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는 드론을 동원한 러시아 종심 타격 작전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 시설 공격이 급증한 게 특징이다. 유전은 물론, 파이프라인, 정유소, 저유소, 발전소, 변전소 등이 주된 타깃이다. 특히 정유소를 노린 공습이 많은 탓에 러시아는 산유국임에도 에너지 대란을 겪고 있다. 최근 러시아 주요 도시에선 휘발유와 경유가 떨어져 개점휴업 상태인 주유소가 늘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10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정유 능력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크게 약화됐다. 러시아의 정유 능력은 연간 최대 3억2700만t에 달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가 16개 정유시설(연간 1억2300만t)을 집중 공격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러시아 정유 능력이 최대 38% 감소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정제유 공급이 멈추면 자동차와 열차, 항공기, 선박은 물론 공장도 멈추게 된다. 자칫 국가 경제 마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겨울을 앞두고 이뤄지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세는 러시아에 치명적 피해를 안길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의 겨울은 매우 춥다. 모스크바는 10월 하순 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고, 11월부터 2월까지 영하 10~20도 추위가 계속된다. 이런 혹한에 우크라이나의 공습으로 발전소가 제 구실을 못 하면 러시아에선 동사자가 속출할 것이다. 분노한 민심은 푸틴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저가형 자폭 드론으로 러시아를 때림으로써 ‘전략폭격’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거리 자폭 드론은 FP-1이라는 모델이다.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이 드론은 최대 1600㎞를 날아가120㎏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시속 120~150㎞ 정도로 느리지만 덩치가 작은 데다 낮은 고도로 날기 때문에 레이더에 쉽게 탐지되지 않는다. 자체 재밍 대응책까지 갖춰 전자전으로 무력화하기도 어렵다. 5월부터 우크라이나는 FP-1 드론을 하루 평균 100대씩 생산하고 있다. 이 드론의 초기 도입 비용은 대당 5만5000달러(약 7800만 원) 정도였지만 현재는 3만~4만 달러(약 4300만∼5700만 원)까지 낮아졌다. 이 드론과 사거리가 비슷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수출가격이 1발에 400만 달러(약 57억 원), 러시아 Kh-101은 130만 달러(약18억5600만 원)에 달한다. 자폭 드론의 가성비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높은지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FP-1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사거리와 위력이 늘어난 FP-5 ‘플라밍고’도 만들었다. 순항미사일 형태로 개발된 FP-5는 길이 14m, 발사 중량 6t에 달하는 거대 드론이다. 플라밍고는 순항미사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장거리 자폭 드론이다. 소형 훈련기용 터보팬 엔진을 탑재한 이 드론은 덩치와 무게가 한국산 고등훈련기 T-50(길이 10.3m, 무게 2.5t)과 맞먹는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길이 6.2m, 발사 중량 1.3t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덩치다. 플라밍고는 탄두 중량만 해도 토마호크의 2배가 넘는 1.15t으로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게다가 비행속도가 최대시속 900㎞에 달해 격추도 어렵다.
이 무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8월 30일 크림반도에서였다.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드론 3대 중 2대가 명중해 러시아군 막사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공기부양정 6척을 대파하는 전과를 거뒀다. 우크라이나는 FP-5를 50만 달러(약 7억1600만 원)에 매일 7대씩 찍어내고 있다. 반면 러시아군의 지대공미사일 재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는 물론, 군수공장과 주요 군사시설의 피해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거리 자폭 드론이 순항미사일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순항미사일이 ‘비싼 값’을 하기 때문이다. 순항미사일은 명중 정밀도가 매우 높은 데다, 고성능 유도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그 덕에 산과 건물을 타고 넘듯이 초저공으로 비행해 방공망 사각지대로 파고들 수 있다. 게다가 고성능·고연비 제트엔진이 적용돼 빠르고 사거리가 길 뿐 아니라, 장거리 자폭 드론은 불가능한 복잡한 회피 기동도 할 수 있다. 대전자전(ECCM) 능력이 부여된 모델도 많아서 일반적인 전자전 장비로는 교란하기도 어렵다. 반면 장거리 자폭 드론은 무인표적기 같은 기성품을 개조하거나 민간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을 조합해 만들기 때문에 성능과 내구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공 화망에 대단히 취약하고 간단한 전자전 공격에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악천후에는 고장도 잘 나다 보니 운용상 제약이 많다.
적잖은 단점에도 장거리 자폭 드론이 각광받는 이유는 역시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앞서 나열한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장점이다. 장거리 자폭 드론은 비슷한 사거리를 지닌 순항미사일과 비교해 10분의 1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 기술 장벽도 낮아 복잡한 설비가 없는 일반 공장에서 쉽게 제작이 가능하다. 특히 전시에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조달해 부담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은 무기로서 더할 나위 없는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