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년 전 조국혁신당 세종시당 위원장이 지난 19일 경기 광주시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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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4일 오전 11시 00분]
'윤석열 검찰'에 도륙당한 정치인 조국이 안타까웠던 한 사람, 평생 학자로 시민사회 인사로 살다가 조국을 바라보며 정치권에 뛰어든 교수가 맞은 현실은 '제명 징계'였다.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온 김갑년 전 조국혁신당 세종시당위원장(고려대 교수) 이야기다. 그는 항일 의병장 고(故) 이강년 선생의 외고손으로 조국 대표의 영입 5호 인사였다.
김 교수는 성폭력 사건 초기부터 당 대응 방식의 문제점을 앞장서 지적했고, 그 과정에서 시당위원회 내부 갈등이 커지면서 당 윤리위에 제소돼 제명됐다. 당은 김 교수의 제명이 성폭력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시당 내부 폭력 사태 때문이라고 했지만 김 교수는 이 모든 일이 연결돼 있다고 봤다.
지난 19일 경기도 광주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 교수는 혁신당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의 미숙함을 조목조목 따졌다. "징계가 곧 사건의 종결로 포장되면서 피해자 후속 조치, 조직의 반성·개혁이 뒤로 밀렸다"고 평가했다. 혁신당이 작금의 파고를 넘기 위해선 "황현선 전 사무총장 사단 인사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짚었다. 황 전 총장은 성폭력 사건 처리 미흡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김 교수는 그가 사건 초기부터 영향력을 행사했었고 아직도 그의 그림자가 당 내에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적쇄신이 이뤄져야 "피해자 중심의 실질적 보호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조국 비대위원장을 향한 '충정'이 남아 있다고 했다. 최근 그는 조 위원장에게 향후 비대위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면담하고 싶다면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메시지를 확인했을 뿐 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길게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정당하고 진실된 게 승리하지, 단기간 유불리를 가지고 판단했을 때는 도리어 스스로에게 해가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래는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지도부 사안 축소하는 데 급급...피해자에 대한 사과·공감 부족"
▲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직무대행과 최고위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당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강미정 전 대변인을 포함한 피해자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며 “이 사건으로 마음을 다치셨을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도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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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내 성폭력 사건 이후 벌어졌던 일련의 과정을 짧게 평가한다면.
"조사와 징계가 절차적으로 진행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징계가 곧 사건의 종결로 포장되면서 피해자를 위한 후속 조치, 조직 차원의 반성과 구조적 개혁은 뒤로 밀렸다. 결국 피해자는 탈당 기자회견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당의 도덕성·명예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성폭력 사건은 법적 진위 규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의 존엄과 조직의 윤리를 지키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다. 중앙당이 그 책임을 미뤘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가 발생했다."
- 지도부가 왜 책임 있는 대응을 못했다고 보나.
"4월 초 이미 당 안팎엔 소문이 돌고 있었다. 4월 중순 구체적 사실을 확인한 뒤 김선민 당시 당대표 권한대행에게 사실관계를 물었다. 김 권한대행은 깜짝 놀라면서 '어디서 들었냐'고 하더라. 정보 유출을 걱정했던 것 같다. '제가 알 정도면 세상이 다 알고 있으니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행은 걱정 말라고 하더라. 그러더니 4월 말 <조선일보>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
지도부는 사안을 축소하는 데만 급급했다. 중앙당은 첫 공식 입장에서 사건을 '비위'로 축소해 호명하며 절차적 설명에 치중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공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신고 문건을 제출하지 않아 사건을 정식으로 다루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외부 조사와 징계 절차가 진행됐지만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신뢰는 손상됐다."
- 혁신당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할 때 세종시당위원장 제명 건이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당은 별개 사건이라는 입장이다.
"성폭력 사건과 저의 제명을 분리하는 건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거다. 두 사안은 별개로 볼 수 없다. 긴밀히 얽혀 있다. 제 제명은 당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 제기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정치적 결정'이었다. 저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대처와 구조적 혁신을 일관되게 요구했고 바로 그 점이 제명 사유와 직결돼 있다. 납득하기 어렵고 무리한 결정이었다."
