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가담한 피고인들의 재판이 연달아 진행되고 있던 지난 9월 24일 서울서부지법 407호 법정 앞의 모습. 대다수의 피고인들이 건조물침입협의 등으로 기소됐다. |
| ⓒ 이진민 |
그는 "소변이 급했다"고 했다. 지난 1월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성난 사람들이 법원(서울서부지법)을 때려 부수던 날, 20대 후반 남성 A씨(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철제 울타리를 넘어 법원에 들어갔다. 재판에서 A씨의 변호인은 "급한 용무 때문에 화장실을 찾기 위해 법원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법정 방청석에 있던 A씨와 같은 피고인들이 연달아 피고인석에 섰다. 그들도 A씨의 "급한 용무"처럼 저마다의 사정을 설명했다. 주로 "젊은 친구들이 나서서 싸워야 된다"는 주변의 부추김을 이야기했고, "친구가 경찰에 제압당하는 상황을 말리려"는 의도와 "우발적", "싸움구경" 같은 이유를 댔다.
<오마이뉴스>가 인터뷰하거나 법정에서 본 피고인들은, 법원에 불을 지르려 했던 '투블럭남'이나 신념으로 법원을 습격한 '전광훈 교회' 전도사와는 달라 보였다. 이들은 재수생이거나 직장인, 자영업자, 취업준비생처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피고인은 변호인도 없이 홀로 법정에 섰다. 그는 재판 직전에야 변호인이 사임계를 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왜 법원에 들어갔는지, 왜 폭동에 동참했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폭동 가담자 중 일부 청년은 이중으로 착취된 상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문제로 인한 소외와 그에 따른 청년의 분노가 가상의 적을 향한 폭력으로 배출되는 데 기성 극우 세력의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자신도 모르게 선임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임계 낸 변호인
| ▲ 지난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당시 대통령(탄핵 전)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내부로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
| ⓒ 연합뉴스 |
지난 9월 24일 오전 10시 서울서부지법 406호. A씨의 두 눈은 재판 중 줄곧 바닥에 고정돼 있었고, 변호인의 "소변이 급했다"는 변론이 이어졌다. 잠깐의 정적 후 판사가 입을 뗐다. 판사는 움츠린 A씨를 바라보며 "그 나이에 신호가 바로 온다고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닐 거고"라며 "(법원 인근) 역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나"라고 물었다. 판사도, 방청석에 앉아 있던 다른 피고인도 A씨의 입에 주목했으나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대신 그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했기에 당일 서부지법을 처음 온 상태라 (인근) 역 위치를 몰랐다"고 말했다. A씨의 또 다른 변호인도 "피고인이 사람들을 피해 서부지법 담장 근처에 있었는데, 용변을 참기 어려워지자 다른 사람들이 담장을 넘는 모습을 보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담을 넘었다"며 "(인근 지하철) 역으로 가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가세했다.
검사는 "단지 화장실이 급해 법원에 침입했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고, 양형요소로 고려될 사안도 아니"라며 "피고인은 죄질이 무거운데도 범행을 자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사는 요지부동인 A씨를 향해 "이 사건 이후 피고인이 어떤 규범적 판단을 하는지가 중요한 양형사유"라며 거듭 당사자의 입장을 물었다. 그러나 A씨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른 피고인 B씨는 이날 법정에 변호인 없이 홀로 섰다. 20대 후반 남성인 그(취업준비생)는 "(사건 직후) 유치장에 들어가 있을 때 변호인이 임의로 지정됐지만 연락처를 몰라 연락이 닿질 않은 상황이었다"며 "(재판 출석을 앞둔) 최근에서야 사임계를 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일부 극우 세력의 주도로 체포·구속된 이들을 위한 후원금이 모였는데, B씨의 경우 그 덕에 변호인을 배정받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임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석에 혼자 앉은 그는 "그날 대중교통을 타고 서부지법에 도착해 2~3시간 시위에 참석하다가 후문 쪽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시끄러워 쳐다봤더니 다 같이 담을 넘고 있었다"며 "무엇을 하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우발적으로 담을 넘었다. 선처해 주신다면 다시는 시위 근처에도 가지 않고 빨리 취직해서 열심히 살겠다"고 호소했다.
