느림 속에서 영화의 애도는 비로소 형체를 얻는다.

연출은 신인답지 않다.

낮은 채도의 색감과 얕은 심도의 카메라는 각 장면을 기억의 파편처럼 보이게 만든다.

두 인물을 좇는 친밀하지만 닿지 않는 거리감이 영화의 정조를 이룬다.

박혜수와 김시은의 연기는 이러한 연출의 여백을 설득력 있게 채운다.

두 배우는 덜 여문 10대의 발랄함과 조급함을 그려내며 이야기에 핍진함을 부여한다.


■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영화 '너와 나'는 세월호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그 비극의 잔향을 영화의 질감 속에 스며들게 했다.

이는 우리 시대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기억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현철은 애도를 완성된 상태로 그리지 않는다.

애도의 불완전함, 끝내 닿지 못하는 감정의 틈을 그대로 남김으로써 그 결핍 자체를 애도의 한 형태로 제시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애도는 눈물의 폭발이 아니라,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시간으로 표현된다.

영화 '너와 나'가 우리 시대의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그 윤리적 태도에 있다.

영화는 거대한 진술이나 스펙터클 대신 잊힌 존재들의 여백으로 상실을 말한다.

현실과 꿈,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에게 묻는다. 그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애도의 행위에 들어가 있다.

기억이란 결국, 남겨진 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언어가 아닐까.

● 영화 '너와 나' 이야기


하나,
배우 조현철의 첫 장편 연출 작품이다.

둘,
밴드 혁오의 리더 오혁이 이 작품을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셋,
초고 단계에서는 세월호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었으나, 조현철은 학생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사건을 암시하는 납골당 장면과 버스에서의 라디오 장면을 추가했다.

글 : 영화평론가 조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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