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써붙어 있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이날부터 서울 전 지역과 과천, 분당 등 경기 12개 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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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이재명 정부의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이름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목표로 한 대책이란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서울 및 경기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상승세와 매매거래량 증가세가 가팔라지는 등 주택시장의 불안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대책의 특징은 철저하고 광범위한 수요 차단이다. 기존에 지정된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4개의 조정대상지역 및 투기과열지구를 서울 21개 자치구 전체와 경기도 12개 지역으로 확대·지정하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도 지정했다. 한마디로 말해 서울 및 주요 수도권에서는 전세 끼고 집을 살 수 없게 하겠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실거주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규제지역으로 묶이게 되면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가 70%에서 40%로 축소되고, 거기다가 전세대출과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은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도 제한된다. 주택담보대출 한도도 15억 원 초과 25억 원 이하 주택은 4억 원으로,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으로 낮춘다.
여기에 더해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금리도 상향조정하고,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1주택자 전세대출의 이자를 DSR에 적용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전세대출을 DSR에 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서울 및 주요 수도권 전역에 갭 투기를 금지하고 대출을 크게 조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세제를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이다. 보유세·거래세를 조정하고 특정 지역 수요 쏠림 완화를 위한 세제 합리화 방안 검토를 언급했다. 세제와 관련된 정책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보유세 강화-거래세 인하 방향에서 부동산 세제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현금 부자만 집 사라고?
전망·속단하기 이르지만,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인 6.27대책처럼 당분간 집값 상승률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급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언론 일각과 전문가들은 '현금 부자만 집 사라는 거냐', '정부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대출한도가 축소되고 스트레스 금리가 인상돼 자기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의 주택 구입이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거주지를 서울로 옮기는 것이나 더 나은 주택으로의 이동을 크게 제한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다.
바른 비판일까? 판단 이전에 이런 주장 이면에 두 가지 전제가 있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금의 집값 상승은 신축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 건데 왜 수요를 건드리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틀렸다. 지금 집값 상승은 공급 부족에서 생긴 게 아니다. 그렇다면 2022년에 집값이 떨어진 건 공급 과잉 때문인가? 아니다. 기준금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집값 상승은 한마디로 말해서 1주택이라 할지라도 (투기적) 수요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전제다. 이 전제는, 문재인 정부 때도 이런 수요 억제 정책을 수없이 썼지만, 결국 집값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2배 혹은 심지어 3배 이상으로 올라버린 뼈아픈 경험에 기반한다. 정책을 아무리 내놔도 결국 집값이 올라갈 건데 왜 현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만 집을 못 사게 해서 자산 형성 기회를 막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이런 이번 대책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이 시장에서 먹히는 까닭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집값 대비 자기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은 대출을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집값이 떨어져 대출을 크게 받지 않고도 내 집을 살 수 있고, 부담 가능한 주택이 시장에 점점 많아지는 것임을. 그러므로 관건은 정말 이재명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넘어서 떨어뜨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시장(market)의 믿음은 크지 않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조해도 '문재인 정부 시즌 2'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걱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유세를 제대로 강화할 것인가
우리가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학습한 것이 하나 있다. 보유세 강화가 올바른 주택정책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역별로 보유세 실효세율이 다 다른데, 실효세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집값 변동률이 낮다. 그만큼 주택 투기가 잘 안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장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과연 보유세를 전반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강화할 것인가를. 또한 시장은 알고 있다. 보유세를 제대로 강화하면 투기적 의도가 다분한 주택과소비자들과 '똘똘한 집 한 채' 소유자들과 다주택 보유자들이 부담을 느껴 주택을 시장에 던지고, 결과적으로 상승률 둔화를 넘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을. 만약 이재명 정부가 보유세를 한 번만 찔끔 인상하는 생색내기에 그친다면 집값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이재명 정부는 보유세를 제대로 강화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번 대책 발표문에 나타난 분위기만 보면 미덥지 못하다. "국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단어가 "국민 수용성"이다. 참 애매한 말이다. 보유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보유세만큼 조세저항이 센 세금도 드물기 때문이다. 즉, 수용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정부는, 특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보유세 강화를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벌써 개혁적인 의원으로 알려진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보유세 강화에 부정적 의견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밖에 대책 발표에 사용된 어휘만 봐도 그렇다. '강화' 대신 '조정' 혹은 '합리화'라는 단어를 썼다.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뼈아픈 경험을 반복할 것인가
▲ 2020년 8월 4일 오전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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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 28일 오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 부동산 대책 등을 논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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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민주 정부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험이고 또 하나는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의 경험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의 이재명 정부처럼 집권 초기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이었다. 최초 종합대책인 2017년 8.2대책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와 금융규제와 거래규제는 포함됐지만 보유세 강화는 빠졌다.
