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이날부터 서울 전 지역과 과천, 분당 등 경기 12개 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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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논란, 반복되는 장면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가 10월 1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은 발표 직후부터 뜨거운 논쟁에 휘말렸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서울 전역과 경기 주요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자 일부 언론은 "살 사람도, 팔 사람도 없는 시장"이라 보도했고, 정치권은 '세금 폭탄'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부동산 정보지는 "이번 조정은 일시적이며, 연말엔 회복이 온다"는 전망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정책의 근본 의도보다, 대출 규제 강화·세금 인상·거래 제한 등 즉각적으로 체감되는 불편함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책은 사회의 균형을 바꾸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대출이 제한되고 세금이 늘어나는 것은 누군가에게 손실처럼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조가 바로 서는 과정이다. 불편함은 정책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책이 무엇을 지향하는가 보다 얼마나 불편한가를 중심으로 여론이 제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부 언론이 정책을 해석할 때 늘 '시장 영향' 중심으로 보도하고, 정치권이 정책을 '득표 계산'으로 해석하고, 일부 시민들이 정책의 '불편함'을 곧 '정부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패턴은 오랜 기간 누적된 아주 구조적인 현상이다. 대출이 막히면 '청년 기회 박탈', 거래가 줄면 '시장 경색', 세금이 오르면 '징벌 과세'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정책의 장기적 목적을 보려 하지 않고, 당장의 불편함만을 꼬집으며 '정책 실패'의 지표로 삼으려 한다.
정책의 방향 ―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번 정책의 핵심 방향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10월 19일 발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주택시장은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 부동산 PF 여파가 겹쳐 자금이 빠르게 이동하는 상황이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자금력이 있는 수요층뿐 아니라 투자심리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부가 지닌 문제 인식이 '부동산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시중 자금의 흐름, 즉 비생산적인 자금 순환의 과열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책은 부동산 거래 규제나 부동산 가격 안정 조치를 넘어, 시중 자금 유동성의 흐름을 바꾸기 위한 거시적 대응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자금의 순환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산업적 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적 순환이다. 전자는 생산적 부문을 돌며 고용과 투자를 창출하는 산업적 순환이며, 후자는 자금이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머물며 생산과 고용 없이 자산 가격 변동을 통한 이익만을 증식하는 비생산적 순환이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바로 이 비생산적 순환(금융적 순환)을 끊고, 산업적 순환으로 방향을 되돌리려는 시도다. 이것은 단지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구조적 개혁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자금 흐름은 후자의 흐름(금융적 순환)에 익숙하다. 저금리, 유동성 확대, 부동산 담보 중심의 대출 구조가 후자의 흐름을 강화했고, 그 결과 실물 투자는 위축되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집값을 누르려는 정책의 차원을 넘어, 넘쳐나는 자본을 더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 하려는 '생산적 금융' 정책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언급한 '비상한 시기'란, 부동산이 경제의 자금 순환을 왜곡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동하는 시기를 뜻한다. 그가 말한 "비상한 대응"은 지난 20년 동안 저금리와 담보대출 중심 구조 속에서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왔던 자금 흐름의 불균형한 구조를 바로잡아,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산업적 자금 순환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실행 ―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흐르도록"
김용범 정책실장의 이러한 문제 인식은 10월 15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당시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행한 모두 발언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구 부총리는 "가계와 기업의 자본이 부동산으로 집중되지 않고, 보다 생산적·건설적인 부문에 투자되도록 유도하겠다"라고 말했다. 10·15 대책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층적 조치가 포함됐다.
우선, 주택 수요 관리 강화였다. 서울 전역(25개 구)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로 신규 지정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동일 지역으로 확대해 실거주 목적이 아닌 거래를 제한했다. 허가를 받아 매입한 주택은 2년 이상 실거주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허가가 취소된다. 금융규제를 강화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차등화하여, 15억 원 이하 아파트는 6억 원, 15~25억 원은 4억 대출한도,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으로 제한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상향해 금리가 내려도, 주택담보대출의 양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였고, 1 주택자 전세대출에도 DSR 적용을 확대했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상향(15%→20%)을 내년 1월로 조기 시행한다. 세제개편도 예고했다.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 유도'를 목표로 세제 구조를 전면 재검토 중이라는 것이고, 보유세·거래세의 균형 조정을 포함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라 밝혔다.
