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생각하는 개혁의 방법론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수술대 위로 살살 꼬셔서, 마취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났는데 '아 배를 갈랐나 보다. 혹을 뗐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게 개혁이어야 한다고 대통령은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우 수석은 "비정상적인 사법부의 행위에 대해 파헤쳐야 하고 진상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도 "방법은 좀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지금, 마치 복수하고 보복하듯이 보이는 것은 올바른 방식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대변인은 "개혁에는 반드시 소음과 반동이 수반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라며 "그 많은 설거지를 하는데 어찌 달그락거리는 소음이 없겠느냐"라고 했습니다.
12.3 내란이 지은 원죄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 면회를 다녀온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대표직·의원직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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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노선의 차이로 보입니다. 사안의 경중완급 판단에서 이견이 생기는 건 노선의 차이입니다. 대통령실은 좀 조용히 추진하자고 하니 온건파이고, 당은 시끄럽더라도 밀어붙여야 한다 하니 강경파인 셈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단순한 노선 차이 이상의 함의가 있습니다. 국민주권정부의 전략적 고민이 들어 있습니다. 이재명 정권 5년에 걸친 국정운영 전략을 놓고 대통령실의 고민과 당의 생각이 그들 말에 들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민주당과 국민의힘(이하 국힘), 두 정당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두 번째는 두 당 지지층 간의 적대감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모두 12.3 내란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과 지지층이 달라지면 정치 환경 전반이 달라집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민주당은 자유주의 정당에서 급진 개혁정당으로 변신했습니다. 정당이론의 '래디컬 파티'(Radical Party)에 해당합니다. 속도감 있게 그리고 뿌리까지 손 보자고 하는 근본적 개혁정당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민주당의 목적은 내란 청산입니다. 내란세력에 대한민국 거의 모든 권력기관과 기득권층이 포함됩니다. 군, 검찰, 국정원, 법원, 고위 관료, 종교, 거기에 보수정당까지 망라합니다. 부분 수리 정도가 아니라 건물 골조 공사를 다시 해야 할 판입니다.
반면 국힘은 보수 정당에서 극우 정당이 되었습니다. 지금 정당으로서 국힘의 가장 큰 특징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군사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폭거입니다. 필경 독재로 귀결됩니다. 한국은 오랜 군사독재의 상흔을 안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쿠데타 수괴를 감싸고 내란세력 청산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국힘이 과연 민주주의를 하자는 정당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민주주의 원칙과 민주적 헌정 질서라는 테두리를 슬쩍쓸쩍 밟고 있습니다.
급진 개혁정당과 극우정당
▲ 장외집회 나선 국민의힘 지도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9월 28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남소연 |
두 번째, 두 정당 지지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겠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보면 드러납니다. 첫째, 12.3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둘째, 그와 연계해 6.3 대선 득표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12.3의 성격? 민주당 지지층의 답은 '내란'입니다. 불법 계엄에 친위 군사 쿠데타임은 물론 내란, 그리고 외환의 혐의도 짙다고 봅니다. 실패했을 뿐입니다. 성공했다면 민주당 정치인과 계엄에 맞섰던 시민을 죽이거나 투옥했을 것이라 치를 떱니다.
국힘 지지층 절반의 답은 '윤석열의 미친 짓'입니다. 윤석열 '개인'이 친 사고라고 규정합니다. 국힘과 무관하고, 자신들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나아가 아군에게 떨어진 폭탄이라 생각합니다. 왜 쓸데없이 미친 짓을 해서 정권을 민주당 이재명에게 갖다 바쳤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쉽니다.
나머지 절반의 답은 '민주당이 판 함정'입니다. 평생 정의로운 검사였던 윤석열이 불의를 못 참고 욱한 나머지 민주당의 전술에 말렸다고 해석합니다. 윤은 희생자입니다. 나아가 좌파의 음모를 누구보다 일찍 파악하고 나라를 구하려던 영웅입니다. 계엄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대권입니다. 그게 민주적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자들이 오히려 가증스럽습니다. 북한 눈치 보고 중국에 굴종하는 좌파입니다. 좌파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게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그랬듯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눌러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계엄이 성공했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일거에 쓸어버려야 하는데 기회를 놓쳐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6.3 대선 결과의 의미는? 민주당 지지층의 답은 '내란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입니다. 하지만 김문수 후보가 '그 와중에도' 예상보다 많은 표(41%)를 얻은 것에 대해 보수의 역결집이라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국힘 지지층 절반의 답은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견제'입니다. 윤석열 심판은 사법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미래를 보고 선택해야 하는데 과연 민주당-이재명에게 대통령과 의회 권력을 다 맡겨도 되는 것이냐 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답은 '반이재명 투쟁에 매진할 힘과 명분을 얻은 역전의 발판'입니다. 윤석열을 하루라도 빨리 구해낼 후보여야 하는데, 앞서 윤에게 지고 토라진 홍준표는 안 됩니다. 김문수를 내세워 결집하려 했던 전략이 통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장동혁을 당 대표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트럼프가 지원해 주고 국힘을 장악한 가운데, 사법부와 언론 및 검찰이 이재명 정권이 힘 빠질 때까지 버텨주면 정권 타도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국힘 지지층을 다시 두 집단으로 나눴지만, 결국 한 덩어리입니다. 어느 집단도 윤석열과의 단절을 천명하지 않습니다. 국힘의 분당 가능성도 없습니다. 오히려 강경파를 대변하는 의원들 목소리가 더 큽니다. 보수 철학의 재정립도, 노선 수정도, 세력 교체도, 대선 평가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똘똘 뭉쳐 싸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습니다.
