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희곡 읽는 사람들,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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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 이어주는 시민과 세월호 유가족... 안산 곶안 '노란리본 희곡산책'단원고가 있는 경기도 안산 고잔동. 이곳의 이름은 '곶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곶안'은 '곶'과 '안'이 합쳐진 말, 곶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곶'이란 바다 쪽으로 쑥 내민 땅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러니까 '곶안'은 바다를 향해 고요히 안긴, 포근한 자리쯤으로 들린다.

'곶안'은 고잔동에 자리한 한 술집의 이름이기도 하다. 2023년에 문을 연 이곳은 단순한 술집이라 부르기엔 부족하다. 전국의 전통주를 소개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공간은 많지만, 이곳이 조금 다른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골목축제'를 꿈꾸며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주인장, 한동원씨 덕분이다.

돈키호테를 좋아하고, 불혹이 될 때까지도 여전히 꿈이 많았다는 사람. 그는 '곶안'을 열며,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그런 마음이 모여 올해, '곶안'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안산 시민들과 함께하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희곡 읽기 모임.

희곡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

 안산 시민들과 함께하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희곡 읽기 모임
ⓒ 곶안,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4·16재단의 '기억과 약속' 공모사업의 지원을 받아, 동원씨는 지역에서 쌓아온 인연들과 SNS를 통해 사람들을 초대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후 무대에 오른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고, 배우들과 마음을 나누는 자리였다.

참여자는 금세 모였다. 세월호 활동을 오래 이어온 주민들, 그리고 어린 아들과 함께 온 엄마도 있었다. 6월 23일부터 9월 15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비가 오나 더위가 찾아오나, 늘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곶안'의 불빛 아래 모여 앉았다.

'곶안'의 주인 한동원씨는 한때 배우였다. 그는 오랜 시간 노란리본의 공연을 지켜보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품었다. '이 좋은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세월호 어머니들의 삶과 성장이 지닌 깊은 의미를 알리고 싶었고, 예술을 매개로 시민과 유가족이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랐다.

"공연을 본다는 건 때로 소비로 끝날 수 있어요. 하지만 희곡을, 그것도 배우들과 함께 읽는 건 다른 경험이죠. 그 시간에는 서로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요.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월호 어머님들의 존재감을 이웃 시민들이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단원고 카페 ‘시나브로’에서 열린 낭독공연
ⓒ 곶안,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희곡을 함께 읽으며 작품을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이자, 참여자들은 자연스레 "이제 우리가 무대에 서보자"는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9월 28일 오후 4시, 단원고 카페 '시나브로'에서 낭독공연이 열렸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대본은 연출자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기록이다. 삶과 연기가 섞인 그 이야기들을 소리 내어 읽는 동안, 연출자의 감정과 배우의 감정, 그리고 시민의 감정이 겹치고 스며들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세월호참사 이후 함께 쌓아온 '관계'의 의미다.

"몇 주 동안 세월호 엄마들의 희곡을 읽으면서 처음엔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게 어색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연극 속으로 빠져드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낭독공연까지 마치고 나니, 이 만남이 끝난 게 아쉽기만 해요.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좋은 인연을 맺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어요.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함께하고 싶어요."

낭독극에 함께한 시민의 소감이다. 희곡을 함께 읽는 동안 '곶안'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이야기가 오가는 마을의 작은 무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마음을 내려놓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모두가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듣는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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