세종시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김갑년 전 조국혁신당 세종시당 위원장이 지난 19일 경기 광주시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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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명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지난 5월 세종시당에서 갈등이 있었다. 5월 1일 저는 시도당 최초로 (당내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중심 대응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당시 세종시당 운영위원은 14명이었는데 그중 5명은 중앙당의 처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저를 포함한 9명은 시당에서 먼저 의견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앞선 5명은 내년 지방선거에 시의원으로 나오고 싶어 했는데, 그러려면 중앙당과의 관계가 좋아야 했다. 그러나 저는 이 사건에 당 존립이 걸렸다고 봤다. 당이 살아남아야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는 거 아닌가. 5명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성명서를 내기로 했다.
6월 15일 세종시당 운영위원 간담회를 했고 그 다음 운영위에서 '자치규칙'을 제정하기로 운영위원 전원이 합의했다. 자치규칙이 없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6월 24일 운영위에서 자치규칙을 제정하려 했는데 앞서 중앙당 처리를 지켜보자는 5명이 이의를 제기했다. 대의원대회에서 (자치규칙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합의를 한 상황이었고 중앙당도 지난해 6월 7일 '대의원 구성 전엔 운영위가 자치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었다. 부산·대전·광주 시당도 대의원대회가 없는 상황임에도 자치규칙을 제정했다(혁신당 윤리위원회는 이 사안과 관련해 '시도당 자치규칙 제정·개정을 위해 시도당대의원대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 기자 말).
그럼에도 반대가 있으니 자치규칙 제정을 보류했다. 그런데 6월 27일 운영위원 5명이 저를 윤리위에 제소했다. 김갑년이 당헌·당규를 위반하며 자치규칙을 제정하려 했다는 게 이유였다. 자치규칙을 제정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당헌·당규 위반인가. 이것은 내부 갈등을 징계로 몰아간 정치적 제소 남용이었다."
- 중앙당과는 어떤 일이 있었나.
"7월 1일 (시당에서) 전 사무처장을 면직하고 7월 8일 운영위에서 나머지 운영위원 4명을 해촉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해촉에 책임이 있던 저도 사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퇴 논의 과정에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이를 운영위에서 의결해 7월 9일 세종시당 단톡방에 알렸다. 그런데 하루 만인 7월 10일 중앙당 최고위는 세종시 전당원 투표를 중지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부당함을 제기하는 공문을 중앙당에 보냈다.
7월 17일 당무감사위는 느닷없이 특별당무감사를 결정했고 다음날인 18일 세종시당에 당무감사를 오겠다고 했다. 18일엔 시당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무감사위원장은 시당을 찾아와 잠긴 문 앞에서 사무처장에게 전화하며 '세종시당이 당무감사에 불응했다'고 했다. 중앙당은 이후 9월 1일 최고위에서 저에 대한 최종 제명을 결정했다."
- 제명 처분이 왜 '정치적 결정'인가.
"저는 출마할 생각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바로 지적했다. 그런 제가 윤리위에 제소당한 건 중앙당에선 쾌재였던 듯하다. 성폭력 사건이 알려진 초기부터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침묵하지 않았다. 5월 1일 최초 성명서 발표 이후에도 당무위원회·간담회 등을 통해 지도부 전원 사퇴, 비대위 체제 전환, 구조적 혁신을 꾸준히 주장했다. 이런 문제 제기가 지도부 눈에 거슬렸고 결국 제명이라는 방식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본다."
"황현선 물러나면 끝? 아니다"
▲ 조국혁신당 황현선 사무총장이 9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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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제명이 철회된다면 다시 입당해 활동할 의향이 있나.
"8월 11일 재심을 청구했지만 중앙당은 기각했다. 저는 재심을 신청하고 공교롭게도 해외 일정으로 독일에 나가 있었다. 부당한 윤리위 절차와 당무감사에 저항하느라 단 한 차례도 대면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재심엔 성실히 응할 계획이었고 일정 연기 요청도 했다.
그러나 중앙당은 제가 독일에 있던 9월 1일 제명을 확정했고 최고위 추인을 받았다. 그 회의는 조국 당시 혁신연구원장이 광복절 특사 후 처음으로 배석한 최고위원회의였다. 조 원장의 배석이 상징하는 바를 피해자도 알지 않았을까.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하게 된 촉발제였다고 본다.
