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2월 1일 강원도 강릉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촌에 우리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가 게양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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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 불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국가일까 아닐까? 조선이 한국과 함께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했기에 국제법적으론 국가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헌법과 국가보안법 등 법체계에선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 동시 가입 3개월 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선 '남과 북이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그런데 조선은 2023년부터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해왔다.
이렇듯 조선은 국제적으론 국가이고, 한국에선 국가가 아니고, 남북관계 차원에선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유행가 가사처럼 '국가인 듯, 국가 아닌, 국가 같은 조선'인 셈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도 혼선을 드리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국가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며 "정부의 입장은 '남북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틀 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남북이 "사실상의 두 국가,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면서 "적게는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한다. 국민 다수가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평화적 두 국가론'을 강조했다.
기실 이러한 엇박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 장관의 말처럼,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 보면 우리 국민 과반수는 조선을 국가로 인식한다. 그런데 조선을 국가로 인식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조선의 핵 문제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조선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을 국가로 인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식 국호의 사용에서부터 헌법의 영토조항 및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에는 의견이 다르다.
터키→튀르키예, 버마→미얀마, 북한→조선은?
나는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이자 통합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방향으로 우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데에 있다고 본다. '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터키는 이제 튀르키예로 부른다. 터키가 '칠면조'를 떠올려 이미지를 손상시킨다며 자국어 발음으로 불러달라는 튀르키예의 요청을 다른 나라들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버마도 미얀마로 부른다. 버마라는 표현이 식민주의의 유산이고 다민족 국가라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미얀마의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이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저쪽이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이나 '한국'으로 부르면서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요구한 지 2년이 넘도록 변화의 조짐은 거의 없다. 의도와 관계없이 북한은 '한국의 북쪽'이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이게 이재명 정부의 대북 3원칙, 즉 체제 존중, 흡수통일 및 적대 행위 불추구 입장과 어울리는 것일까?
정부를 탓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북한'을 고수하고 있는 언론과 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관성을 성찰해 보자는 취지이다. 저쪽의 제 이름을 부르는 언론과 학자, 그리고 시민이 늘어날수록 정부와 정치권이 호칭 변경을 검토할 때 정치적 부담이 덜해질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조선' 호칭이 종북일까? 이렇게 부르면 통일은 영영 물 건너갈까? 조선이라고 부르면 뭐가 달라질까? 많은 질문과 반박이 뒤따를 수 있고, 실제로 필자도 이런 공격과 비판을 많이 받는다.
나는 한국이 호칭조차도 바꾸지 못하면, 그래서 통일지향적이라는 '북한' 표기를 고수할수록 조선이 말하는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가 고착화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조선이라는 표현이 저들이 말하는 '두 국가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본다.
▲ 20204년 2월 27일 2024 파리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 리유일 감독이 한국 기자의 질문에 대해 “국호를 정확히 부르지 않으면 질문을 받지 않겠다”라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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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국제경기에 참석한 조선 대표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기자가 '북한'이라고 부르면, 조선팀 관계자는 그 기자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럼 공식 국호로 부르면?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과연 어느 방식이 '적대적 두 국가론'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개헌과 국가보안법
호칭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근본 문제는 헌법의 영토 조항과 국가보안법을 의미한다. 이 역시 찬반이 뜨거운 이슈이지만, 차분히 짚어볼 필요도 있다.
국가보안법은 유엔 인권기구뿐만 아니라 미국 국무부도 간혹 개폐를 권유해 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하나의 유엔 회원국이 다른 유엔 회원국의 영토를 헌법에 자국 영토로 명시하고 있는 나라도 한국 말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북한' 때문에 '통일' 때문에 못 바꾼다고 해왔다.
그래서 나는 북한을 조선이라고 부르고 통일보다는 통합이라고 표현하자고 제안한다. 조선이라는 표현에 거부감과 이질감이 줄어들수록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 개폐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통합은 교류 협력부터 통일까지 아우를 수 있는 유연하고도 큰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최근에 쓴 책으로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