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늘리면 전작권 환수? 이 대통령 생각 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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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2. 오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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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의 진짜안보] 민생과 국방의 균형, 치열하게 고민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방위산업 발전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2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기사 수정: 22일 오후 5시]

이재명 대통령이 자주국방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참석해 "우리 국방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방위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 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권을 임기 내에 환수하겠다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엄연한 주권 국가이자 세계 10위권 초반의 경제력 및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 나라의 지도자가 자주국방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방위의 한국화', 즉 한국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라는 입장이 강해 한미관계의 현주소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방법론에 있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과 대대적인 방위산업 육성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도 자주국방의 핵심인 전작권 환수를 담보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결한 국방비, 민생지원금으로 지급한다면?

여기서 기회비용의 핵심은 민생에 미칠 영향이다.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가 '뉴노멀'이 된 현실에서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국방비를 늘릴수록 민생과 관련된 예산은 압박받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이 처한 현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트럼프의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신할 수 없게 되면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대규모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복지 예산이 위축되면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 안전망이 흔들리고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예상되는 한국의 국방비 증액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국방비를 매년 8% 정도씩 증액하면 이재명 대통령 임기 5년간 국방비 순증가분은 약 83조 원에 달하게 된다. 이는 거꾸로 향후 5년간 국방비를 올해의 62조 원 수준으로 동결하면, 83조 원에 달하는 재정적인 여력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민생과 국방의 균형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일례로 5년간 국방비를 동결해 마련할 수 있는 83조 원을 민생지원금으로 전환하면, 5년 간 매년 5천만 명에게 33만 원씩 지급할 수 있다.

조건은 움직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열병차량에 탑승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정부의 계획대로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하면, 자주국방의 핵심인 전작권은 돌아오게 될까? 조건을 떼어내거나 조건을 달리하지 않으면 불분명해진다. 여기서 조건은 박근혜-오바마 시기에 합의되고 후임 정부도 계승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확보, 연합 방위 주도를 위해 필요한 군사적 능력,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을 의미한다.

여기서 첫째 조건은 한국의 대규모 군비증강을, 둘째는 연합훈련을 통한 한국군의 주도적 역할 검증을 의미한다. 셋째 조건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애매하다. 문제는 이 조건이 움직인다는 데에 있다.

한국이 전작권 환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대규모 군비증강과 연합훈련을 계속하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조선)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미국은 새롭고도 까다로운 조건을 추가해 왔다. 이러한 악순환을 직시하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좌초와 전작권 미환수로 귀결된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우려가 커진다.

'평화가 경제'가 되려면

이재명 정부는 '평화가 밥이자 경제'라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남북 간의 긴장은 크게 완화되었다. 하지만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통한 자주국방 실현과 방위산업을 "미래의 먹거리"로 삼는 것이 '평화가 경제'라는 슬로건에 어울리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

인간은 총알을 먹고 살 수 없고, 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군사력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전쟁이야말로 최악의 민생 파괴이고 전쟁을 막으려면 적정 수준의 군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생과 국방의 딜레마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타자, 특히 군사적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그런데 딜레마는 이 지점에도 있다. 적대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비증강을 선택하면 관계 개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가 똬리를 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민생과 국방의 딜레마,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식은 한반도 평화협정에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 전작권 환수의 조건은 자연스럽게 충족되고, 군비통제를 통해 민생을 돌볼 수 있는 여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사안이 바로 평화협정이라는 뜻이다.

[ 바로잡습니다 - 2025년 10월22일 오후 5시]
*본 기사에서 국방비 순증가분 예상치 계산에 오류가 있었기에 이를 29조에서 83조로 바로잡았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보도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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