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13일, 당시 대통령·국방부 장관이었던 윤석열·이종섭이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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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이 채해병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재검토하던 국방부 조사본부 측에 전화를 걸어 "장관님(이종섭)이 이견이 있다"며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2023년 8월 20일 박 전 보좌관과 당시 국방부 조사본부 소속 김아무개 대령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박 전 보좌관은 당일 오후 3시 14분 김 대령에게 전화해 "빨리 털고 가야 하는데"라고 말하며 재검토 보고서 내용의 수정·삭제가 가능한지 반복해 물었다.
해당 통화는 해병대 수사단(단장 박정훈 대령)에 의해 경찰에 이첩된 채해병 사망사건 수사기록을 'VIP(윤석열) 격노' 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한 뒤에 이뤄졌다. 김 대령이 속한 조사본부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며 한창 재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던 때이기도 하다. 당초 조사본부는 보고서에 임 전 사단장 등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통화 후 최종 보고서에는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남았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를 결재했다.
"2페이지, 3페이지" 구체적 언급... "어렵다"해도 계속 "이건 빼도 되죠?"
▲ 지난해 6월 21일, 박진희 당시 육군 56사단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채상병 특검(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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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장관의 최측근 참모 역할을 맡고 있던 박 전 보좌관은 이 통화에서 "본문 2페이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장관님이 이견이 있으시다"고 짚었다. 특히 보고서에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계자 4명은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들이 식별'됐다는 내용을 문제삼았다.
<오마이뉴스>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박 전 보좌관이 언급한 4명은 임 전 사단장, 박상현 전 7여단장, 본부중대장, 현장통제를 맡았던 부사관(중사)이었다.
해당 내용을 거론한 박 전 보좌관은 "그것 때문에 장관님이 이견이 있으셔 갖고"라며 "(장관님이 그 내용이) '굳이 들어가야 되느냐'라는 말씀을 하셔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령은 "아 이거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박 전 보좌관은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면서 '관계자 4명은 현재 사건 기록만으로는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된다'라고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김 대령은 "아 그렇게는... (보좌관님이) 장관님께 (혐의자에서 임 전 사단장 등 4명을 빼는 것은) 제한이 된다고 좀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박 전 보좌관은 "(보고서에 그 내용을 뺄 수 없어도) 언론에 우리가 브리핑하는 자료에는 (우리 의지대로 내용을 담고), 백블(백브리핑)에서 뭐 (우리 의지대로) 설명하며 되니까"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3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좀 빼면 어떤가요? 그러니까 여기보면 '관계자 4명은 안전관리 소홀 등에 단서가 되는 정황이 식별되었으나'(라는 내용을 빼면 어떤가요?)"라고 요구했다. 김 대령은 다시 "그건 좀 빼기에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박 전 보좌관은 "아 그래요?"라고 한 뒤 "그러면 앞에 뭐 '안전관리 소홀' 이 용어는 빼도 되죠? 그러니까 (대신) '범죄의 단서가 되는' 그렇게 써도 되죠?"라고 말했다. 그제야 김 대령이 "그렇게는 가능한데..."라고 하자, 박 전 보좌관은 다시 "(방금 말한 건 가능한데) 이걸 다 들어내기는 어렵다?"라고 물었다. 김 대령이 "예 그렇습니다"라고 재차 의지를 드러내자 박 전 보좌관은 통화를 마무리했다.
김 대령이 박 전 보좌관의 요구를 대부분 거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 등을 빼고 대대장 2명만 보고서에 혐의자로 적시했다.
박진희, 최근 직무배제... 이종섭 측 "장관의 권한" 주장
▲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채해병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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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녹취록을 확보한 특검팀은 지난 7월 28일 박 전 보좌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한 데 이어 지난 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국방부 군사보좌관 복무 후 소장으로 진급해 56사단장을 맡고 있던 박 전 보좌관은 최근 직무에서 배제됐다.
추미애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이 전 장관은 혐의자 축소를 지시한 바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녹취록에는 그가 박 전 보좌관의 입을 통해 누차 수사에 개입하려고 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이 전 장관과 박 전 보좌관의 부당한 수사외압 실체를 특검이 엄정한 수사로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사본부는 (재검토 보고서 외에) 이 전 장관의 외압에도 임 전 사단장의 혐의점을 별도로 적시한 28쪽 분량의 수사보고서를 경북경찰청에 보낸 바 있다"며 "외압에 맞선 군 실무자들의 노력도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 측은 그동안 내놓은 입장문 등을 통해 "조사본부가 수사업무를 처리하면서 중요사건 피의자의 신병에 관한 결정을 할 때는 통상 지휘관인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 처리해 왔다"며 "이 전 장관은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서 시행되던 법령에 따라 조사본부가 수사하는 피의자 신병에 관한 일반적 지휘·감독권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조사본부가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다시) 이첩할 당시(2023년 8월 24일) 임 전 사단장을 수사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았고, 임 전 사단장 또한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오는 17일 호주대사 임명 의혹 관련 참고인 신분인 이 전 장관에게 출석하라고 통보했고, 이 전 장관 측은 이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 전 장관은 첫 특검팀 조사를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