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평 50억' 서울 아파트값 형성의 법칙...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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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영의 돈과 시간 이야기] 빚 (2)국가경제적 관점에서도, 인구 구성으로 봐도, 개인의 재테크라는 측면에서도 앞으로의 몇 년이 나와 한국의 성장·행복을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입니다.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만 정치권마저도 부동산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풍요롭게 될지 함께 생각해 보는 마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말>

 지난 15일 서울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방송이 나오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와 경기도 12개 지역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규제지역으로 추가된다
ⓒ 연합뉴스

지난주 글의 주제는 빚은 어떻게 매일 사고팔 수 있도록 '유동화(securitization)'됐는가였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그 유동화된 빚이 얼마나 거대한지, 특히 한국의 빚은 어떤 "독특함"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쓰려고 했다. 그런데 10.15 정부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어차피 빚과 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집과 빚에 대한 이야기를 빚 시리즈에 함께 넣어야겠다.

이번 정부대책에도 의견은 양분됐다. 조선미디어가 부동산을 테마로 만든 '땅집고'란 사이트에서는 부동산 전문가의 말을 빌려 <"집 사는데 허가라니, 여기가 평양인가요?" 역대급 규제에 전문가 대답은>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색깔론이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부동산 계엄령"이라고 비난했다. 공감은 못 하지만 이해는 한다. 미국의 극우세력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나치"라고 자주 비난했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의 정책이 너무 약하다, 또는 이번 대책으로는 거래를 위축시킬 뿐 서울 아파트 집값을 잡지는 못한다, 즉 떨어뜨리지는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 센 정책이 나왔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왜 서로 의견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뉠까? 결국 현재의 서울 아파트, 특히 서울 특정 자치구들의 '가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나뉜다. 그 관점 안에는 각종 이권과 정치적 성향, 우쭐함이나 분노와 같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뒤엉켜있다. 게다가 자본주의 또는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도 섞여 있다.

그냥 시장에 맡겨두자? 그 말이 틀린 이유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강남북 집합건물(아파트·다세대·연립·오피스텔) 모습.
ⓒ 연합뉴스

아파트 가격에 분노까지? 서초, 강남뿐만 아니라 마포구나 성동구도 입지가 좋은 신축 아파트 59㎡, 과거 25평짜리 아파트가 2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서초구 한 아파트는 50억 원에 육박한다. 34평이 아니라 25평짜리가.

해당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그러나 '성실하게 일 해온 사람들'은 분노할 만하다. 집은 의식주의 하나다. 과연 이런 집값이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넘어 반감까지 들게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다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시장가격(market price)과 공정가격(fair price)은 혼용되어 사용된다. 여기에는 시장은 언제나 옳다, 공정하다는 강한 믿음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만 이해하고 주장하면 우리의 수준은 극우 커뮤니티나 <조선일보>에 달린 극단적 댓글의 사고 수준과 같게 된다.

질문해보자. 시장은 언제나 옳고, 공정한가?

1. 만약 시장이 언제나 옳고 공정했다면 미국이나 한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 조직이 있을 이유가 없다.

2.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에서 특정 주식이 급등한다고 사이드카를 발동하는 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급등인지 아닌지는 시장이 판단하는 것이지 어떻게 금융당국이 제동을 건단 말인가?

3. 자유무역에 따라 시장가로 정해진 한국산 철강이나 자동차에 대해 미국이 관세를 매길 이유가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도 미국을 이용해 먹었다면서,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말할 이유가 없어진다. 트럼프는 지금 시장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고,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트럼프가 "받아적어"라고 쏴붙이는 대로 가격을 새롭게 인위적으로 매기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씨나 조선일보식으로 말하자면 반국가세력 또는 좌파들의 준동에 다름없다.

뭐가 맞는가? 그래도 시장가는 언제나 공정한 가격인가? 시장가가 모든 사람들에 의해 공정하다고 믿어진 적이 인류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있었나?

세계의 부자들은 왜 피카소나 반 고흐의 작품에는 수천만 달러를 매기면서도 조선의 산수화는 수천만 원도 아까워하나? 인류의 심미안은 '교육된 편견'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가?