이번 대책처럼 보유세 합리화 방안은 좀 더 검토한 후에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1개월이 지난 2018년 7월 초 발표한 보유세 강화 방안은 생색내기 수준이었고, 이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값 잡을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경험을 복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시 정부는 2003년 10.29대책에서 처음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임기 초에 지금처럼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고가 다주택자와 부동산 과다 보유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부동산세 시행 시기를 2006년에서 2005년으로 앞당기고 재산세도 강화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 특히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율을 60%로 인상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 결과 놀랍게도 2004년 내내 부동산시장이 하향 안정화됐다.
그런데 경제 환경만 보면 2004년은 집값이 더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2003년엔 3.1%였던 경제성장률이 2004년엔 5.2%로 무려 2.1% 포인트나 높았고, 2003년 7월 3.75%였던 기준금리는 2004년 8월 3.5%로, 같은 해 11월에는 3.25%로 하락했는데도 부동산시장이 하향 안정화됐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적 의지가 강했고 그것을 시장이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연말 종이호랑이 수준의 입법 내용이 발표되자 2005년 초부터 집값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는 이 두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먼저 보유세 강화에 강한 의지를 시장에 천명해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유세 실효세율의 중장기 목표를 제시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2023년 현재 0.15%(OECD 자료 근거)의 보유세 실효세율을 임기 내에 두 배로 끌어 올리고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1%로 올릴 것이라고 목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보유세는 몸에 좋은 '쓴 약'이라는 점이다. 저항이 그만큼 센 세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실행이다. 지방선거를 의식해 보유세 강화를 주저할 게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된 보유세 강화를 통해 집값을 하향 안정화시킨 결과를 가지고 선거에 임할 각오를 해야 한다.
보유세 강화와 어울리는 주택 공급대책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규주택 공급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주택을 공급하느냐다. 이번 10.15대책에서 정부는 노후청사·국공유지 등을 활용한 주택공급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어있다. 서울의 좋은 입지에 위치한 노후 영구임대주택을 분양과 임대가 혼합된 단지로 공급하고, 서울 성대 야구장과 위례업무용지, 그리고 한국교육개발원 토지와 강남 서리풀 지구, 강남권에 인접한 과천지구에 신규주택을 공급한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서울 도심에 공급하는 주택의 경우 보통 분양가가 59㎡의 경우에도 최소 9억 원에 이르고 84㎡의 경우에는 최소 10억을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강남권의 분양가는 이보다 훨씬 비싸다. 그렇다면 이런 신규주택은 과연 누가 살 수 있을까? 결국 직장이 좋든 부모의 재산이 많든 현금을 많이 동원할 수 있고 대출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상위 계층일 것이다. 어쩌다 대출을 많이 받아 산 사람은 부채에 짓눌려 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재 내 집 마련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도심에 전세 정도의 비용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할 것을 제안한다. 토지는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면 59㎡의 경우에는 2억 5천만 원에서 3억 원 사이에서, 84㎡의 경우에는 3억 원에서 3억 5천만 원 사이에서 분양받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토지임대료는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토지임대료에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면 전체 비용은 전세와 거의 비슷해진다. 그러면서도 2년 혹은 4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전세보다 주거 안정성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지금까지 토지임대부는 여러 번 시범 사업을 했고 시행착오를 거쳤다. 토지임대료가 너무 비싸 분양에 실패한 경험(2007년 군포), 반면 토지임대료가 너무 싸 분양에 성공했으나 5배나 오르는 로또로 변질된 경험(2012~2013년 강남·서초)을 잘 검토하면 토지임대부 주택은 건물 분양가보다 약간 높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토지임대부 주택이 보유세 강화와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보유세를 강화하면 주택이 하향 안정화되고 매매차익을 기대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매매차익이 별로 기대가 되지 않고 진입 장벽이 매우 낮은, 그러면서도 전세 비용과 비슷한데 주거 안정성은 매우 높은 토지임대부 주택의 수요는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에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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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시장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보유세 강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생색내기에 그치면, 참여정부처럼 처음엔 강한 의지를 보였다가 나중에 '종이호랑이 입법'이 되면, 집값은 급등할 것이다. 다시 말해 10.15대책의 약효는 조만간 종료되고 집값 상승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며 정부에 대한 신뢰는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높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 즉 해결할 문제들은 산더미다. 물론 임기 내에 다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개혁과제의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최우선 순위는 무엇일까? 민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택이다.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소비도 살아나고 불평등도 줄어든다. 부동산은 불평등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가 해결돼야 생산적 경제 활동에 활력이 생긴다. 주거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여야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희망이 생긴다. 요컨대 개혁의 효과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부동산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주거 문제 해결이 다른 개혁과제 실행에 엄청난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검찰개혁, 사법개혁, 분단문제 극복을 위한 정책 과제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동력이 생길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부동산에 이재명 정부의, 아니 이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을 믿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만든 정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