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여순사건' 발언이 정통성 부정? "색깔론은 퇴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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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후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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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여순사건 77주년 메시지 두고 보수진영 연일 비판... 역사학자 심용환 "복잡한 문제, 갈라치기 안 돼"이재명 대통령의 '여순사건' 관련 발언을 두고 보수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문제 제기가 나오자,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이 직접 반박에 나서기까지 했다(관련 기사: 추미애 "여순사건이 반란? 그럼 책임자는 남로당 군사부장 박정희씨" https://omn.kr/2fqmq).

여기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모식 참석 후 본인의 SNS에 여순사건을 '여순항쟁'으로 표현한 점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해당 사건을 '항쟁'으로 규정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따라 나왔다. 이같은 역사 인식을 발판 삼아, 보수 야당이 사실상 특별법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처리 여부를 두고 여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향한 진영 사이 시각차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발언을 '역사 왜곡'으로 단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서는 물음표가 나온다.

이 대통령 "국방경비대, 진압 명령 거부...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발단은 지난 19일, 이 대통령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었다. 이 대통령은 "여수·순천 10·19사건 제77주기"라며 "1948년 10월 19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천여 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라고 적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부당한 명령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강경 진압 과정에서 전남과 전북, 경남 일대에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됐다"라면서 "살아남은 이들과 유가족들은 오랜 세월동안 침묵을 강요받으며 슬픔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라고 적었다.

이어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엄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역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서 "우리 모두가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갈등과 상처를 극복하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굳건히 세워나가길 소망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는 지난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내란 사태에서 군인들이 동원됐던 사실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계엄군의 상황을 근현대사의 비극과 대조한 셈이다.

보수 진영에서 문제시한 표현은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는 겨눌 수 없었기 때문"에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고 규정한 지점이었다. 진압 명령을 "부당한 명령"으로 정의하고, 이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다고 하는 표현이, 사실상 국방경비대의 반발을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국민의힘 "이 대통령, 편향된 역사 인식...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민의힘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참석한 유상범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여순 사건을 그저 양심적 진압 거부로만 묘사할 뿐 사건의 본질인 반란의 실체에 대해서는 고의로 누락하며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1948년 국방경비대 제14연대의 행위는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세력이 주도한 명백한 무장 반란"이라며 "당시 언론과 독립운동가 그리고 역사적 사료 모두 이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구 선생은 이 사건을 대규모 집단 테러로 규정했고, 과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또한 제14연대의 반란으로 비롯됐다고 명시한 바 있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럼에도 사건의 발단을 양심적 진압 명령 거부로만 표현하며 책임 소재와 반란의 실체를 삭제한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는 반란 주종자들을 마치 양심적 군인으로 미화하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반란군의 학살과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라며 "이 같은 사실은 쏙 뺀 채 진압 과정의 피해만을 선택적으로 언급하고 반란군의 잔혹한 범죄를 외면한 것은 역사의 절반만을 기록하는 행위며, 사실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도 지적했다.

그의 모두발언은 "대통령이 진실에 눈을 감고 역사를 왜곡하는 태도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왜곡하는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이끄는 통수권자가 아니라 역사 전쟁과 이념 갈등의 불씨만 키우는 자일 뿐"이라는 비난으로 귀결됐다.

나경원 국회의원 또한 지난 20일 SNS에 1948년 당시 김구 선생의 담화와 <서울신문> 보도를 근거로,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한민국 정체성을 뒤흔드는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인의 억울한 희생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끝까지 이어가야겠지만, 이 비극의 출발점이 공산 반란이라는 점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라는 비판이었다.

보수 언론 "이재명 대통령, 무장 반란이라는 본질 언급하지 않아" 비판

보수 성향 언론에서도 관련 지적이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지난 21일 자 사설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고 있거나 외면한 언급"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당시 14연대 내 남로당원들이 저지른 폭력과 학살 사례들을 짚으며 "북한조차 남로당 세력의 초기 잔혹 행위가 반란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신생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눈 남로당 무장 반란이란 이 사건의 본질을 언급하지 않았다"라는 질타였다.

이어 "해방 직후 혼란했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며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는 회복돼야 하고 피해는 보상받아야 한다. 하지만 특별법은 반란에 가담해 살인, 방화를 저지른 가해자와 억울한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아 반국가 범죄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아마도 이 대통령은 여순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비판하고 싶었을 수 있다. 군인들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도 "윤 전 대통령의 계엄과 남로당의 조직적인 14연대 반란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못을 박았다. "누구나 역사를 보는 개인적 시각과 취향이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대통령은 역사를 사실(史實)에 입각해 평가해야 한다"라는 이야기였다.

<문화일보>는 20일 사설을 통해 "희생자 추모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사건의 본질이 뒤집히면 안 된다"라며 "자칫 잘못하면 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 반란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반란 진압 작전을 폭력인 양 묘사했다"라고 평가하며 "팩트를 쏙 뺀 채 명령 거부를 추켜세우는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否定)하는 행위"라고도 꼬집었다. "다양한 조명이 필요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정부 수립 반대 폭동을 미화해선 안 된다"라는 주장이었다.

"애매한 선이 있는 사건, 흑백논리로 선악 구분해서는 안 된다"

여순사건의 성격 규정은 시대 상황에 맞춰서 다른 방점이 찍혀왔고, 학계에서도 오랜 논쟁 소재 중에 하나였다.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이 그러하듯, 해방 공간에서의 좌우 대립 과정에서 일어난 무수한 사건들은 무 자르듯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가 자칫 반란 자체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오독될 수 있다는 보수 진영의 비판은 일견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통성 부정'으로 몰고가는 것 역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인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에 "여순사건은 복잡한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항쟁'으로 규정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라면서도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민주화운동 세대 연구자들의 보편적인 인식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그는 "당시 선배 연구자들은 이승만 정권이 좌익을 억압하고 탄압함으로써 정치적 이들을 보려고 했던 시도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다"라며 "동시에 그 반대쪽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14연대 내 좌익 계열이 봉기한 것도 맞다. 이들이 군경을 사살하고, 우익을 공격하고, 진압군에 의해 지리산 빨치산이 된 것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여순 사건의 반역 행위를 무조건 정당화하기는 힘들다. 동시에 폭압적인 이승만 정권에 대한 좌익계의 저항이었던 점도 맞다"라며 "그만큼 애매한 선이 있는 사건인데, 여기에 흑백 논리를 적용해 '선악'을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무조건 좌익을 옹호하는 것'으로 몰고 가면서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비난하는 건 그냥 '싸우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국민의힘이 민간인 학살 부분을 인정하는 게 진일보한 역사인식인 것처럼,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토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색깔론' 논쟁으로 가는 것은 너무 퇴행적"이라는 지적이었다.
#대한민국 #통수권자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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