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도, 휴가 제한도 없었지만… 그 자유가 가능했던 건 최고의 동료들 덕분이었어요."
넷플릭스에서 동북아 시장 전략(Head of Market Strategy for North East Asia)을 담당했던 서보경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자유와 책임'의 문화를 이렇게 표현한다. <넷플릭스 인사이드>는 넷플릭스에 근무한 한국인 실무자가 직접 집필한 책이다. 저자는 2019년, 넷플릭스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입사해 아시아 시장 전략팀에서 활동하며 넷플릭스의 진짜 얼굴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DVD 대여 서비스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어떻게 세계 최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성장했을까. 그 내부에는 어떤 문화와 기준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이기도 한 저자는 "넷플릭스를 단순히 이상화하거나 신화처럼 칭송하기보다는, 실제로 다른 조직에 적용 가능한 요소와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보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아래는 지난 13일 저자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넷플릭스와의 면접
▲ <넷플릭스 인사이드> 서보경 저자 <넷플릭스 인사이드> 서보경 저자 |
ⓒ 서보경 |
- 넷플릭스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솔직히 처음엔 '보이스피싱인가?' 싶었어요. 지원한 적도 없는 회사였고, 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죠. 너무 갑작스러웠거든요. 그런데 면접을 진행하면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전례 없이 독특한 기업 문화, 그리고 각 분야 최고의 인재들만 모여 있다는 점에서 강한 매력을 느꼈어요. '이건 내가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시장을 담당하셨다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파란 눈의 외국인들은 아시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아시아는 문화뿐 아니라 콘텐츠 소비 패턴까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일본은 지난 20년 사이 자국 콘텐츠 산업(로컬 프로덕션)이 많이 약화되었고, 대만은 중국어 콘텐츠를 즐겨보면서도 일본 못지않게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한때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여전히 영미권 콘텐츠가 강세를 보였죠. 저는 한국인이다 보니 K드라마를 모두가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과장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의외로 각 나라의 고유한 로컬 콘텐츠 없이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 책에서도 강조하셨지만, '자유와 책임' 문화는 어떻게 체감하셨나요?
"출장비 한도도 없고,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만, 그만큼 스스로 성과 기준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자율 문화에는 언제나 '회사를 위한 최선(What's Best for Netflix)'이라는 엄격한 책임 기준이 함께 따라붙었어요. 외부에서 넷플릭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유와 복지만 가득한 낙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느슨해 보이는 통제 뒤에는 냉정하고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죠. 그 구조가 처음에는 모순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건 이 모든 시스템은 구성원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율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한 선택의 자유였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스스로를 엄격히 관리하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한국 기업에도 넷플릭스식 문화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의 조직 문화를 그대로 복제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조직이든 각자 처한 환경이 있어요. 산업 구조, 경쟁 상황, 규제 조건, 인적 구성 등 다양한 요소를 면밀히 검토해야만 합니다. 단순히 등 떠밀기 식으로 운영해서는,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과 격차를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모든 조직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창의성과 혁신이 핵심 경쟁력인 분야라면, 넷플릭스의 신뢰 기반 자기주도형 초고성과 문화를 각자의 현실에 맞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복제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 넷플릭스에서 가장 그리운 건 무엇인가요?
"단연 동료들이죠.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잘못은 빠르게 인정하고 고치던 사람들. 회의 중에도, 본인의 안위만을 위해 일하는 '월급 루팡'이 아니라, '이게 회사와 우리 모두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What's Best for Netflix)'라는 질문을 치열하게 던지는 문화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최고의 복지는 맥주도, 호텔 뷔페 같은 직원 식당도, 허먼밀러 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였습니다."
'가족같은 회사'의 함정
▲ 넷플릭스 인사이드 넷플릭스 인사이드/ 서보경 저자 |
ⓒ 세종서적 |
- 한국에서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로 팀 모델과 가족 모델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소 위험한 표현일 수 있지만, 저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아요. 회사는 주주와 구성원을 위해 성장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입니다. 기여한 만큼 보상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성실한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BCG에서 기업 컨설팅을 오래 하다 보니, 물론 오래 기다려주고 가족처럼 챙겨주는 조직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어떤 '가족 같은 회사'라도 산업이 위기를 맞거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 분위기는 가차 없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진짜 가족이라면, 낳고 기른 가족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결국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은 때로 '월급을 많이 못 줘서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포장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프로팀처럼 서로를 믿고, 공을 던지고, 안타를 치고, 승리를 위해 합심하는 모델이 기업과 개인의 장기적인 성장에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물론, 사회 초년생이나 사회적 약자, 육아휴직자 등에게는 충분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직장 내 갑질, 부당해고 같은 비인도적인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보완되어야만, 건강한 조직 문화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 <넷플릭스 인사이드>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인 뿐 아니라,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직원식당에 호텔 뷔페처럼 차려진 식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풍경, 오사카로 떠나는 단체 워크숍이 부러울 수는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은 결국 '동료'입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죠. 그래서 내가 직장, 학교, 사업 등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눈에 보이는 처우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곳은 함께 큰 그림을 그리고, 서로를 믿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는 최고의 동료들과, 그런 문화를 지지해주는 조직인가?' 지금 옆을 한번 둘러보세요.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차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면, 다른 모든 조건을 떠나 아침이 즐겁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이 비협조적이고 시니컬하며, 오직 월급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하루하루 지옥 같겠지요. 미래에 대한 성장성, 현실적인 처우, 그리고 우리가 종종 간과했던 최고의 복지인 '동료'. 이 세 가지 요소가 겹치는 지점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기업 경영인들을 위한 하나의 숨겨진 메시지가 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도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산업과 기업 문화가 이러한 초고성과 조직과는 맞지 않는다고 해서, 느긋하게 움직여도 괜찮다는 생각은 오히려 더 빠른 도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영자라면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빠르게 변화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