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 달렸다... 앞으로 10년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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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시간] 기후위기 시대, 한국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의 진단과 전환 설계
 극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강릉 오봉저수지 바닥이 마치 폐광산을 연상케 한다.
ⓒ 진재중

지구 평균기온이 과학의 예측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제 가뭄과 산불, 폭염, 태풍, 홍수 같은 극한 재난은 '기록적'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상시적이 되었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공평하지 않다. 산업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았던 글로벌 남반구의 주민들이 건강과 식량, 물과 주거 등 생존의 기본권조차 위협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파리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각국이 스스로 세우고 이행을 약속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이 합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핵심 장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선언과 실천의 간극은 여전히 깊다. 한국 역시 지난 10여 년 동안 세 정부를 거치며 NDC를 만들고 고치고 또 발표해 왔지만, 실질적인 변화의 속도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높이는 정치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다.

NDC는 각국이 2030년까지 얼마만큼 온실가스를 감축할지를 명시해 5년마다 유엔에 제출하는 국가 단위의 약속이다. 한국에 NDC는 단순한 국제공약이 아니라 두 겹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신뢰와 책임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에너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국가전략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의 NDC 역사는 '목표 상향-제도 설계-이행 정체'라는 되풀이의 연속이었다. 목표는 높아졌지만, 그 목표를 뒷받침할 구조적 개혁은 뒤따르지 못했다. '얼마나 줄일 것인가'라는 양적 목표는 존재했지만, '누가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질적 목표는 비어 있었다.

'양적 목표는 높지만 질적 정의는 낮은' 구조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유엔총회에서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NDC 상향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수치를 확정하고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 법적 구속력을 부여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한국 기후정책의 첫 골격을 만든 중대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실행력은 거기서 멈췄다.

석탄 발전의 단계적 퇴출과 재생에너지 확대, 배출권거래제의 강화, 탄소세나 녹색금융 도입 같은 핵심 수단들이 제도화는 되었지만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인허가 지연, 주민 수용성 문제, 산업계 반발, 전력시장제도 개편의 지연 등이 겹치면서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표를 높이고 제도를 만든' 첫걸음으로서의 의미는 분명했다. 시민사회도 기후비상행동, 청소년 기후소송 등을 통해 기후위기를 한국 사회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렸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말기에 상향된 NDC를 형식적으로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에너지정책의 축을 원전 확대로 돌리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동력을 약화시켰다. 국가감축계획에서 산업 부문의 감축 부담은 줄이는 대신, 전환 부문과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및 해외 감축으로 부족분을 채우겠다는 접근을 취했다. 이는 기술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는 동시에 구조 전환을 뒤로 미루는 정책이었다.

CCUS는 상용화 가능성과 비용, 저장 책임의 불확실성이 크고, 해외 감축은 남반구 지역사회와 생태계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신규 보급 속도는 둔화되었고, 일부 석탄화력발전소는 수명이 연장되었다. 배출권거래제는 낮은 탄소가격과 낮은 경매 비중으로 유인 효과가 미미했고, 중소기업은 지원 체계의 공백 속에 방치되었다.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참여 구조는 축소되었고, 사회적 합의의 기반도 약해졌다. 정책은 있었지만, 정치적 이행은 사라진 3년이었다.

 2024년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북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감축 목표의 '양'보다 '질'의 문제였다. 윤석열 정부의 NDC는 총량 상 40% 감축을 유지했지만, 감축의 부담은 산업이 아닌 농업으로 기울었다. 철강·시멘트·석유화학처럼 한국 온실가스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은 감축률이 완화된 반면, 전체 배출량의 4%에 불과한 농축수산 부문은 오히려 산업보다 두 배 가까운 27%의 감축을 요구받았다. 산업계의 로비와 '경쟁력 유지' 논리, 기술개발 의존 정책이 결합한 결과다.

정부는 수출산업을 보호하고 단기적 비용을 피하기 위해 구조적 전환 대신 기술 투자를 강조했고, 그 공백은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약한 농민과 지역 공동체에 전가되었다. 논물관리, 비료 감축, 저메탄 사료 같은 정책은 농민에게 직접적인 생산 부담을 안겼지만, 그에 상응하는 지원이나 수익모델은 거의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NDC는 '양적 목표는 높지만 질적 정의는 낮은' 구조, 즉 많이 배출하는 산업에는 면죄부를 주고, 적게 배출하는 농민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불균형의 체계가 되었다.

이재명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목표가 아니라 행동"을 강조했다. NDC의 진짜 시험대는 수치가 아니라 실천이며, 감축의 총량보다 책임의 분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재명 정부가 해결해야 할 첫 과제는 법적 구속력의 회복과 2035년 목표의 상향이다.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2031~2049년 감축경로 부재와 미래세대 권리 침해였다.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 중장기 감축경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과학과 탄소예산을 고려하면 2035년 목표는 2018년 대비 최소 67% 감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법적·윤리적 의무다.

