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날개 달고 비상하는 대만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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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진입 기준 1인당 GDP 4만 달러 내년 돌파 전망

대만 통계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1%에서 1.4%p 상향 조정해 4.5%로 내다봤다. 챗GPT 생성 이미지 
쌍십절(雙十節)은 대만 건국과 청나라를 붕괴시킨 신해혁명을 기념하는 날을 가리킨다. 쌍십절이라는 이름은 신해혁명이 1911년 10월 10일 일어나 십(十)이 두 번 들어가서 붙은 것이다. 대만 정부는 매년 10월 10일 수도 타이베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다.

올해 제114회 쌍십절은 그 어느 때보다 대만에 의미 있는 날이었다. 대만 경제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도 돋보이는 성장률을 보이며 선진국으로 비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20세기 중후반부터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동아시아 4개국을 지칭하는 말이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기념 연설에서 “올해는 대만이 부상하는 해”라며 “대만 국민은 국제적으로 부러움을 사는 경제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AI 반도체 호황에 ‘아시아의 대룡’ 부상
대만 경제는 올해 들어 비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성장률이 고공 행진 중이다. 대만 통계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1%에서 1.4%p 상향 조정해 4.5%로 내다봤다. 대만 중앙은행도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3.05%에서 1.5%p 높은 4.55%로 제시했다.

해외 금융기관들은 대만의 올해 GDP 성장률이 이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대만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5.1%로 수정했다. 4월 전망치(3.3%)에서 1.8%p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도 9월 말 대만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평균 5.3%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8월 말 전망(4.5%)보다 0.8%p 높은 수치다. 일본 노무라는 8월 4.6%에서 9월 6.2%로 1.6%p나 높였고, 미국 JP모건은 5.8%에서 6.1%,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메릴린치는 3.5%에서 5.2%, 미국 씨티그룹은 3.5%에서 4.4%, 영국 HSBC는 3.3%에서 5.7%로 높였다. 반면 해외 금융기관이 내놓은 한국 GDP 성장률 전망치는 1% 내외다.

올해 대만이 동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만의 8월 수출액은 사상 최대인 584억9000만 달러(약 83조 원)를 기록해 한국(584억 달러)을 넘어섰다. 한국이 대만에 월간 기준 수출액을 역전당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대만의 올해 상반기(1∼6월) 수출액은 2851억9160만 달러(약 409조 원)로 1년 전보다 27.1% 급증했다. 반면 한국의 상반기 수출(3347억6284만 달러·약 476조 원)은 전년 동기 대비 0.03% 감소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10월 10일(현지 시간) 타이베이 총통 관저 앞에서 열린 제114회 쌍십절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TSMC, 밤샘 연구개발로 기술 격차
대만의 수출 증가세는 하반기 들어서도 꺾이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은 미국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AI 반도체를 대거 수출하고 있다. 대만의 올해 2분기 GDP 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1%나 급등했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 생산의 40%를 담당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대만 정부는 TSMC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만 경제 컨트롤타워인 국가발전위원회 예쥔셴 주임위원(장관)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 우위가 적어도 5~10년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70.2%를 기록했다. TSMC의 3분기 매출은 9899억2000만 대만달러(약 46조 원)에 달해 전년 동기(7596억9000만 대만달러·35조 원)보다 30%나 증가했다.

대만은 반도체 장비 투자에서도 한국을 추월했다. 반도체 장비 투자 규모는 반도체 업황에서 일종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상반기까지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는 136억 달러(약 19조 원)로 대만의 158억 달러에 못 미쳤다. 예 주임위원은 “올해 대만 경제가 잘나가는 것은 AI 반도체 산업 덕분”이라며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출 증가로 대만의 외환보유고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만 중앙은행은 9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가 전월 대비 55억1000만 달러 늘어난 6029억4000만 달러(약 858조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6위 수준으로 대만 외환보유고가 6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게다가 외국인의 대만 주식·채권 및 대만달러 예금 보유액은 9월 말 기준 1조400억 달러(약 1480조 원)에 달해 전월 9511억 달러를 넘어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이는 전체 외환보유고의 172%에 해당한다.

더욱 주목할 점은 대만의 올해 1인당 GDP가3만8066달러(약 5420만 원)를 기록해 한국(3만7430달러)을 2003년 이후 22년 만에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만의 추월 시점을 내년으로 예상했지만, 대만 경제가 호황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 경제가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시점이 한 해 당겨진 것이다. ADB는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특히 선진국 기준점이 되는 1인당 GDP4만 달러도 대만이 한국보다 먼저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통계청은 내년 1인당 GDP가 4만1019달러에 달해 사상 처음 4만 달러 선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이 당분간 대만을 재추월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한국의 내년 1인당 GDP는 3만8947달러 수준으로, 답보 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은 그동안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약했지만, 이제는 일본을 바짝 뒤쫓고 있는 ‘대룡(大龍)’이 된 셈이다.

라이 총통 “AI 인재 100만 명 만들겠다”
대만 경제 고속 성장에는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육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반도체산업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와 노동제도 개편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표적 사례로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적용하려던 ‘반도체 특별법’ 제정이 무산된 것을 들 수 있다. 대만은 이미 2017년 반도체 기업에 주 40시간 근무 예외를 인정하는 근로법을 도입했다. TSMC는 R&D를 24시간 3교대로 진행하는 ‘나이트호크 프로젝트’로 삼성전자의 추격을 따돌렸다. 특히 대만은 ‘대만판 칩스법(반도체법)’을 2023년부터 시행해 반도체 R&D 투자액의 25%를 세액공제 해주고 있다. 한국은 올해 1월에야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0%로 높이는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대만은 집적회로(IC) 설계로 시작해 제조·패키징·테스트 등 전체 공정을 묶어 산업을 성장시켰다. 1980년대부터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해 세제 혜택, R&D, 인프라를 집중 지원했고, 최근에는 첨단 공정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대만을 ‘AI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반도체에 이어 AI 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라이 총통은 중국의 공급망 장악 전략에 맞서며 AI 수출 호황을 이어가고자 AI 인재 100만 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대만 정부는 종합소득세를 대거 면제하는 등 감세 정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라이 총통은 내년부터 월급이 5만 대만달러(약 232만 원) 이하인 독신 노동자의 종합소득세를 면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5세 이하 자녀를 둔 부부는 연간 소득 164만1000대만달러(약 7630만 원) 이하,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하는 부부는 연간 소득 212만 대만달러(약 9860만 원) 이하인 경우 앞으로 종합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라이 총통은 내년에 40∼50% 국민이 세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면서 내년이 역사상 세금이 가장 적은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감세 정책에 따른 소비 진작으로 대만 경제는 더욱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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