멀어도 너무 먼 여야 지지층
▲ 국힘 장외집회에 나부낀 '윤어게인' 현수막 국민의힘 주최로 9월 28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윤어게인'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 남소연 |
이처럼 두 지지층의 생각과 생각 사이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멉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내란의 사법처리 결과 여하에 따라 더 엄청난 일이 다가옵니다. 위헌 정당 해산 심판입니다. 민주당 지지층은 심판 청구를 하라고 압박할 공산이 큽니다.
이제는 국회의원들만 싸우는 게 아닙니다. 지지층들이 직접 싸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내란이라 공격하면 범죄자로 반격합니다. 내란이라 하는 순간, 국힘 지지자는 내란 종범이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이재명을 범죄자라 하면, 민주당 지지자를 범죄조직의 똘마니로 전락시키는 격입니다. 쌍방 간 적대감이 직접 부딪치고 있습니다. 양쪽 당원과 적극 지지층의 결집이 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늘 결집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12.3입니다. 12.3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양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어떤 다른 것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12.3은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이었습니다. 그 결정적 증거가 중앙선관위 계엄군 투입입니다. 너무 뜬금없어 우리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에겐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더 이상 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총선에서 크게 진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차에, 유튜브를 보니 부정선거론이 나옵니다. 중국 개입설이 돌고, 트럼프와 마가 세력이 'STOP THE STEAL'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 이거다 싶었을 겁니다. 윤석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보수층 전반에 걸쳐 부정선거론을 믿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정치 실종과 정치적 내전 상태
국민 70~80%가 두 정당 지지층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유증기가 꽉 찬 방에 작은 전기 스파크 하나만 튕겨도 방 전체가 폭발합니다. 이제 어떤 티핑포인트 하나가 우리 사회 전체를 정치적 내전 상태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다시 원상 복구를 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국힘과 지지자들은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또 과도하게 흥분하고 있습니다. 국힘 지지자들을 '2찍'이라는 멸칭으로 부릅니다.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정치를 통해서만 회복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싸우다 보니 '어라, 정치가 실종됐네'가 되면 안 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윤석열을 적극 지지하거나 행동대 역할을 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보수 기독교 교회, 그리고 폭력적 성향을 띤 유튜버와 추종자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 보라고 정치 하는 게 국힘 의원들입니다. 몸을 던져 체포를 막고, 감옥으로 면회를 가고, 국회 안팎에서 싸고도는 발언을 합니다. 이런 이들과 정치를 같이 해야 한다? 정말 싫습니다. 이들만 쓸어내 버려도 한국 정치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윤석열의 방식이었습니다.
정치, 민주 정당의 숙명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사법개혁안 발표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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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의 말을 들어보면, 이대로 가다간 국가 통합성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그들은 느끼는 듯합니다. 5년 단임제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운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12.3 이후, 극한으로 치닫는 두 정당과 지지층의 적개심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박수현 대변인은 '시끄럽더라도 연말까지만 참아달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연말까지만 시끄럽고, 내년 초부터는 조용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 안 될 겁니다. 청산과 개혁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방선거가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개혁이 얼마나 많이 남았습니까? 검찰개혁도 기소·수사 분리만 확정되었을 뿐, 보완 수사권 문제나 전건 송치, 공소청·중수청 인력 배치 등 구체적인 건 앞으로 1년 동안 국무총리 책임하에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면 전부 유실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얘기도 안 나오고 있지만 장차 육군사관학교는 어떻게 할 겁니까? 검찰도 제도만 바꾼 정도입니다. 앞으로 검사 양성이나 충원은 어떻게 해야 저들의 특권의식과 정치 지향성을 털어낼 수 있을까요? 개헌 문제도 언젠간 손대야 할 텐데 선거나 정당제도, 감사원을 어떻게 하는 게 발전적일까요?
개혁의 동력은 결국 선거 승리에서 나옵니다. 2026년 지방선거·2028년 총선·2030년 대선까지 연거푸 이겨야 개혁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다음 대선 때까지 내내 개혁해야 디테일까지 마무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치로 풀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안 지키는 정치 집단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심판한다는 게 정치의 기본 믿음입니다. 그걸 믿는다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정부·여당이 먼저 정치 복원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극우 정당'은 그리 못 해도 '개혁 정당'은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정부·여당이 되었습니다. 주도권이 있습니다.
정치, 그것이 민주 정당의 숙명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진수씨는 제정구·김부겸 의원 등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책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 - 정치 글 쉽게 쓰는 법> <보좌의 정치학>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