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코앞에 둔 이시바 총리 방한이 그래도 기대되는 이유

김경년 기자
입력
수정 2025.09.30. 오후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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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오래전부터 과거사에 남다른 인식... 부산에서 무슨 메시지 나올까[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안부 문제는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며 사죄해야 마땅합니다. (한국측의) 납득을 얻을 때까지 (일본이)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칫 한국 사람의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놀랍게도 이시바 시게루 현 일본 총리의 말이다. 물론 총리가 되기 전에 한 발언이지만 말이다.

위 발언이 실린 <동아일보> 2017년 5월 23일 인터뷰에서 이시바 총리의 놀라운 발언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평의원이었지만, 이미 방위성대신 등 각료를 여러차례 지냈고 집권 자민당의 간사장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참배했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의 진짜 뜻을 알고부터는 못 가겠더라. 국민을 속이고 덴노(천황)도 속이고 전쟁을 강행했던 A급 전범들의 분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야스쿠니는 갈 수 없다"고도 말했다.

실제 그는 2002년 방위청장관에 임명된 이후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고, 총리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베 총리 시절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에 대해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렸을 때도 그는 근본적 원인은 일본에 있다는 입장이었다.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고,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표면화했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 책임을 회피해온 일본의 태도를 지적했다.

이시바 총리는 2019년에는 한 강연에서 "왜 한국은 '반일인가. 아마 일본이 타국에 점령되어 '오늘부터 너는 스미스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며 식민지 조선인들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당내 역학관계 밀려 역사문제는 손도 못 댄채 내려올 듯

소속파벌이 약해 만년 총리후보를 끝날 듯했던 그가 1년 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일본 총리가 됐을 때 많은 한국 언론이 기대를 걸었던 이유도 그러한 남다른 역사 인식 때문이었다.

점점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본 정치 상황 속에서 혹시나 지도력을 발휘해 한국과 과거사 관련 갈등을 딛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당내 기반이 취약한 이시바 총리는 엄밀히 보면 자신의 책임도 아닌 참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불과 1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결국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트럼프 정권과 관세협상만 하다 끝난 셈이다.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이유이다.

그런 이시바 총리가 오늘(30일) 퇴임을 코앞에 두고 한국을 방문한다. 오는 4일 새로운 자민당 총재가 선출되고 다음달 중반에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23일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에 와서 고 이수현씨 묘소부터 참배하는 이시바 총리

며칠 후면 자리에서 내려올, 힘 빠진 총리가 굳이 뭐하러 정상회담을 하러 한국까지 올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의아해할 것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그가 부산에 와서 고 이수현씨의 묘소를 참배한다는 뉴스가 날아왔다. 유학생이던 이수현씨는 지난 2001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변을 당한 인물이다. 이후 한일 우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그제사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에는 한국의 지방에서 만나자'고 했다지만 두 정상이 굳이 부산에서 만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시바 총리는 최근 퇴임 전 전후 80주년과 관련한 자신의 개인 메시지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무래도 역사 문제에 대해 그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소신을 펼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담을 것 같다.

그는 지난 24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왜 전쟁을 멈출 수 없었든지, 정치는 어떤 역할을 하고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내에서는 경계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고이즈미 신지로와 함께 유력한 차기 총리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여자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지난 2015년 아베 정권하에서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가 미래지향적이며, 다음 세대에게까지 사죄를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생각을 담았다"고 강조하고 "이 이상의 메시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테기 도시미츠 전 간사장도 "역사 인식 등은 70주년 담화로 매듭지어 있다"고 말했다.

평소 과거사에 대한 질문에 '한일관계 정상화에 이은 선순환'을 강조해왔던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기자브리핑에서 이시바 총리가 부산에서 전후 80주년을 맞이하는 메시지를 낼 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면서도 "과거사에 대한 견해가 다른 일본 정치인들과는 남다르다는 측면에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오늘 오후 이시바 총리가 과연 부산에서 어떤 말을 내놓을까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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