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강하면 기초 학력 인정? 국가 책임 교육이라면 최소한 대면 보충 지도 시행해야... 고교학점제 하기 전에 초·중에서 진로 교육·기초 학력 관리하고 대입 제도 혁신부터
▲ "기초기본소양교육 소멸 고교학점제 폐지하라!" 2025년 8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와 학생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는 학부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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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2025학년도 1학년부터는 학점 이수 인정기준(과목별 출석률 2/3 이상 및 학업성취율 40% 이상)에 도달해야만 학점 취득 및 졸업 요건(3년간 192학점)을 충족할 수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수강하는 과목을 성공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당 과목에서 요구하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하겠다며, 책임 교육 체제인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이하 최성보)'를 도입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최성보는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공교육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목표를 안고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효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 최성보의 가장 큰 딜레마는 문제의 근원과 해결책이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는 전통적으로 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돼 왔으며, 예산과 인력이 부진 학생 평가 및 학습 보조보다는 입시를 위한 학교 운영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으로 학습 부진은 그간 고등학교에서는 관심 밖의 영역에 가까웠다.
학습 부진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읽기가 어려운 난독, 쓰기가 어려운 난서, 셈이 어려운 난산 등 학습장애, 경계선 지능,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DHD), 우울·무기력감·과도한 스트레스 등 정서장애로 인한 학습 부진, 스마트 기기·미디어 중독, 집중력 부족 등. 기초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은 학업의 어려움이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누적되어 온 경우가 대다수이다.
초·중학교 과정에서 체계적인 기초 학력 관리를 하지 않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학업성취율 40% 미만은 낙제를 시키고 졸업을 안 시키겠다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제도가 어디에 있나?
학생을 위한 고교학점제가 되려면 초·중 9년 과정 동안 진로 교육과 기초 학력 관리 프로그램을 우선 시행하고,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고등학교 선택해서 입학하고, 선택 과목을 결정하고, 최성보에 따라 학점을 인정받아 졸업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전개되어야 한다.
진로 고민도 못 해 본 고1 학생들에게 대학별·학과별 입시와 직결된 선택 과목 신청을 강제하고, 학습 부진의 원인을 진단한 적도 없는 학생들에게 학업성취율이 낮으면 낙제한다는 압박을 주는 것이 고교학점제의 현주소다.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한다던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
최성보가 제시한 기초 학력 보장 방법은 저급하고 기괴하다. 고교학점제에 따른 업무 과다로 교사들의 항의가 거세자 교육부는 학습 부진 학생이 온라인 강의를 일정 시간 수강하면 학점을 인정해 준다는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국가 책임 교육'이라더니 예산을 늘리고 교사를 늘려서 대면 보충 지도를 해도 모자랄 판에, EBS 인강 몇 시간 들으면 기초 학력을 인정(?) 한다니 이럴 바엔 최성보를 왜 하나 싶다.
최성보란 이름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맞춤형 대면 보충 지도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학생들에 낙인은 낙인대로 찍고, 기초 학력은 방치하는 최악의 제도로 남을 것이다.
▲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기준 완화 방안(안)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안) 2025.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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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 성취수준 보장을 위한 보충지도 및 추가학습 안내 경기도 A고 최성보 운영계획(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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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과목 교수를 전문으로 하는 한 명의 평범한 중등 교사에게 잠깐의 교사 연수만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학습자 군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개개인의 누적된 부진을 발견하고 고등학교 수준의 학력을 갖도록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에 가깝다.
