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은 실버, 퍼플, 골드, 플래티넘, 마스터니 하면서 라이더 등급을 나누어 게임 아이템처럼 배지를 달아주고 차등적으로 보상한다. 폭염이나 기상 여건이 안 좋을 때면 보상이 높아지는 배달 미션 외에도, 주간 미션, 연속 배달 등 달성해야 할 다양한 프로모션이 진행된다.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배치되는 다양한 기술들이 배달 플랫폼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PC방에서 벌이는 가상의 공간 속 게임에서는 자신을 대신한 캐릭터나 NPC(Non-player character)가 뛰고 달리다 게임오버가 될 뿐이지만 '게임화'된 플랫폼 노동에서 위험천만한 거리와 도로를 뛰고 달리다 쓰러지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살아있는 라이더, 노동자들이다.
플랫폼 노동의 게임화?
'게임화(gamification)'라는 용어는 원래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요소와 기법을 적용하여 사용자의 경험(UX)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화는 교육 분야 등에서는 참여도와 지속적인 동기를 촉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았고 점수(points), 배지(badges), 레벨업(levels) 같은 보상 체계, 진행 상황을 보여주는 실시간 피드백, 시간제한이나 난이도가 다른 도전 과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유발하는 랭킹 시스템 등을 핵심 구성요소로 한다.
그러나 헤어날 수 없는 재미로 유저들이 게임에 몰두하게 만들어 이윤을 창출하던 알고리즘이 긱(Gig)노동 플랫폼에 실리는 순간, 게임화가 아니라 철저하게 흑화된다. 배달 라이더들은 재미가 아닌 생계를 위해, 여가가 아닌 일상 대부분을 노동에 할애하게 된다. 퀘스트 달성을 위한 가상의 모험이 아닌, 몇 만원의 프로모션 달성을 위해 현실 속 위험천만한 질주를 감행해야 한다.
| ▲ 2023.05.10.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6회 라이더대행진' 모습. 전국에서 모인 150여명의 라이더들은 배달대행사 등록제 및 라이더자격제 실시, 생활임금 보장, 알고리즘 협상권 등을 국회에 요구했다. |
| ⓒ 라이더유니온 |
자기 착취적 일중독?
'게임화'를 통해서 발휘하는 다양한 노동강도 강화와 통제 기법들은 노동자들의 '자기 착취(self-exploitation)'를 조장한다. 플랫폼의 게임화 전략은 단순한 보상 시스템을 넘어,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라이더들의 노동 행태를 조종한다.
보상이나 인센티브 지급 시기 또는 조건을 예측할 수 없도록 하여 혹시 모를 '잭팟'을 놓치게 될까 계속해서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변동적 강화(Variable Reinforcement)는 도박과 유사한 중독 기제를 만든다.
어쩌면 닿을 듯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프로모션은 안전 확보와 휴식 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마저 보상과 경쟁 구조에 종속시키고, 노동자들은 잠깐 숨돌릴 시간에도 앱을 놓지 못하고 정신적 소진으로 이어지는 비자발적인 '일중독'과 '자기 착취'로 내몰린다.
그러나 '자기 착취적 일중독'이라는 표현조차도 라이더들이 언제든 콜을 수락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로모션이 주는 부가적 보상을 놓치면 '잭팟'은커녕 적정 생계비에도 이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희석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게임화된 알고리즘 뒤에 숨어 노동강도를 높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알고리즘적 착취(Algorithmic Exploitation)'라고 호명되고 있다.
지독하게 교묘한 알고리즘적 착취
알고리즘적 착취는 조작(manipulation), 허위성(falsification), 무력감(disempowerment), 의존성(dependency)으로 설명된다. 알고리즘은 보너스, 등급, 연속 배달 미션과 수익성이 낮은 운행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거나, 보너스를 미끼로 특정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는 방식으로 '조작'한다.
'허위성'은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나 데이터의 불투명성을 말한다. 배달료 산정 기준이나 배차 시스템이 공개되지 않으므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어떻게 평가받고 보상으로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노동자들은 운행 속도, 휴식 시간, 그리고 심지어 안전에 대한 판단까지 알고리즘이 설정한 목표에 종속된다. 이러한 종속은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권과 발언권, 협상 능력을 약화시켜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신규 진입자에게 많은 주문과 높은 보너스를 제공하여 이 직업에 갇히게 한 후, 변동적 강화, 간헐적 보상 등으로 다른 형태의 착취에 취약하게 만들면, 결국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감독하라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게임화된 플랫폼 알고리즘의 덫에서 노동자들은 일과 여가의 경계가 무너진 채 위험을 무릅쓴 자기 착취적 장시간 노동 속에서 쓰러져 가지만, 플랫폼 기업과 알고리즘은 무소불위다.
알고리즘과 플랫폼 기업을 감독해야 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의 대상은 '건설물, 기계·기구·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근로자의 작업 행동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 요인'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재해의 원인이 되는 모든 요인이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 실태조사나 연구를 보더라도 노동을 할당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이 위험을 감수하는 불안전 행동을 조장하여 사고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문제제기하고 있다.
라이더 개인의 불안전 행동이나 차량 자체의 기계적 위험 요인을 넘어서서, 플랫폼 알고리즘도 위험성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위험 요인으로서의 플랫폼 알고리즘 문제에 대해서는 플랫폼 기업들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플랫폼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위험성 평가 제도가 강조하는 '노동자의 참여'는 고용관계를 넘어서는 거버넌스 구축에서부터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알고리즘도 위험성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알고리즘을 감독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10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류현철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