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본명 전유관)씨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박물관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무엇을 할 것인가?, 자유공화 리셋코리아를 위하여'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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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전한길 수렁'에 빠졌다. 전한길씨가 등장해 내란 수괴 혐의자 윤석열씨를 옹호하고 부정선거론을 주장한 토론회에 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하고, 전씨의 입당 소식까지 뒤늦게 알려지면서 국민의힘은 그를 둘러싼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권 주자들을 포함한 국민의힘 인사들은 전씨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서로를 '친길(친전한길)', '반길(반전한길)'로 규정하면서 설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혁신에 대한 목소리는 '전한길 논란' 속에 실종 상태다.
전한길 두고 가르마 못 타는 당 지도부
전직 한국사 강사인 전씨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14일 국회 박물관에서 윤상현 의원 주최로 열린 '무엇을 할 것인가? 자유공화 리셋코리아를 위하여' 긴급토론회가 시발점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축사에 나선 전씨는 "반성, 사과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 옹호 ▲ 친한(친한동훈)계 질타 ▲ 부정선거 주장을 내놨다. 이날 현장엔 당 지도부와 여러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해 전씨의 축사를 들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당 혁신을 위해서는 '탈윤석열'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씨의 축사 내용을 두고 '태극기 광장 세력에 안방을 내줬다', '극악한 해당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하자 "전혀 공감이 안 된다. 당을 폄훼하고 음해하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곧이어 전한길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전씨는 복수의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추종자 약 10만 명이 이미 입당했다"면서 "내가 지지하는 사람을 당 대표로 만들겠다"라는 목표를 밝혔다. 또 "앞으로 평당원을 더 모아 좌파의 개딸처럼 우파의 개딸을 만들 생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씨가 '태극기 세력' 조직화를 통해 당내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시사하자 당권 주자들과 당내 주요 인사들은 전씨 입당 옹호와 비토로 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친길'·'반길'로 갈린 당권 주자들
▲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왼쪽)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와 귓속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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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며 전씨를 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20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뒤 "(전씨의) 입장 절차에 하자는 없다"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문호를 개방하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씨가) 저와 만나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열린 관계를 가져가고자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역시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장동혁 의원도 23일 "토론회에 온 모든 분은 그동안 국민의힘을 지지했고 탄핵 국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왔던 분"이라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국민의힘에) 왔다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때 감사함을 전했던 분들을 향해 '대선 패배했으니 옆에 오지 말라'라고 하는 건 보수정당이 보여줘야 할 모습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인요한 의원은 지난 22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서 전씨의 입당을 두고 "환영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당내에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당권 경쟁 상대인 김문수 전 장관을 겨냥해 "윤어게인, 부정선거, 계몽령을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당을 열어 수용하자고 했다"라며 "당 대표 당선만을 위해 혁신도, 극단세력과의 결별도, 어느 것 하나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역시 당권 출사표를 던진 조경태 의원도 "부정선거론·윤어게인(YOON Again)·전광훈 추종 세력 등은 당이 절연해야 할 3대 극우 세력"이라며 전씨를 향해서도 "제가 대표가 되면 그런 세력은 반드시 솎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 하고 있는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7일 "전한길 강사 같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석열 어게인'의 아이콘을 국민의힘에 입당시키는 것을 국민께서 어떻게 보실지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 1야당 삼킨 '전한길 블랙홀'... 전당대회도 친길 대 반길 구도로?
▲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나오며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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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지자 당 지도부는 전씨에 대한 '조치'를 언급했지만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당 지도부가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전씨의 언행 등에 대한 검토·조사, 당헌·당규에 따른 조치 방안 검토를 지시한 사실을 밝히면서도 "한 사람의 입당을 빌미로 '극우 프레임'을 씌우거나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당과 당원에 대한 심각한 폄훼이자 해당 행위"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안이한 현실인식을 꼬집고 나섰다. 윤 위원장은 지난 22일 "전씨가 당원이 된 후 윤 대통령을 끌어안아야 한다'(라는 등의)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했다. 당 지도부가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하는데 굉장히 오락가락하고 있다"라며 "리셋코리아 (토론회) 갔다가 비난받으니까 '몰라서 갔다'라고, 전한길 강사가 입당했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그랬다가 비난받으니까 '조치하겠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21일 송언석 비대위원장을 향해 "불법 계엄 옹호(윤어게인)와 부정선거 음모론 선동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극우 '프레임'이 아니라 극우가 맞다"며 "당과 보수를 위한 절박한 우려의 목소리를 '입틀막'하는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전한길 논란이 당내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당 혁신 관련 논의는 전한길의 거취 문제에 묻히고 있다. 이에 따라 8월로 예정된 당 전당대회 또한 당 재건과 혁신 방안이 중심이 아니라 친길이냐, 반길이냐는 퇴행적 계파 싸움 구도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