반면 외부 사설 전문 기관에서 볼 수 있는 학습장애를 위한 난독 치료 전문가들은 수백 시간의 실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습, 이론 교육을 거쳐 학생들을 평가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학습했으며, 난산 등으로의 영역 확장을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과 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유사하게, 심리 전문가들도 상상할 수 없는 기간과 분량의 직접 실습, 이론 교육을 거쳐 학생들의 정서적 어려움을 다루며 동기를 유지하도록 돕는 방법을 배우고 자격증 과정을 통과해야 어려움을 겪는 아동 청소년들을 직접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들은 안타깝게도 주로 학교 밖의 사설 기관을 그 활동 주 무대로 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도 어려움을 다루기 위한 학습 센터, 기초/기본 학력 도움, Wee 클래스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낙인을 두려워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주로 찾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교육청과 지자체 등은 초등 저학년부터 중학교 초반까지의 학습장애, 정서장애 등의 해결을 주로 전문 기관에 '위탁'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모든 학생의 기초 학력 보장을 위해서는 초·중 과정에서 학습 부진의 원인을 진단하고, 기초 학력 전담 교사가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관리하고, 원인 유형에 따라 일반 교사가 대면으로 보충 지도하거나, 외부 전문가(난독·난산·심리 등)를 학교에 초빙해서 학생 개개인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줘야 한다.
현재 고등 수준의 학습 부진 전문 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최성보가 의미 있는 제도인지 의구심이 든다.
허울뿐인 제도가 아닌, 최성보가 유의미한 교수 학습, 성장의 기회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책 수정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약 15년 전, 이명박 정부가 학습 부진아 구제를 책임교육의 목표로 걸었을 때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일제고사 결과로 보면, 수치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이는 정책이었으나 평가 이후 성적 부풀리기, 시험 부정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수준에 맞지 않고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은 문제 풀이 위주의 보충 지도를 받느라 학생 당사자가 겪어야 했을 고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계속 자리를 지켰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된 채 보충 학습을 한 학생들의 "공부 정서"가 도리어 망가지지는 않았을지 고민해 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학생의 자율적 선택권과 미래를 위한 실제적 준비를 제공하겠다는 목적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제적 "미이수자 관리"보다 학생 개개인에게 유의미한 학습 경험을 전문 인력을 통하여 제공할 필요가 있다.
즉 책임교육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야 할, 지도 대상 학생들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고 교육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대학 진학 외의 목표를 가졌거나 학습 동기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학점 이수 목적의 보충 학습을 강제하는 것은 억지로 끌려 나온다는 느낌을 주어 오히려 학업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교사와의 관계가 손상되어 교육적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으며 학업 중단의 위험 또한 따른다.
학습 동기가 부족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결손을 면밀하게 평가하고, 개인의 발달과 학습을 밀착 지원하며 관계적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 학업 결손이 증명하듯, 학생의 자발적 참여와 집중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온라인 강좌 형태의 보충 지도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성보가 책임교육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시스템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학교급 간의 원활한 연계와 선제적 학습자 선별, 진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기초 학력 결손을 학령기 전체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초·중학교 단계에서부터 촘촘하고 지속적인 학습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서 이를 고등학교까지 연장하는 것이 기초 학력을 위한 진정한 지원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기초 학력을 위해 마련된 비용은 손바닥 뒤집듯이 줄었다 늘었다 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건실한 기초 학력을 위한 공교육의 책임론을 다시 한번 강조할 때다.
둘째, 최성보 설계의 유연화, 자발적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획일적, 일방적 보충 지도 대신, 학생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동기 부여 방안과 유연한 지도 형식(개인 지도, 중재 후 반응 관찰, 평가 및 재평가, 소그룹 수업, 멘토링 등)이 필수적이다. 특히 보충 지도를 받는 것이 낙인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학습자 내에서의 성장 추이를 확인하고, 유의미한 배움에 대한 충분한 정서적, 실질적 보상을 제공하여 "늦게 시작하더라도 언젠가 꽃피는(late-blooming)" 대기만성형 학생들을 지원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제도를 수정하고, 최성보 미이수 학생을 강제로 '일제 관리'하는 제도가 아닌,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배움의 권리를 보장하는 '지원'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실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가짜 선택으로 경쟁 강요하는 고교학점제 폐지하라!" 2025년 8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와 학생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는 학부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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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치하는엄마들 교육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