(조국혁신당은 9월 1일 최고위 의결을 통해 8월 25일 중앙당 윤리위의 김 교수 징계 결과 요지를 공개했다. 혁신당은 그날 조국 당시 혁신연구원장이 출소 후 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처음 참석해 인사를 했을 뿐이고 김 교수에 대한 징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교수는 조국 당시 원장이 인사를 한 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윤리위 결정이 보고되고 확정·공개된 것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기자 말)
저는 제명 즉시 직위가 해제됐고 비당원이 됐다. 시도당위원장 텔레그램 방에서도 쫓겨났다. 이후 비대위가 꾸려지고 나서는 일말의 기대를 했다. 어제(18일) 열린 서울시당 당원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의 절반이 세종시당 현안이었다고 하더라. 성폭력 사건과 세종시당 문제가 별개가 아니라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서왕진 원내대표는 두 사안이 별개라고 얘기했고 조국 비대위원장도 그 뜻에 동의했다고 한다. 더 이상 가능성은 없다. 희망은 없다. 비대위에서 제 제명이 철회되더라도 복당할 생각은 없다."
-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려면 혁신당은 뭘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책임 있는 인적 쇄신이다. 최고위와 황현선 전 사무총장 사퇴로 인적 쇄신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최고위 대부분이 국회의원이라 직이 유지되니 실제 사퇴는 황 전 총장 1명뿐이다. 이 사건 축소·지연·은폐에 책임이 있는 '황현선 사단' 인사들이 물러나야 진정한 인적 쇄신이 된다.
두 번째, 피해자 중심의 실질적 보호조치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피해자의 안전한 복귀를 보장해야 한다. 2차 가해 차단, 심리·법률 지원 등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세 번째, 구조적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이다. 성폭력 대응 매뉴얼과 상설 인권·성평등기구 설치, 전 당원 성인지교육 의무화뿐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와 당원 주권을 복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침묵과 방어에 기댄 권력 구조에 있다. 온전한 피해자 회복은 당내 민주주의와 당원 주권의 회복 위에서만 가능하다."
- '황현선 사단'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황 전 총장은 이번 성폭력 사건 처리의 1차적 책임자다. 저는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라 즉각 비대위를 구성해 책임 있게 대처하는 게 조국을 위하는 길이자 그가 사면·복권 후 정치적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토대라고 봤다.
그러나 황 전 총장은 사무총장·인사위원장·조직강화특위 위원장 등 핵심 직책을 독점하면서 저를 징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중앙당 윤리위원장과 당무감사위원장마저 자신의 측근으로 채워 넣었다. 모두 문재인 정권의 민정라인이다. 당무위원회 약 45명 중 40여 명이 사실상 '친황현선 세력'일 정도로 황 전 총장은 중앙당 권력 구조를 장악했다.
이런 권력 독점 속에서 사건의 본질은 피해자 보호가 아닌 '조직 방어'로 전도됐다. 그 결과 조국 위원장이 사면·복권으로 돌아왔지만 당은 파산 직전의 위기에 빠졌다. 뒤늦게 꾸려진 비대위도 피해자들에게 형식적 사과를 반복하는 수준으로 사태 수습을 시도하는 데 안이할 뿐이다. 당내 서열 1위가 누구인가. 조국 원장이 부재할 때 그 서열을 방증하는 게 (성폭력 사건 이후) 사퇴 순서다. 황 전 총장이 먼저 사퇴하고,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이 사퇴했다. 보통의 경우 당대표가 먼저 사퇴하는 데 말이다."
조국은 '읽음' 표시... 그러나 돌아오지 않은 답변
▲ 김갑년 고려대학교 교수(전 세종시당위원장)가 2024년 11월 28일 조국혁신당 인재영입 5호로 정치권에 발을 들이고 있는 모습. |
ⓒ 조국혁신당 제공 |
- 조국 비대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비대위가 발족할 즈음 조국 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앞으로 비대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고 저를 포함한 세종시당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얘기를 길게 썼다. 아직도 답장이 없다 (기자와 함께 메시지를 확인한 결과, 조 비대위원장은 메시지는 확인했다 - 기자 말).
이해는 간다. 정치인으로서 힘을 가지려면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저한테도 아쉽고 섭섭할 것이다. '그냥 좀 계시면 좋을 텐데'라고 말이다. 조국 위원장께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 '길게 보셔야 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땐 결국 정당하고 진실된 게 승리하지, 단기간 유불리를 가지고 판단했을 땐 도리어 스스로에게 해가 된다.'"
-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요구해 왔는데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로부터 성범죄자로 낙인찍혔다. 현재 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누구보다 피해자 보호와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해 왔음에도 가세연은 저를 '성범죄자'로 낙인찍는 허위 방송을 내보냈다. 명백한 가짜뉴스이자 인격 살인이다. 형사고소와 민사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 중이고 문제 영상 삭제와 정정·사과를 공식 요구했다.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어 제 명예를 회복하고, 더는 누구도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