둘째 과제는 정의로운 전환과 참여 거버넌스의 재설계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여전히 산업계와 원전 중심의 기울어진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 농민, 청년, 청소년 등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선 당사자들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위원회를 재구성하고 시민과 지자체의 상설 참여 채널을 만들어야 하며, 지역에너지계획을 공론화 과정과 연계하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지역별 시민참여예산, 주민참여형 에너지기금, 정의로운 전환 특별기금 같은 실험을 전국으로 확장해야 한다.

셋째 과제는 산업·에너지 구조 전환의 실무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속도와 규모, 그리고 품질을 모두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절차는 간소화하되, 생태와 경관에 관한 기준은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또한 주민이익공유 모델을 표준화해야 한다.

전력시장은 장기고정가격, 용량보상, 유연성 보상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 수익구조를 안정화해야 한다. 산업 부문은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경매 비중 확대를 통해 강한 가격신호를 주고, 녹색금융과 연동해 투자를 전환시켜야 한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는 업종별 탈탄소 로드맵과 규제·지원 패키지를 결합해야 하며, 중소기업에는 효율화 펀드와 표준기술 보급, 공공조달의 그린가점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기술은 중요한 수단이지만 만능의 해법은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이미 석탄보다 저렴해졌지만, 무한한 성장 패러다임 속 양적 확대로는 1.5℃ 목표를 지킬 수 없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핵심 광물 채굴은 남반구의 생태계 파괴와 인권 침해를 동반한다. 한국의 NDC는 불확실한 기술과 해외 감축에 기대기보다 국내 실질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 더 많이 감축하도록 책임을 묻고, 그 과정에서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충격을 최소화할 안전망으로 직무전환 교육, 지역기금, 사회적 대화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6월 11일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새 정부가 기후정의 원칙에 기반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맞게 수립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2035NDC 정의롭게 수립’ ‘탄소중립기본법 전면 개정’ ‘많이 배출하는 자, 많이 책임져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재구성’ 등을 촉구했다.
ⓒ 권우성

시험대에 오른 한국의 NDC

국제 비교는 한국의 과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55% 이상, 2040년까지 9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 미국도 60~80%대의 목표를 세웠다. 한국의 40% 목표는 낮은 수준이며, 그마저 이행 속도도 더디다. 배출권거래제(ETS)는 제도적 범위는 높지만 경매 비중이 낮고 가격신호가 약하다. 반면 유럽 ETS는 강력한 탄소가격으로 산업 전환을 견인한다. 기업들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차원에서 자발적 목표를 세우지만 정부의 중장기 계획과 정합성이 낮다. 이 괴리를 좁히지 못하면 NDC는 장식품이 된다.

수송과 건물, 수소 분야의 감축도 놓칠 수 없다. 수송 부문의 배출은 여전히 증가세이며, 내연기관차 신규등록 금지 시점을 법제화하고 무공해차 보급 목표제를 강화해야 한다. 대중교통과 보행, 자전거 인프라 확충으로 '차 없는 이동'을 늘릴 필요가 있다. 건물 부문은 제로에너지 기준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노후건물의 단열과 열원 교체를 대규모로 추진해야 한다. 수소정책은 녹색수소 중심으로 전환하고, 블루수소는 과도기적 보완책에 머물러야 한다. 전환을 늦출수록 비용은 더 커진다.

재정과 금융은 숫자를 현실로 옮기는 힘이다. 향후 5년간 감축사업 예산은 수십조 원 규모지만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금융 설계가 부족하다. 국채와 연기금의 녹색투자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녹색분류체계(K-Taxonomy)를 국제기준과 정합화해 '그린워싱'을 차단해야 한다. 탄소세 수입은 정의로운 전환기금으로, 배출권거래 경매 수입은 중소기업 효율화와 지역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해야 한다. 공공 조달의 '그린 프리미엄'은 초기 시장을 여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수단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분명하다. 중장기 감축경로를 법에 명시하고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책임을 구조화하라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 전면 개정으로 응답해야 한다. 2035년 NDC의 최소 67% 상향, 탄소예산 연동, 부문별 연차 감축 한도의 법적 구속력, 시민과 지자체의 상설 참여 기구, 정의로운 전환 특별기금과 지역 전환 안전망, 그리고 ETS 경매 확대와 탄소세 도입 같은 가격신호 강화가 핵심이다.

앞으로의 10년은 기후 파국을 막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NDC는 더 이상 국제무대용 약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에 근거한 목표 상향, 법적 이행력의 회복, 참여 거버넌스 구축, 산업·에너지 구조 전환의 실무 로드맵이라는 네 가지 과제를 동시에,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

기후정의란 '누가 얼마나 줄일 것인가'의 문제이자 '누가 얼마만큼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다. 많이 배출하는 곳이 더 많이 줄이고, 전환의 비용은 함께 분담하며, 기회는 넓게 나누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환경정책을 넘어 국가의 미래 전략이다. 선언은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행동만이 신뢰를 만든다.

지금 한국의 NDC가 시험대에 올랐다. 행동을 시작하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참여로 힘을 보태는 시민사회와 지역이 함께할 때, 우리는 1.5℃ 궤도로 되돌아갈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미래세대에 부채가 아닌 약속을 남길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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