이러한 조치들은 금융이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통로를 줄이고, 실물 투자와 혁신산업으로의 흐름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다. 즉, 금융의 방향을 바꾸는 정책이다. 구윤철 부총리가 말한 '생산적 부문'이란 기업의 설비투자·기술혁신·고용 창출이 일어나는 영역을 의미한다. 시중 자금 흐름 주무 부처인 금융위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취임 직후부터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 금융의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강조해 왔다.
시장과 언론의 반응 ― 불편함의 언어
▲ 9일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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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책이 발표된 직후 시장의 언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부동산 전문 보고서들은 "이번 조정은 일시적일 것"이라 단언했고, "비수기인 11월만 지나면 다시 반등할 것"이라 전망했다. 어떤 보고서는 "최상급지는 대출이 줄었지만 P2P로 보완 가능하다"라고 조언했다.
"사업시행인가 날짜별로 조합원 지위 양도가 가능한 재개발 구역 목록"을 열거하기도 하였다. 정책의 취지를 '규제 우회 매뉴얼'로 바꾸어버린 셈이다. 일부 언론은 "대출도 안 되고 팔 사람도 없다"는 제목을 주요 기사로 등장시켰고, "15억 규제에 풍선효과 우려"를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보유세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자 "은퇴 부부의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 기사들의 공통점은 정책의 구조적 목적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일부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체감 불편을 중심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담론이 반복될수록 정책의 사회적 설득력은 약화되고, 자금은 다시 익숙한 경로인 부동산으로 회귀한다. 불편함의 언어는 상식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모든 개혁을 후퇴로 바꾸어버리려는 저항의 본능이 숨어 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대입 제도, 일자리 정책, 조세 개혁 등. 불편함을 이유로 반발을 누적시켜 정책을 수정하고, 결국 제대로 바뀌지 않은 채로 원점으로 돌아간 경험이 많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최근의 비판은 그 연장선에 서 있다.
보유세 논란 ― 정책의 필요성과 정치의 계산
10·15 대책 이후 가장 뜨거운 논쟁은 보유세 문제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구윤철 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자산에 대한 과세체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일부 학자들은 "보유세 강화는 조세정의 실현과 자산 편중 완화의 필수조건"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달랐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일각에서는 "고가 1 주택자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정책의 필요성과 정치적 계산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경제 구조를 교정하려는 정책이 '표 계산'의 대상이 되면,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보유세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부담이지만, 자본이 부동산에 머무는 흐름을 완화하고 생산적 부문으로 이동하게 하려는 필요 장치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이 불편함을 견디기보다 회피하려 한다.
물론 모든 대책은 완벽하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시장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고, 일부 계층은 바뀐 규제 앞에서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불완전함이 곧 그 정책이 불필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조치는 한국 사회의 자금이 비생산적으로 순환해 온 구조를 완화하려는 시도이자 최소한의 개입이다. 정책의 목적은 집값을 누르려는 것을 넘어, 자본의 방향을 바꿔 생산과 고용을 늘리려는 것이다. 비판의 상당수는 여전히 "(자산시장 내에서만 자금이 머무는) 금융적 순환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생산과 고용은 외면하고 자산 가격 부풀리기를 계속하고 싶어 한다.
자금의 흐름을 바꾸는 정책은 이익 구조를 건드리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큰 저항을 불러온다. 모든 의미 있는 정책은 일정한 조정을 요구하지만, 사회에는 그 필연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정책의 본질은 편안함이 아니라 변화에 있다. 익숙한 질서를 흔들고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 세우는 과정, 그 조정을 함께 감내할 때 사회는 성숙하고 경제는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
부동산 대책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결국 우리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자금이 머물러야 할 곳에 대한 사회적 상식, 그리고 그 상식을 지속하고 강화하려는 우리의 태도다. 불편함을 조율하고 방향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결국 정책의 본질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더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그 상식을 함께 지켜가려는 우리 사회의 결심이다.
▲ 김용기 교수 |
ⓒ 포럼 사의재 |
* 필자소개 :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 부위원장(2020.2.~2022.5.)을 역임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했고, 학위 논문 <금융 규제제도와 정책선택>에서 금융 안정과 성장 촉진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가 상충 또는 상보할 수 있음을 분석했다. 2025년 8월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에서 퇴직했다. 국제금융센터 이사회 의장, 공적자금관리위원, NH농협금융지주 이사회 리스크관리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현상 분석과 정책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2025년 10월 말 '생산적 금융 – 3% 성장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금융 혁신 전략'(단독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