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제2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는 없다

공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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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정상회의 만찬장으로 지어졌다가 부대행사장으로 변경된 국립경주박물관 행사장(왼쪽 흰색 건물) 전경.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천년고도' 경북 경주시가 손님맞이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10월 31일~11월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이곳 경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21개 회원국 정상이 모이는 APEC이 국내에서 개최되는 것은 2005년 부산 이후 두 번째다. 특히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주에서 펼쳐질 국제 외교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때인 지난해 6월 경주가 인천과 제주를 제치고 APEC 개최지로 확정된 이후, 불과 1년 만에 대규모 정상회의를 준비해야 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주 회의장인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와 국제미디어센터는 개막 석 달 전이 돼서야 공정률 절반을 넘겼다.

‘APEC 2025 KOREA’ 홍보 현수막이 걸린 경주역 정문 일대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경주 시내 국립경주박물관 안뜰에 짓고 있던 정상만찬장은 주방 시설과 화장실 미비로 급기야 지난 9월 보문관광단지 내 라한셀렉트호텔(옛 현대호텔) 대연회장으로 변경됐다. 여기에 각국 대표단과 기업인이 묵을 숙소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경주와 가까운 포항 영일만항 앞에 2척의 크루즈선까지 띄우는 등 '제2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다만 일각의 우려와 달리 APEC 개최를 한 달 앞둔 지난 9월 30일 찾아간 경주시는 정상회의를 치를 준비를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APEC 급은 아니지만 경주는 그간 크고 작은 국제회의를 유치했던 다년간의 경험이 있다. 국제컨벤션협회(ICCA) '2023년 세계 국가별·도시별 국제회의 개최 실적 순위'에 따르면, 경주는 국제회의를 가장 많이 개최한 국내 기초자치단체 중 1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다.

정상회의가 열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HICO) 전경.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손님맞이로 분주한 경주

경주의 대표 관문인 경주 건천읍의 경주역(옛 신경주역) 일대도 APEC을 앞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은 약 2만명. 이 중 상당수는 서울에서 KTX와 SRT 고속열차를 이용해 경주역을 통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대비한 듯 역사 내 통로 곳곳에 'APEC 2025 KOREA'라고 적힌 전광판이 설치됐고, 정문 앞으로는 홍보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경주역을 거쳐 주 행사장인 보문관광단지로 이동하는 참가자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 서비스도 마련돼 있었다. 역사 내 관광안내소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제작된 안내지도도 비치됐다.

경주역에서 30년째 관광안내원으로 활동 중인 이모씨는 "일본어가 주력 언어지만, 외국인 방문객이 워낙 많아 여기에 있는 안내원 모두 영어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광안내소 운영 시간도 10월 한정으로 기존의 오전 9시~오후 6시에서 오후 9시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경주역에서 차로 약 35분 거리에 있는 보문관광단지 역시 APEC을 앞두고 '꽃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보문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 '경감로'에서는 도로변 화단에 꽃을 심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단지 진입로에는 신라를 상징하는 꽃 조형물까지 설치돼 있어 APEC 개최지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졌다. 보문관광단지 내 놀이공원인 경주월드를 방문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30대 여성은 "서울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도로부터 이렇게 꾸며놓으니 행사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상 만찬이 열릴 라한셀렉트호텔 대연회장 내부.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정상만찬장으로 지정된 보문관광단지 내 라한셀렉트호텔도 손님맞이 채비로 분주했다. 라한셀렉트호텔은 과거 현대호텔 간판을 달고 있을 때인 2005년 부산 APEC 참석차 방한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던 곳이다. 2009년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방한한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를 찾았을 때 환영 연회를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라한셀렉트호텔은 경주 시내 5성급 호텔 2곳 가운데 국제회의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경주 APEC 때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이곳에 여장을 풀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관계자도 "대연회장은 약 1500㎡ 규모로, 3개 홀을 칸막이로 나눴다가 필요 시 하나로 연결해 최대 2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며 "과거 한·미 정상회담도 대연회장에서 열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초 정상만찬장으로 계획했던 국립경주박물관 내 만찬장이 건물에서 40m 떨어진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반면, 호텔 지하 1층에 있는 대연회장은 입구 옆에 널찍한 화장실이 붙어 있었다. 지하주차장과도 곧장 연결돼 있어 VIP 이동 동선도 상대적으로 짧아 경호에도 여러모로 유리해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05년 11월 17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연합뉴스


회의장·전시장도 마무리 단계

APEC 정상회의 주무대가 될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역시 기자가 찾았을 때 마무리 정비 작업으로 분주했다. 2015년 3월 국제회의 전문 시설로 개관한 이곳은 APEC 개최를 앞두고 부분 개보수를 실시했다. 이날 찾은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는 주 출입구 지붕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화백컨벤션센터 바로 옆에 짓고 있는 국제미디어센터 역시 해외 취재진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 5월 착공해 9월에 공사를 마친 국제미디어센터는 연면적 6000㎡ 규모로, 약 4000명의 내외신 기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메인 브리핑룸을 비롯해 기자실, 인터뷰룸 등 취재 인프라를 갖췄는데, 외부 공사는 거의 끝났고 센터 앞 하천 미관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인 만큼 푸른 잔디가 잘 자라도록 마른 잡초를 정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PEC 정상회의 부대행사로 '기술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될 경주 엑스포대공원 내 경제전시장도 막바지 공사에 돌입했다. 황룡사 9층탑을 음각한 경주타워가 있는 엑스포대공원에서 만난 현재은 엑스오비스 공간사업 3본부 이사는 "전시장은 연면적 약 2700㎡ 규모의 1층 건물로 이미 건축은 완료됐으며, 준공률은 97%"라며 "주요 시스템도 갖춰져 이제 그래픽을 부착하고 영상을 송출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김상철 APEC 준비지원단장은 "현재 정상회의장, 국제미디어센터, 경제전시장 등을 비롯한 주요 인프라 시설은 대부분 공사 마무리 단계이며,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최종행사 리허설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세계 최고위급 인사들이 오는 만큼 남은 기간 숙박, 수송, 의료 안전 등 서비스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 세계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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