서양식 미적 감각에 익숙해진 우리의 심미안은 공정한가? 공정한 눈을 갖지 않은 인간이 예술품, 공산품, 농작물 등에 공정한 가격을 매길 수 있나?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경영학에 마케팅 기법이란 게 존재할 필요가 없고 특별히 돈 들여 광고를 하지 않아도 인간들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을 정할 것이다.

그런가?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치즈를 많이 먹었지? 사과나 배에 길들여진 50대인 내 입맛은 아직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과일은 망고나 체리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시장은 무조건 맞다, 시장가는 늘 공정하다, 그냥 시장을 놔둬라, 가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시장을 조금이라도 건들면 좌파 빨갱이다'와 같은 주장을 하는 기자나 대중이라면 이 글을 볼 필요가 없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정부는 없다. 정부의 재정정책,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돈의 흐름을 좌우한다. 돈의 양, 유통 속도, 정책이 집중되는 분야에 따라 시장가격이 움직인다. 정부가 맘 먹고 정책을 폈는데 시장가에 전혀 영향을 못 준다면 그건 무능한 정부다.

현대자본주의 시장에서 그래서 가격은 탐구, 분석, 논쟁의 대상이었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자연에 맡겨놓는, 천부인권 같은 절대 불가침의 영역은 전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자주 나면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비 좀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정부에 제방이라도 미리 쌓는 등 예방 대책을 세워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부족국가의 부족원이 아니며, 왕정 치하에서 고통 받는 힘 없는 백성도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넘어 국민의 행복 추구권까지 헌법으로 보장해 놓은 대한민국에서 의식주 중 하나인 부동산 가격, 특히 특정 지역의 가격에 대해서는 정부가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가? 라면값이나 빵값에 분노한 민심에 정부가 놀라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고 서울 지역 집값 앙등(昂騰)에 대한 대책은 그냥 시장에 맡겨두라고?

사실 21년 전 경국대전을 들먹이며 수도이전을 반대했던 헌법재판관들의 머릿속에도 이런 무지와 편견이 팽배해 있었던 것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사회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런 무지한 편견이 윤석열식 계엄령을 용인해 온 한국적 토양이라는 점을 재차 명토박는다.

진짜 문제는 '시장의 믿음'이다

  9일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자 그럼 어떤 가격이 적정한 가격인가? 현대자본주의의 꽃 주식시장에서는 주식의 가격이 적정한지를 애널리스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한다.

내재가치 또는 본질가치를 본다. 기업이 얼마나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기업이 영업을 통해 돈을 얼마나 벌고 있는지를 본다.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에 비해 얼마나 고평가, 저평가됐는지를 본다. 한국 내 경쟁기업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쟁기업들 주가도 참고한다. 업종 자체의 성장성도 평가한다. 기술적 분석도 한다. 캔들(주식 봉)도 보고, 차트도 보고, 차트와 거래량에 나타난 대중의 심리도 살핀다.

주식의 가격이 적정한지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서 형성된 주식 가격(주가)을 전적으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다.

기업처럼 내재가치나 본질가치가 있다. 그건 주택가격과 소득과의 상관관계(PIR)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국처럼 전세가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사용가치(전세), 사용가치와 미래가치를 합한 교환가치(매매가)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갭이 크면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그 갭이 줄어들면 집값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방의 경우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크지 않아 전세가가 매매가의 80%를 넘기도 하지만 반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는 전세를 낀 84㎡의 아파트를 사려고 해도 30~40억 원을 더 줘야 한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30% 수준이다. 당장의 사용 가치보다는 미래 투자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지방의 아파트 가격은 주로 실수요자의 사용가치로만 평가되고 적정하다, 거품이 끼어 있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고… 서울 서초구 아파트 가격은 시장에서 미래에도 오를 것이라는 성장성에 가치를 많이 줬다, 밸류에이션을 높이 평가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시장의 가격으로 분석하면 한국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들은 그 지역 주민들의 삶, 주거 기능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반면, 서울 지역의 아파트들은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는 별도의 한국의 모든 지역민들 또는 한국에 뿌리를 둔 재미교포 등에 투자대상이 됐다는 뜻도 된다.

