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담임인 이모(27) 교사는 매일 아침 학생들을 향해 "양치하고 온 사람 손 들어"라고 외친다. 그다음은 "머리 감고 온 사람" 차례다. 이씨는 조례 시간마다 학생들의 양치질 및 머리감기 여부를 확인한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이 많다는 건강검진 결과와 학부모 민원에 따른 것이다.
이씨는 자신이 중등교사가 아닌 '보육교사'가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기본 예절부터 신발을 정리하는 법, 친구와 친해지는 법,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까지 학교가 도맡은 생활지도의 영역이 자꾸 커지고 있어서다. 이씨는 인성·청결교육, 사소한 돌봄까지 책임지게 되면서, 업무가 과중될뿐더러 교과지도가 어려워지고 교사로서의 정체성도 흐려진다고 했다.
학생들을 교육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개인적으로 훈육하거나 격리시키면 아동학대, 교육권 침해 등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 별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학급 전체에 간접적으로 훈육하면 '집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며 반항하는 학생도 있다. 4년 차 초등교사인 김모(26)씨도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애 대변 누는 걸 옆에서 좀 봐달라, 평소에 변을 잘 못 보니 많이 힘들어하면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처럼 돌봄을 부탁하는 학부모도 많아졌는데, 사소한 것이라 느껴지는 것은 들어주다가도, 무리한 요구는 완곡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아닌 보육이다"
교사들이 꼽은 교육활동 침해 원인 1위는 '학생의 가정교육 부족(78%)', 2위는 '학부모의 맹목적인 지지와 애정(77%)'(경남 교육청·5개 교직단체의 2023년 조사 결과)이다. 주간조선이 인터뷰한 4명의 초·중·고 교사들 또한 '교육이 아닌 보육'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27)씨는 서이초 사건의 원인이 학부모 민원이라는 분석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심한 악성 학부모는 아주 소수예요. 평소 아이들 생활지도에서 사소한 것들로 쌓인 스트레스 지수가 80이 되어 있다면 악성 학부모 민원 하나가 나머지 20을 채워 폭발하게 돼요." 이씨는 서이초 사건도 그랬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실제로 교직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학생 생활지도'는 '학부모 민원'과 답변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교직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활지도(30.4%)'가 1순위로, '학부모 민원 및 관계유지(25.2%)'가 2순위로 꼽혔다.
2년 차 초등교사인 정모씨도 "학교를 보육기관으로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수발 들어주기를 원하는 학부모들이 상당수"라고 꼬집었다. 그는 손등을 다친 3학년 학생에게 아침·점심 두 번씩 약을 발라달라는 요구를 학부모로부터 받았다. 정모 교사는 학부모에게 "왜 그래야 되느냐"고 되물었고, 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해 스스로 약을 바르게끔 했다. 정모 교사는 이 같은 일이 '악성' 학부모의 사례가 아닌 '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동료 교사는 한 학부모로부터 '바쁘니 아이 체육복 좀 대신 사달라'는 심부름을 부탁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바쁘니 아이 체육복 좀 대신 사달라"
중등교사인 이씨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한다. 몇 달째 실내화를 가져오지 않는 아이의 학부모에게 몇 차례 '아이 실내화를 챙겨달라'고 말했지만 개선이 되지 않아 직접 실내화를 사줬다. 이모 교사의 학생들 중에는 이처럼 기본적인 준비물조차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필통, 연필이 없어 못 쓰겠다고 당당하게 말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아이에게 여러 번 되묻고 나서야 '친구에게 빌리겠다'는 대답이 나와요. 이런 사태에 지치다 보니 결국 아이들 사물함마다 제가 직접 볼펜을 넣어줬어요. 필요할 때마다 쓰라고."
이씨의 동료 교사는 학생들을 위해 교실에 연필꽂이를 두고 매번 연필을 깎아 꽂아둔다고 했다. 앞서의 초등 5학년 담임 김모 교사 또한 "책상, 사물함 정리는 교사의 재량으로 시킨다고 해도 가방정리가 안되어 있는 초등생들이 많다"고 했다. 김모 교사 반 학생들은 교과서, 학습지 등을 자주 잃어버리는데 그들의 가방 속에는 몇 달 전에 나눠줬던 안내장이나 만들기 수업 결과물이 그대로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사의 역할은 크게 교과지도와 생활지도,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에서의 생활지도 영역이 교과지도 못지않게 크다. 예컨대 중학교, 고등학교와는 달리 초등학교는 급식지도까지 담임선생님의 몫이다. 김모 교사는 비교적 고학년인 5학년을 교육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버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수프, 요거트를 밥에 비벼 괴상한 음식을 일부러 만드는 등 기본 식사 예절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모 교사도 6학년 교실에서 캡모자를 쓴 학생을 종종 발견한다. '수업시간에는 모자를 벗는 게 예의'라고 가르치자 학급 전체가 '그래요?'라고 반문하며 굉장히 놀라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 초등교사의 우울증 진료 건수가 다른 기관에 비해 가장 많았다. 최근 6년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100명) 중 절반 이상(57명)도 초등교사다.(정경희 의원실 자료)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가장 많은 부담과 책임이 초등교사에게 지워지고 있는 반면 권한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고등학교 교사도 "초등교사만큼은 아니겠지만, 가정교육의 부재를 느낀다"고 말한다. 고1 담임 김모(30)씨는 "요즘 애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만 열심히 피하고 인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요. '내가 수업 듣는 선생님한테만 인사한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아요."