법원 침입 후 경찰에 라바콘을 던져 징역 2년이 구형된 미성년 피고인 C씨(2005년생 남성, 재수생)는 "(집회에서 만난 나이가 있는) 주변 사람들이 (제게) '젊은 사람들이 도와서 일을 해야 된다'는 식으로 말한 것을 들었는데, 그들과 동화돼 요구에 응했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재판에 서는 의미에 대해 굉장히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난 겨울 뜨거운 이슈였던 정치에 관심을 가진 뒤 사리분별이 부족해 법원에 침입했지만, 내부 시설을 파괴하거나 특정 인물을 해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결국 더 짙어진 고립... "결혼 계획도 직장 생활도 망가질까 두렵다"
| ▲ 지난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당시 대통령(탄핵 전)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내부로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
| ⓒ 연합뉴스 |
<오마이뉴스>는 피고인 중 한 명을 직접 만났다. 30대 직장인 여성 D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9월 30일 서울서부지법 308호 법정이었다. 이 자리에서 검사는 "피고인(D씨)이 무단으로 서부지법에 침입했다"며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를 받는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제 선고 공판만을 앞둔 D씨를 법원 내 카페에서 만났다. 1시간 정도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커피머신 소리에 묻힐 만큼 잘 들리지 않았다. 질문이 이어질 때면 눈을 내리깐 채 자꾸 옷소매를 잡아 뜯던 그는, 다만 "정말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때만큼은 기자와 시선을 맞췄다.
D씨는 당시 상황을 "술에 취한 상태여서 싸움구경을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에서 지인 3명과 술자리를 가진 뒤 서울서부지법 인근 공덕역으로 이동했다가 흥분한 인파에 휩쓸렸다는 설명이다. D씨는 법원 앞 인파를 입장 대기 줄처럼 보고 "신기한 마음에 따라 들어간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래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해 주말마다 약속이 끊이질 않았지만, 사건 이후 어디도 안 간다. 무단횡단도 하지 않는 준법정신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D씨는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았다. 수사 대상이 됐다는 것을 사건 후 약 두 달이 지나고 3월에야 알았다. 평소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던 날, 경찰에 출석하라는 통지서가 메신저로 전달됐다. 처음엔 "두렵긴 했지만 법원을 부순 것도 아니고 (청사 안으로) 걸어가기만 했기에 '고의가 없었다'고 설명하면 되겠다"고 여겼다. 당시 친구에게 이런 취지로 보낸 메신저 대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D씨는 변호인 동석 없이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사건이 재판으로 넘어가자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무에게도 이 사건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만큼은 털어놓았다고 했다. 딸의 재판 소식을 뒤늦게 접한 어머니가 "우리 딸 정말 큰일 났다"며 변호인을 알아봐 급하게 선임했다.
D씨는 법정에서 검사의 '1년 6개월' 구형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암담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다니는 직장도 너무 만족스럽고, 만나는 사람과 결혼을 준비할 마음도 있는데, 유죄가 선고된다면 모두 망가지는 상황"이라며 "(유죄가 선고되면) 애인과 직장에 이 상황을 어떻게 알릴지 너무 괴롭다. 이 문제를 어디에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견뎌내고 있다"고 울먹였다.
폭동에 가담한 이들을 향한 세간의 시선에도 D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 머리를 부여잡으며 "법원에 들어간 건 사실이니 드릴 말씀이 없다. (하지만) 기사를 찾아보면 그것(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화가 난 것) 때문에 법원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나와있는데 저는 정말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에 불복할 생각도 없다"라며 "정말 고의성 없이 들어간 사람도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누가 청년들의 분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게 만드나
| ▲ 지난 2월 21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는 지지자들이 고려대 교문에서 난동을 일으키고 있다. |
| ⓒ 이정민 |
이같은 청년들의 일탈에 대해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이중 착취에 놓였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 사회의 경쟁주의, 능력주의, 자본주의, 입시제도 등을 거론한 박 교수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청년들이 자신의 불만을 폭동의 형태로 드러낼 수밖에 없도록 이중으로 착취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극우의 문제는 이념이 아닌 폭력적인 태도다. 법정에 선 일부 폭동 가담자들은 자신이 왜 폭동 현장에 있었는지 이념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다"라면서 "한국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건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경쟁체제, 양극화, 자본주의 등이다. 그런데도 극우 세력은 마치 일부 정치인, 여성, 중국, 공산주의 등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청년들이) 분노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기 국립부경대 연구교수(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적당한 자리나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 일종의 모욕을 주기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소외감을 해소하려는 청년들이 생겨난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회적으로 쓸모를 인정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극단적 행동이 발현될 수 있는데,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감각 때문에 동참한 청년들이 있을 수 있다"며 "이대남, 청년층의 극우화는 아직 논쟁적인 사안이다. 다만 어떻게 소외된 청년들이 극우화가 되는지, 폭력적 태도를 발현할 수 있는 현장에 끌려나오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도 "신자유주의, 경쟁사회, 능력주의 구도에서 소외된 청년들이 교회, 온라인 커뮤니티, 극우 유튜브 채널 등 특정 공동체에 편입되면 제한된 정보를 접하는 필터버블(알고리즘 등에 의해 맞춤형 정보만 제공받는 현상)에 갇힌다"며 "이 과정이 반복·지속되면서 극우화로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부지법 폭동 사태 직후인 지난 1월 22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행범으로 체포된 86명 중 47명(54.6%)이 10~30대였다.
| ▲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가담한 피고인들의 재판이 연달아 진행되고 있던 지난9월 24일 서울서부지법 407호 법정. |
| ⓒ 김화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