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乙의 반란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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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장관 후보자가 갑질 논란으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갑질의 피해자는 다름아닌 그 밑에서 일하던 여러 명의 보좌관이었다. 20명이란 설도 있었고 40명이란 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애초부터 그 목에 방울을 매는 건 국회의원과 보좌관 관계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원은 논란 끝에 낙마했으나 과정이 지난했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를 끝까지 감쌌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제가 아는 한 낙마할 만한 갑질은 없었다"고 마지막까지 그를 감쌌다. '제가 아는 한'이란 표현이 섬뜩했고, '낙마할 만한 갑질'이란 표현에서 다시 한번 섬뜩했다. 발언의 근거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개된 발언만으로 추측하건대 전자는 그 동네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고, 후자는 갑질은 갑질인데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다는 정도의 인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움직인다는 건 정설처럼 굳어져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라는 표현이 계속 걸렸다. 다른 사람의 주관적 수치심과 상처를 본인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 사회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겪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단어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은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라는 말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가장 고용이 불안정한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보좌관·비서관과 같은 국회의원 보좌진이다. 민간기업에서 해고는 법과 내규에 따른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기업이 사람 뽑기를 꺼리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고용안정만큼이나 고용의 유연성도 중요하고, 둘은 어떤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걸 요즘 나도 많이 느낀다. 보좌진은 다르다. 의원 말 한마디에 짐을 싸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정당의 의원이 보좌진을 교체하면서 논란이 됐던 것 자체가 국회의 현실을 잘 드러낸다.

해고가 끝이 아니다. 소문이라도 잘못 나면 그들은 국회에서 다시 일하기 어렵다. 여당과 야당 의원끼리 소리지르며 싸워도 보좌진을 뽑기 위한 평판조회를 할 때는 같은 편에 선다. 보좌진협의회를 통해 제보를 받는다 해도 말이 중간에 새어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자신이 당한 갑질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일은 전직을 할 결심이 설 때 가능한 일이다.

보좌진들이 갑질 의혹을 털어놓는 건 어떻게 보면 '을의 반란'이다. 유튜브 영상에 '을의 반란' '을의 참교육'이란 키워드를 치면 많은 영상이 나온다. 댓글이 환호 일색이다. 이런 을의 '이유 있는 반란'이 자유로워야 사회가 더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번주 김범준 기자의 기사를 보니 반란을 일으킨 을을 색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여권 지지층 내부에서 있는 모양이다. 세상 모든 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건 돼도,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밑에서 일하는 을만큼은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는 건 이중잣대다. 그래선 세상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그들을 색출해서 쫓아낼 생각보단, 그들에게 갑질을 멈추지 않는 의원들을 찾아내는 것이 한국 사회가 더 좋아지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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