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어로 ‘타마키 마카우라우(Ta-maki Makaurau)’로 불리는 오클랜드는 과거부터 여러 부족이 이 지역을 두고 경쟁했을 만큼 비옥하고 전략적인 땅이었다. 이러한 배경은 오늘날 오클랜드가 다층적인 역사성과 복합적인 도시 정체성을 지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오클랜드까지 비행시간은 약 11시간 30분. 다행히 직항 노선이 운항 중이다. 뉴질랜드 내에서는 항공기, 장거리버스, 렌터카 등을 통해 오클랜드와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등 주요 도시 간 이동이 가능하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미션 베이와 타카푸나 해변은 도심의 연장선이면서도 전혀 다른 감각을 품고 있다.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하루가 흐른다. 해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바다와 도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자연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는 구조는 오클랜드를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처럼 여겨지게 한다.
50여 개 사화산(extinct volcano) 위에 자리한 이 도시는 지질학적 구조 자체가 도시 형태를 규정한다. 마운트 이든, 원트리힐 같은 고지대는 과거 분화구였던 자리를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의 일상 속 쉼터가 됐다. 이들 언덕에서는 도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마치 자연이 도시를 감싸안은 듯한 구조다. 도심 곳곳에 화산 언덕이 자리하고, 그 사이를 따라 숲과 공원이 퍼져 나간다.
문화적 면모 또한 뚜렷하다. 오클랜드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를 품은 다문화 도시다. 유럽계 이주민과 마오리족뿐 아니라 사모아, 통가 등 태평양 섬나라 출신 이민자와 아시아계 인구가 고르게 섞여 있다.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오가고 시장과 음식, 거리 간판에도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한다. 오클랜드박물관은 마오리 문화의 기원과 전통, 식민지 시기 역사, 그리고 현대사회 속 원주민의 자리를 유기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도시는 과거를 현재의 일부로 품고 있으며, 특정 문화가 다른 문화를 압도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페리를 타고 바닷길을 건너면 도심의 또 다른 얼굴, 데번포트에 닿는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과 작은 책방, 앤티크 숍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오래된 시간을 품은 골목에는 오클랜드의 과거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마운트 빅토리아 언덕에 오르면 오클랜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도시와 항구, 해변과 공원, 그리고 그 위를 지나는 구름의 흐름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도심에서 가까운 거리임에도 마을의 리듬은 느리고 조용하다.
오클랜드는 관광지로서 화려함보다 일상 속 풍경의 조용한 울림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특별한 목적 없이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시.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 풍경과 느린 속도의 시간들이 그 안에 있다. 해 질 무렵 항구 주변 벤치에 앉아 수면에 비친 노을만 바라봐도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짐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이 떠남이 아닌 회복을 위한 것이라면 오클랜드만큼 그 목적에 어울리는 도시도 드물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