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청주] [앵커]
아픈 가족을 오랜 시간 돌보다가 살해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 청주에서도 아내가 치매를 앓던 남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공적인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팩트체크 K, 이자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청주의 한 아파트입니다.
추석이었던 지난 6일, 50대 여성이 이 화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민 신고로 119 구급대가 출동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여성은 20년 넘게 치매를 앓아온 남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여성은 사업에 실패해 10억 원대 빚까지 떠안고 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주민/음성변조 : "아저씨가 치매였었대요. 요양원에 있다가 (추석에) 와가지고... 아저씨가 맨날 돌아다니긴 했어요. 그러다 한동안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더니 요양원에 있었대요."]
지난 4월, 부산에서는 오랜 기간 치매를 앓아온 형을 간병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린 동생이 친형을 살해했습니다.
이보다 한 달 전,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남편과 아들이 10년 동안 투병하던 80대 여성을 살해하고 한강에 투신했다가 구조됐습니다.
이른바 '간병 살인' 범죄로, 2006년부터 2023년까지 확인된 것만 228건에 달합니다.
시기별로 2006년에는 3건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26건에 달하는 등 피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자살해 '공소권 없음' 처리된 사건이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간병 요인이 배제된 경우를 포함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걸로 추정됩니다.
전문가들은 간병의 책임을 온전히 가족이 떠맡는 사회적인 구조를 간병 살인 범죄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돌봄과 생계를 함께 감당하다 보니, 간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계도, 정신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한 달 평균 간병비는 370만 원으로,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1.7배에 달합니다.
[전용호/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간병의 업무를 하다 보니까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소득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더 빈곤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돌봄이 개인의 책임으로 남아 있는 한, 이런 비극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김성희/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실장 : "저는 (간병 살인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 간병을 지속할 수 있는 대체 돌봄 체제나 경제적 지원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고령화 사회, 간병을 '사회적 책임'으로 보고 돌봄 부담을 나눌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자현입니다.
촬영기자:김장헌/그래픽:박소현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