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으로 칭하겠습니다." (1차 공판기일, 검찰 공소사실 발표) 검찰총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지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에서 파면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 윤 전 대통령의 재판을 따라가 봅니다. |
지난 1월 3일 오전 6시쯤, 체포영장을 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계자들이 한남동 관저에 도착했습니다. 체포 대상, '대통령'이었습니다.
공수처와 경찰 관계자 약 80명이 닫혀있는 관저 정문을 뛰어넘어 통과했습니다.
크고 작은 몸싸움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경호처가 차량을 동원해 겹겹이 세워둔 저지선은 끝내 뚫지 못했습니다.
공수처는 관저를 불과 수백 미터 앞두고 빈손으로 철수했습니다.
1월 15일 두 번째 영장 집행 시도가 이어졌고, 공수처는 윤 전 대통령을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경호처가 총을 준비했고, 여기에 윤 전 대통령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습니다.
■경호처 전 간부 "尹, '총 한 번만 쏘면 되지 않느냐' 했다 들어"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부장판사 백대현) 심리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재판에는 김대경 전 대통령경호처 지원본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공수처의 1차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된 뒤, 경호처 간부들은 2차 집행을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김 전 본부장은 이때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영장을 집행하는 인원을 체포할 수도 있으니, 케이블 타이를 구해달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광우 전 경호본부장은 철조망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 전 본부장은 경호처가 케이블타이와 철조망을 넘어, 권총까지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특검 측이 "이광우 전 본부장이 '공포탄을 쏴서 겁을 줘야 한다'며 38구경 권총을 구해달라고 했느냐"고 묻자, 김 전 본부장은 "맞다" 답했습니다.
그는 "이광우의 단독 요청이라기보다 경호처장(박종준)도 같이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김 전 본부장은 갖고 있던 공포탄 20개 정도를 옮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김 전 본부장은 이 총을 윤 전 대통령이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만난 박종준 전 경호처장이 '대통령께 건의해 수사기관에 출석하게 하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며 ' 대통령이 총 한 번만 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고 전했다는 겁니다.
"영장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포탄을 쏘라는 의미냐"는 특검 측 질문에 김 전 본부장은 공포탄으로 이해했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인 피고인은 경호처를 지휘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경호처의 경호 활동은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지, 대통령인 피고인이 구체적인 지시를 하였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송진호 변호사, 윤 전 대통령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1차 공판(지난달 26일)> |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경호처 관계자들에게 "경찰은 니들이 총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두려워할 거다, 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좀 보여줘라"고 말하는 등 체포영장 집행을 적극적으로 막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경호처의 자발적인 대응이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김 전 본부장 증언이 사실이라면 체포영장 집행 방해에 윤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게 됩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경호처의 대응이) 적법한지 여부는 경호처가 판단 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전 본부장은 "최종적 판단은 아니지만, 법원의 적법한 영장에 의해 진행되는 절차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대통령이냐' 물으니 '어떻게 알았냐'
윤 전 대통령이 자신과 소통한 사령관들의 비화폰 통화 기록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단 증언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김 전 본부장은 박종준 전 경호처장 비서관으로부터 '처장님이 비화폰 지급 내역과 통화 기록을 지우라고 한다'는 말을 전달받았습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고백한 직후였습니다.
삭제를 지시한 대상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세 명이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에 박 전 처장에게 '대통령 지시냐' 물었고, '어떻게 알았냐'는 답이 돌아왔다는 게 김 전 본부장 증언입니다.
김 전 본부장이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박 전 처장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본부장은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그러자 박 전 처장은 김 전 본부장을 며칠 동안 사무실에 부르며 재촉하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질책했습니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거듭 보고하자 '삭제'가 '보안 조치'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보안 조치'가 무얼 의미하냔 특검 측 질문에, 김 전 본부장은 "기록을 지우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계속된 지시는 "기록을 삭제하란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두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김민수 전 대통령경호처 IT 기획부장도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으로부터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특전사령관 등과 (윤 전 대통령이)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언론에) 나오니까, 통화를 삭제하라는 지시로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부장은 김 전 본부장과 함께 '보안성 강화 방안' 보고서를 작성해 김 전 차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지시를 그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 시간이라도 끌기 위해서였습니다.
김 전 차장은 이 보고서를 보고 '내가 보안 조치를 하라고 했지, 언제 삭제하라고 했느냐', '이런 보고서를 쓰면 얼마나 오해하겠느냐'고 말하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024년 12월 5일 해임된 뒤, 비화폰을 반납하지 않고 언론에 통화 내용까지 공개했다"며 이에 대한 조치 차원에서 이루어진 논의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부장은 "홍장원 건과 증거인멸 지시는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보석 기각되자 불출석…'추가기소' 사건도 궐석 재판 전망
지난달 26일, 첫 공판과 함께 열린 보석 심문에 출석했던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또 한 번 '건강상 이유'를 들어 불출석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보석이 허가되면 재판에 협조하겠다'며 '조건부 협조'를 약속했는데, 보석이 기각됐으니 앞으로 재판에도 불출석할 전망이 커졌습니다.
재판부는 이 불출석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서 "교도관 조사 후, 차회 기일부터는 궐석 재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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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조은수 손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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