이런 현상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기자가 20년 전, 당시에는 선진적인 탐사보도기법이었던 CAR(Computer Assisted Reporting)를 활용해 서울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분석했을 때도 실제 소유주들 중 실거주자는 과반에 못 미쳤고, 실소유주들은 부산 광주 등 전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수십 개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자. 문제가 보이나? 문제는 시장의 가격이 아니라, 시장의 믿음이다. 여기는 사두면 가격이 꼭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퍼져 깨지지 않는 신화처럼 지속되고 있다.

10.15 대책만으로 서울 집값 잡을 순 없다, 그렇다면...

  19일 서울 성동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그걸 어떻게 바꾸지?

다시 이해하기 쉽게 주식시장으로 비유해 보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높지만 주가수익비율(PER)은 33배에 불과하니 그만큼 값어치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시장은 엔비디아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시장의 믿음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이제 많이 올랐고, 반도체업종은 공장 하나 만드는데 수조 원이 들고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인 경기 민감주(cyclical)업종이니 '이제 10만 원 가면 팔아야지'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삼성전자의 '성장성'을 높게 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삼성전자가 10만 원이 가도 주식수익비율은(PER)은 20배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 주식은 미국 주식만 못하다는 시장의 믿음은 아직 지속되고 있다.

가격은 믿음에 따라, 미래에 대한 전망에 따라 변한다. 오랫동안 신념처럼 믿어왔던 무엇도 상황에 따라, 처지에 따라 바뀐다. 쉽게 흔들리는 건 사람의 뜻이고, 쉬 변하는 건 마음이다.

미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유명한 조어처럼 인간은 비이성적으로 과열되기도 하고(Irrational exuberance)하고 마치 곧 인류가 종말할 것처럼 공포에 질려 자신의 주식을 내다 팔기도 한다. 수년 아니 몇달에 한번쯤은 나타는 광풍적 열기 또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블랙 먼데이, 블랙 프라이데이가 그 증거다.

완벽하게 이성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데다, 인간들이 모여 대중(mass)이 되면 인간의 이성은 종종 마비된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한 번도 꺾이지 않지 않았느냐고? 수십년동안 지속적으로 우상향한 것이 서울 아파트니까 앞으로도 오르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아니. 그것도 맹종적 믿음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수년 동안 크게 꺾였던 적이 있었고, 정부의 정책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진행됐다면(수도이전, 지방균형발전, 세제개혁 등) 쉬 꺾여버릴 거품이었다.

난 그렇다고 본다.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서울 특정 지역 아파트들의 가격은 고평가됐다.

그럼 이번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은 뭔가?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앞으로 서울 집값 잡을 수 있나?

주식시장으로 비유하면 이번 대책은 '사이드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라는 특정 주식군들에 대해 잠깐! 이거 너무 급등하고 있는데! 시장가격이 좀 이상해! 다시 생각해봐!라고 시간을 주면서 사실상 거래를 일시 정지시킨 대책이다. 6.27 대책에 이어 빚내서 집 사지 말라는 가수요 조이기 대책 2탄이다.

그러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며 수요나 공급은 인간의 심리에 따라 달라진다. 억만금을 줘서라도 사고 싶기도 했다가, 싼 값으로 줘도 세금만 내고 올라가지도 않을 건데 그걸 왜 사냐고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의 심리에 휘발유를 끼얹거나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전문가, 언론, 이익집단도 있다. 자본주의 속 민주주의는 특정 상품의 수요와 공급, 통화량의 조절만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중과 심리전을 해야 한다. 대중은 납세자이면서 유권자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대책만으로 서울 지역의 집값을 잡을 수는 없다. 사이드카를 발동했다고,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나?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을 깨놓아야 한다. 깨놓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얼마만큼 깨놓는 것이 부동산을 포함한 한국 경제에 좋냐"는 것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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