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이대남과 축구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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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이대남은 축구로 대동단결한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으나 이대남과 소통하려면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빠른 듯하다. 돌아보면 내가 20대일 때도 비슷했다. 다만 내가 이대남이었을 때는 축구보단 야구를 더 좋아했고, 나에게 축구는 국가대표 축구가 전부였다. 지금의 이대남은 우리나라 리그나 해외축구에 관심이 많다. 주간조선의 이대남 3인 방 중 한 명인 이용규 기자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이야기할 때 가장 생기가 돈다. 뉴캐슬이라는 작은 도시 한복판에 축구구장이 있다는 게 그에게는 낭만적인 이야깃거리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모태솔로인 것처럼 외로움을 티내는 오기영 기자는 주말에 K리그2, 즉 하위리그를 혼자 보러 간다.

내가 보기에 요즘의 이십 대 남성들은 축구는 하나의 삶이고 그들은 축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이대남의 여론이 축구 커뮤니티를 통해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 다를 것이고, 그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공정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취업도, 연애도, 병역도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그들이 골대 앞에서만큼은 진짜 실력을 가진 사람만이 인정받는다고 믿는 걸로 보인다. 그들은 파리생제르맹의 이강인을 좋아하지만,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중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강인이 그 팀에서 후보로 밀린 건 실력 때문이고, 팀의 전술과도 맞지 않는다고 여긴다. 거스 포옛이란 외국인 감독이 전북 현대의 감독을 맡아 K리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성적을 내는 팀을 만드는 것이 공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대표 감독도 거스 포엣이 맡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피부색이 하얗든 까맣든 실력이 있는 사람이 그에 걸맞은 위치에 가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대신 그들은 축구판에 불공정이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축구협회의 고질적인 인맥 축구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축구에 정치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그들의 분노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기장 안에서만은 공정이 작동한다고 믿고 싶은 집단이 있다는 점은 지금 한국 사회의 신뢰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공정이 남아있는 마지막 영역이다.

사실 축구는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국제축구대회를 만든 것도,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프로리그를 창설한 것도 모두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정치를 등에 업고 시작된 한국 축구에서 정치를 몰아내고 있는 건 이대남인 것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이대남이 보수화됐다며 그들을 정치와 엮는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은 그들을 반만 아는 것이다. 나도 그들을 알 수 없고, 그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쩌면 그들은 가장 정치를 경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유명 작가는 이대남이 주로 드나드는 커뮤니티를 천박하다고 비판했지만, 그런 커뮤니티가 세상을 바꾸는 점도 분명히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론은 이대남을 한데 싸잡아 어설프게 비판하지 말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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