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저도 주식 중독에 빠져 있을 때는 내 이성이 무너졌음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어요. 2016년 12월 주식 계좌에서 ‘-79%’라는 수치를 본 순간을 명확히 기억해요.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악몽으로 꾸는데, 일어나면 저도 모르게 울고 있어요.”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은 8월 27일 기자와 만나 주식 중독에 빠졌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박 원장은 2011년 여름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그해 8월 말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해 50% 수익률을 달성하곤 ‘나는 투자의 귀재다!’라고 생각했다.
‘패닉 셀링’(공황 매도) 후 그해 12월 22일 남은 돈 6800만 원을 SK이노베이션에 넣었다. 다음 날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2013년 1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속됐다. 주당 19만 원에 산 SK이노베이션이 8만 원이 됐다. 8000만 원으로 시작한 주식 계좌에 2500만 원이 남았을 때 “다시 주식투자를 하면 손목을 자르겠다”고 결심하고 모든 주식을 매도했다.
2013년 8월 최태원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주당 7만 원에 팔았던 SK이노베이션 주가는 13만 원으로 폭등했다. 자책하던 박 원장은 2015년 9월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한다. 4년 동안 모은 적금과 정기예금 2억 원에 더해 마이너스 통장으로 빌린 1억 원까지 총 3억 원을 삼성메디슨, 대한항공, 씨티씨바이오에 붓는다.
2016년 1월 박 원장의 주식 계좌에 남은 돈은 1억5000만 원. 반토막이 났다. 이후 매달 월급으로 1000만 원씩을 더 투입해 선물옵션, 레버리지, 급등주 투자를 했다. 2016년 12월 주식 계좌에는 8400만 원이 남아 있었다. 다니던 전북 전주의 병원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한다.
이랬던 박 원장이 현재는 그간 잃었던 손실을 회복하고 주식투자로 연 6% 내외 수익을 내고 있다. 박 원장에게 주식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정신건강을 지키며 투자하는 법을 물었다.
무엇을 ‘주식 중독’이라고 하나.
“주식으로 대인관계가 나빠지거나 직업적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주식 중독이다. 내가 주식 중독에 빠졌을 때는 매일 늦게 출근했다. 오전 9시부터 주식 차트를 봐야 하니 8시 55분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9시 10분까지 주식을 보다가 지각한 것이다. 근태가 나쁘다 보니 직장 동료들과의 대인관계도 안 좋아졌다.”
병원에서 권고사직한 뒤 주식 중독을 극복하고자 무엇을 했나.
“카카오톡을 포함해 모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탈퇴하고 경북 안동으로 내려가 1년 동안 책만 봤다. 줄넘기도 열심히 했다. 목표는 줄넘기 5개에서 10개로, 10개에서 15개로 조금씩 높여갔다. 당시 목표를 ‘언젠가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 ‘강남구 청담동에 병원을 차리겠다’로 잡았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주식 중독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어떤 도움이 있었나.
“내가 언젠가는 주식 중독을 극복하고 괜찮아질 거라는 사실을 믿어준 사람이 셋 있다. 여자친구와 중학교 동창, 경기 판교에 사는 아는 형이다. 이 셋의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수많은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에게는 유혹이 정말 많다. 주식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하면 급등주 순위가 주르륵 나온다. 이걸 보면 ‘인생 역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두엽을 때리고 편도체를 마비시킨다. 그럴 때마다 이 3명이 나에게 갖는 믿음을 떠올렸다.”
“‘지금 괜찮아?’라고 감정을 물어봐야 한다. 그럼 안 괜찮다고 답할 것이다. 그게 중독 치료의 시작이다. 가족이 주식 중독에 빠져 돈을 잃은 모습을 보면 화가 나 잘잘못을 따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는 중독에 빠진 사람을 더 위험한 투자로 이끌 수 있다. ‘내가 성공해서 보여줄게’라는 생각으로 더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 중독에 빠진 가족이 있다면 ‘당신 혼자서 초조해하느라 고생 많았다’는 말을 먼저 해주는 게 좋다.”
2018년 2월 다시 주식 계좌를 확인했다고.
“여자친구가 ‘네가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널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주식을 정리해 경기 지역 아파트를 사려고 주식 계좌를 확인했다. 2016년 12월 주식 계좌에 남아 있던 8400만 원이 2억5000만 원으로 불어 있었다. 나는 당시 경기 변두리의 집을 사고 싶지 않았다. 강남에 있는 집을 사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네가 지금 경기 외곽에 있는 집을 살 돈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사서 단계적으로 더 비싼 집으로 옮겨 가야 한다’고 했다. ‘강남 아파트가 아니면 아무 데도 안 산다’고 다짐했던 나의 ‘가짜 자존감’을 지적한 것이다.”
2020년 3월 주식 계좌를 다시 개설했다. 주식투자를 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얼마의 자금을 투자할 수 있고, 얼마나 묻어놓을 수 있는지를 알았다. 사람들은 주식 차트를 보면 사고팔 때를 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고파는 적기는 특정 종목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2020년 4월 2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할 때는 ‘이 돈은 잃어버리면 수업료로 생각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79%까지 떨어졌던 주가가 -20%까지 올라왔다. 이 정도면 손실 금액을 꽤 회복한 것이다. 전 고점 등을 근거로 더는 주가가 오를 것 같지 않다면 해당 주식을 팔고 더 좋은 주식으로 옮겨 가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손실률이 0%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팔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강박이다. 과거 자신에게 손실을 안겨준 주식은 앞으로도 절대 사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도 강박이다. 지난해에 안 좋았던 주식이 올해는 좋다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주식 중독 자가진단표’에 ‘선물옵션이나 2배 이상의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고 있다’는 항목도 있다. 요즘 2배 레버리지 상품 투자는 굉장히 흔한데.
“3배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 3배 레버리지 상품을 은행 대출을 받아서 사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싶다. 레버리지 투자는 3배 오를 수도 있지만 3배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는 대부분 긍정 편향에 빠져 돈을 벌 생각만 하고 잃을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내가 현재 투자하기에 안정적인 상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가계부에 매일 주식 매매 내역을 적고 옆에 해당 매매를 할 때 느낀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으로 이 주식을 샀고, 산 후에 뭔가 불안하거나 겁이 났는지 등을 적으면 된다. 긍정적인 감정에는 동그라미를, 부정적인 감정에는 엑스를, 애매한 감정에는 세모를 표시한다. 최근 2~3개월 동안 가계부와 일기에 엑스나 세모보다 동그라미가 많다면 투자할 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상장지수펀드(ETF)에만 투자하고 있다. 금 ETF, 브라질 채권 혼합 ETF 등 20개 넘는 ETF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기보다 적금보다만 많이 벌자는 게 목표다. 이렇게 투자하면 변동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본인의 불안이 자신의 나약함이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지 말자. 5년 뒤,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투자에서도, 인생에서도 성공할 거라 믿는다. 성공한 다른 사람이 아니라 0.1%씩 나아지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많이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