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 옆과 상덕사 옆 산비탈을 한 번 보세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산비탈을 보면서 이상한 것을 찾으라고 하면 관광객 대부분이 산 정상 부위를 보면서 "뭐가 이상한가요?" 하는 반응이다. 산사태가 난 것처럼 흙이 길게 드러나 있는데도 "뭐가 이상한가요" 하면서 해설사를 쳐다본다.
"여기에 우람하게 섰던 나무 20여 그루가 지금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난 봄 벌목으로 저렇게 밑동만 드러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서원을 지키던 나무였는데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 도산서당 옆 산비탈 나무가 벌목돼 산비탈의 흙이 드러나있다. (지난 10월 20일 촬영) |
ⓒ 이호영 |
산불 위기로... 모두가 안타까워 했다
서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도산서당과 상덕사 주변에 벌채된 나무를 가리키며 "왜 벌채됐을까요?" 하고 물으면 다양한 답이 돌아온다. 상당수가 "솔잎혹파리, 해충 때문인가요?" 아니면 "무슨 이유로 저렇게 흉측하게 잘렸나요?" 한다.
관광객 대부분은 해충 침범으로 나무가 잘렸다고 생각한다. 이 나무들은 지난 3월 26일 이전까지는 잘 살아 있었다. 수세도 좋았다. 바로 옆에 있는 나무보다 더 우람하고 좋은 나무였다.
"여러분들도 뉴스를 통해 보셨을 겁니다. 지난 3월 26일 의성 산불이 안동으로 번지면서 안동 주변의 산에는 모두 비상이 걸렸습니다. 당시 바람이 태풍급이었어요. 안동에서 영덕까지 산불이 날아가는 데 겨우 8시간이 걸렸습니다. 안동서 영덕까지 80km 쯤 되는데 한나절도 되지 않아 산불이 날아 바닷가 항구의 배를 태웠습니다.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기도 했고요. 그때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 봉정사 등에서는 문화유산을 살리기 위해 선제적으로 주변의 나무를 벌목했습니다."
당시 기상 예보는 남동풍이 분다고 했다. 안동서 북쪽인 도산서원까지 거리가 30km에 불과했다. 강한 바람을 타면 두세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산서원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도산서원을 살리기 위해 서원 주변 나무를 먼저 벤 것이다. 다행히 벌목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지 않아 바람의 방향이 서풍으로 바뀌어 산불이 동쪽으로 진행했다. 그래서 일부를 베다가 중단됐고 나머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만약 바람의 방향이 예보대로 불었다면 아마도 서원 주변 나무뿐 아니라 도산서원도 불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과 함께 천연 고찰 의성 고운사에서 산불로'가운루', '연수전' 등이 모두 불탔다고 말하면 관광객들 모두 "아~참!"하고 안타까워한다.
▲ 도산서원 옆 산비탈 산비탈에 있던 나무 상당수가 벌목돼 현재 밑동만 남아있어 보기 좋지 않다. (지난 10월 20일 촬영) |
ⓒ 이호영 |
도산서원 주변 산비탈에 있는 나무는 최소 50년 이상 나이를 갖고 있다. 1970년 도산서원을 성역화하면서 새로 심었을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있었다면 백 년, 이백 년 넘은 나무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수십 년 동안 도산서원과 함께했는데 남쪽에서 날아온 산불 진행 소식에 나무를 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원과 퇴계 종택 관계자들의 고육지책이었다. 사람이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당시 안동 남쪽과 동쪽은 산불의 진행 방향에 있어 큰 피해를 봤다. 도산서원이 있는 북쪽과 하회마을이 있는 서쪽은 바람 방향이 틀어지면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당시 안동시가지는 산불 연기로 가득 차 주민들은 며칠 동안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일부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잠시 피난 가기도 했다. 도산서원에서 벌목된 나무를 보면 당시 산불이 얼마나 위험했고 급박했던 사정을 알 수 있다.
"산불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우리는 산불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 기후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실수를 줄여야 하지요. 나무를 벤다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에 방화시설을 확충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도산서원 옆 산비탈 벌목된 나무는 주변 나무보다 수세가 더 좋고 우람하였다. (지난 10월 20일 촬영) |
ⓒ 이호영 |
▲ 도산서원 마당 옆 산비탈 나무는 마당 입구부터 전교당 옆까지 벌목되었다. (지난 10월 20일 촬영) |
ⓒ 이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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