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정책 형편 없어... 대통령실에 일본전문가 없는 듯"

이영광 기자 TALK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강하게 비판해왔기에 이번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가 다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윤석열 정부의 과거사 합의를 계승한다는 입장이 확인되자 진보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지난 8월 27일, 서울 숙대입구역 인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김 실장과 나눈 일문일답.

"미국의 압박 큰 건 알지만... 원칙까지 버려선 안 돼"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이영광

- 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 합의한 과거사 문제를 계승한다고 해서 진보 진영이 반발하고 있어요. 이 문제 어떻게 보세요?

"전체적으로 과거사 문제는 덮고 미래 지향으로 나가자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진전을 얻을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는 말도 했어요.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잖아요. 그런데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그렇고, 그 뒤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대통령 되기 전과는 달리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 우려됐습니다. 결과적으로 한일 공동선언문이 나왔는데, 내용을 보면 '1965년 한일협정의 기반 위에서 미래 지향을 해나가겠다', 그리고 '일본은 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두 문단뿐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일본이 지금까지 계속 써왔던 말입니다.

첫 번째, 1965년 한일협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부분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극복된 체제예요. 그런데 이걸 부정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우리는 1965년 체제를 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했고, 결국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겁니다. 이는 정상회담 뒤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서도 확인됐습니다.

두 번째,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표현은 사실 아베 총리가 사죄나 반성 같은 말을 피하려고 만든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무라야마 담화나 파트너십 공동선언 등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반성도 포함돼 있지만, 동시에 아베 내각도 '역대 내각'에 들어가잖아요. 실제로 기시다 총리가 2023년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뒤 한국에서 시민 반발이 거세자 5월 정상회담에서 똑같이 그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사도광산 문제 등 역사 현안에서 전혀 진전이 없었어요."

- 그러면 왜 이재명 정부는 그렇게 할까요?

"아무래도 미국 대응이 급했겠죠. 미국의 압력이 상당히 큰 상황이라 일본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원칙까지 버리면 안 되는 겁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강하게 비판한 것과 정면 충돌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문제를 제기하는 거고요. 이재명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뭐냐 하면, 일본과 다른 건 몰라도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있잖아요. 그 이후 위안부 판결도 세 건이나 확정됐습니다. 그 핵심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거예요. 일본 정부는 절대로 이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죠. 결국 이 부분에서 충돌해 온 겁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다른 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행정부 수장으로서 우리 사법부 판결은 지켜야 한다' 정도는 언급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애초에 일본 보수 세력이 이재명 정부를 반일 정권이라고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해 왔는데, 그걸 너무 의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정권에 따라 합의를 뒤집는 건 좋지 않다는 시각을 의식한 건 아닐까요?

"여러 전문가가 지적했듯, 2015년 위안부 합의라는 건 정식 합의문이 아니라 양국 외교부 장관의 기자회견 형식이었습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검증했고요. 피해자 인권 구제에도 반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있었어요.

제3자 변제 역시 합의가 아닙니다. 윤석열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뿐이에요. 따라서 약속이나 합의라고 볼 수 없죠. 무엇보다 헌법을 위반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만이라도 분명히 밝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진보 진영은 과거사 문제 어떻게 풀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면서 가겠다'고 말한 만큼, 문제의 끝이 아니라는 건 본인도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조세이 탄광에서 유골이 발견됐잖아요. 강제동원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조세이 탄광 문제는 일본 시민들이 국회에서 전향적인 답변을 이끌어낸 적도 있고, 앞으로도 유골 발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일본과 협력해 풀겠다고만 했어도 의미가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회담이 끝나고 사흘 뒤에야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이건 역사 문제가 덮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증거예요. 강제동원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2만여 명의 조선인 문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묻혀 있는 전사자 유골, 일본 각 사찰에 안치된 노무자 유골 문제도 다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봉환해 와야 합니다."

- 제3자 변제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지난 정부에서 제3자 변제가 국민의 강한 저항을 받았죠. 윤석열 정부가 무너지는 데도 제3자 변제, 친일 굴욕외교,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 식민 지배 정당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앉힌 것 같은 '역사 쿠데타'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기금이 없어 더 줄 수가 없어요.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제3자 변제로 아직 판결금을 못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제3자 변제의 문제는 한국 정부가 기부금을 모아 지급하다 보니 일본 전범 기업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정의로운 해결을 막은 셈이에요.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는데, 한국 정부가 대신 돈을 줘버리니 일본 기업이 나서겠습니까?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판결 이행을 막고 문제 해결을 막은 건 명백합니다."

-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2015년 합의는 이미 파탄 났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밝혔고, 2021년 이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세 건의 소송에서 모두 '일본 정부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이건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국제법의 국가 면제라는 한계를 넘어선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판결이에요. 우리나라 판결이 브라질 같은 나라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계속 이행을 요구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에 전문가 없는듯, 시민사회 역할이 중요"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언론 발표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2025.8.23
ⓒ 연합뉴스

-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윤석열 정부와 이재명 정부의 차이가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아예 걸림돌이자 제거 대상이라고 봤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만나서 '일본에서 다 정리하고 왔다'는 발언을 해 놀라기도 했는데, 사실 정리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만 재일 동포 간담회에서는 간도 대학살 문제나 유골 문제를 언급했고, 비행기 안에서는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이끌어낼 조치가 필요합니다."

- 그걸 일본 총리에게 직접 얘기해야 의미가 있지 않나요?

"그렇죠. 앞으로 조세이 탄광 유골 조사 문제나 사도광산 희생자 추도식 같은 현안에서 실무 협상이 있을 겁니다. 그런 문제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 윤석열 정부 때보다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국제 정세 영향이 크죠. <요미우리 신문> 보도 때부터 저희는 크게 문제제기 했는데, 워낙 미국 압력이 강하다 보니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번이 첫 정상회담이었고, 과거사 문제는 언젠가는 다시 떠오를 겁니다. 양국 정상이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강제동원 추가 소송 판결도 나올 것이고, 야스쿠니 합사 철회 소송도 제기할 겁니다.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정부를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실에 일본 전문가가 없다는 거예요.

- 왜 전문가가 없다고 보시나요?

"정책들을 보면 그래요. 80주년 광복절 담화나 한일 정상회담까지,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역대 민주당 정부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노무현 정부 때는 독도 문제에 대해 '독도는 단순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 문제'라고 담화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원칙은 강조했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아베 정권의 방해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출발부터 원칙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거라고 전망하세요?

"결국 시민들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부가 과거사를 뒤로 미루려 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계속 문제 제기하고 정부를 끌어가야 합니다."

-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아닐까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가 좋아지는 걸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단순히 덮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역사 정의, 피해자 인권과 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 봉합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