그가 아이들에게 물건을 건넸을 때 두 손으로 받지 않는 경우도 3분의1 이상이다. 중등교사 이씨는 "수업 중 화장실을 갈 때 뒷문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한다"며 "수업을 하고 있는 교사 뒤를 지나쳐 앞문으로 오가려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문제행동을 고치지 않아도 교사는 신고·민원 등을 피해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훈육 방법이 없다. 교사마다 아이들 수발 요구를 들어주는 정도가 다르다 보니 교사들을 서로 비교하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집에서도 안 하는 청소를 왜 시키느냐"
학생 청결 교육도 교사의 몫이 된 것이 현실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경우가 많아 교육을 시키거나 청소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앞서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 김씨와 중학교 1학년 담임 이씨의 교실 모두에서 똑같다고 한다. 이씨는 교무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이 볼 일을 본 후 변기물을 꼭 내릴 수 있도록 훈화지도 부탁드린다'는 당부까지 들었다. '뒤처리를 제대로 안하는 학생들이 하도 많다'는 것이다. 이씨는 학생으로부터 "집에서도 안하는 청소를 왜 해야 하냐"는 항의도 들었다. 김씨는 학생들에게 쓰레받기 사용법을 일일이 가르치는 중이다.
교사들은 이 같은 생활지도에 진을 빼느라 교과지도에 소홀해진다고 말했다. 중등교사 이씨는 전공 과목인 국어에 대해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고 느낀다. "당연한 예절을 지도하기 위해 수업 내내 잔소리를 하고, 방과 후에도 학부모 상담을 하나 이상씩은 생기니까 수업연구는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빠요. 성취감이나 만족도가 떨어지는 걸 느껴요."
교사 성취감 빼앗는 진 빠지는 생활지도
이모 교사는 이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정모 교사의 정시 퇴근을 늦추는 것 또한 수업과 관련 없는 일이다. 오후 2시20분에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나면 오후 4시30분까지는 행정업무를 보는 시간인데, 상담도 늘 한두 건씩은 발생한다. "아이들 간 다툼, 학부모 간 오해 등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중간에서 조정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행정업무가 미뤄지고 퇴근도 늦어져요." 정씨는 "애들 수업 준비를 더 잘해서 좋은 수업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점점 사라진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 사이 소명감도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교사들의 소명 의식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47개국 중 3위를 차지해 매우 높은 편인 반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응답도 3위를 기록했다. 교직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극명한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약대나 한의대 안 가고 교육에 대한 열정 하나로 교대를 온 선생님들이 정말 많으시거든요. 그런데 내가 꿈꾸던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 다들 무력감을 느껴요."
정모 교사는 "서이초 사건 이후 정부의 대응이나 국회의 반응을 볼 때 사실 본질적인 변화가 있기 힘들다고 느껴서 우울감도 크다"며 "최근 만난 교사분들, 단 한 분도 빠짐없이 이직을 생각하고 계시더라"고도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1년간 퇴직한 교사의 수는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했다.(권은희 의원실 자료)
교대 또한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지원율은 줄고, 자퇴생은 늘었다. 전국 교대·초등교육과의 2024학년도 수시모집 현황을 살펴보면, 경쟁률 5.11을 기록해 2023학년도 5.19보다 소폭 하락한 수치다. 역대 최대 n수생 응시가 전망되면서 서울 주요 10대 대학 수시모집 경쟁률이 상승한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동시에 수도권 소재 교대와 초등교육학과 자퇴생이 5년 사이 무려 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종로학원 조사 결과) 지난 8월 기준 '다른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는 교대생은 51%에 달했다.(전국교육대학생연합 자료)
탈출을 꿈꾸는 교사들은 건강한 편에 속한다. '내 탓'을 하며 우울증을 겪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앞서의 이모 교사는 학생의 문제행동이 교정되지 않았을 때 학부모로부터 "남자 교사한테는 아이들이 안 그러던데, 여자 교사라 엄하게 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ADHD(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경계 진단을 받았음에도 학부모의 판단으로 약 복용을 하지 않던 학생이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교감 선생님도 이모 교사에게 "담임의 역할이 크다"는 조언을 했다. 이모 교사가 받는 피드백의 대부분은 이처럼 교과지도와 관련된 것이 아닌 생활지도에 관련된 것이다. 이모 교사는 최근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최근 4년 사이 우울증·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은 교사는 1.8배 급증했다.(신현영 의원실 자료)
김석호 교수는 이 같은 변화를 '학부모와 교사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청, 교육부 등 정부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밥상머리 교육은 결국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오는 정서적 유대다. 과거에는 이 같은 가정교육과 공교육이 상호보완적으로 영향을 주며 기능했다면 지금은 관계가 무너졌다. 인구·가족구조 등 사회경제적 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한자녀 가정, 맞벌이 가정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형제, 친척관계도 축소됐으니 인성 덕목이 강조되기 어렵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놀이 문화도 유튜브, 게임 등으로 변하며 부모와 보내는 시간도 더욱 줄어들었다. 이 같은 가정의 변화를 돌이킬 수는 없다. 대신 무너진 공교육의 범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사회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치들, 예컨대 시민교육, 문명인으로서의 예절, 상식 등을 교육 커리큘럼 안에서 함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 제도 등이 정비되어 단호하게 교육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야 한다."
밥상머리 교육, 학교가 책임져야 할까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 학교 중 어디에 교육의 비중을 두어야 하냐는 고민보다는 각 기관이 협력해 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가정, 학교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목표와 내용을 새로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간 교육분야에서 활동해온 한 활동가는 "가정교육이 예전보다 부족한 데다, 따끔하게 야단칠 수도 없으니 교사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변화를 위해서는 법 개정뿐만 아니라 예절, 공동체 문화를 강조하는 등 사회문화적인 힘이 바탕이 되어줘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