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기만 하지 않았던 어느 고독사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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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언제나 죽음은 고독한 일이지만, 누군가 외면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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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규현(가명)님이 임종하신 것 같은데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주말 저녁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랐다. 차분한 마음으로 어르신을 보내드릴 준비를 했다. 규현님의 최근 상태가 좋지 않아 돌아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죽음과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규현님은 당뇨 후유증으로 신장 기능이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병원에서 투병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거동이 어려워 생활이 쉽지 않았다. 일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잠깐의 도움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규현님은 주민센터 등 이곳저곳에 연락해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며 불편함을 호소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했다. 방문요양센터 소개로 처음 뵈었을 때, 가장 먼저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신청을 돕고 소견서를 작성해드렸다. 그 뒤로 일단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서비스를 받게 되어 안도했다. 하지만 하루 오전 서너 시간의 돌봄으로는 생활이 어려웠고, 요양센터에서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늦은 오후에 찾아가 기저귀를 교체하고 먹을거리를 간단히 챙겨드렸다.

먼 가족을 대신한 임종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필요한 약을 처방해드리며 최소한의 질병 관리도 병행했다. 규현님은 공직 생활을 오래 했고 모아둔 돈도 있다고 들었지만, 돈 쓰는 데 인색하셔서 진료를 받지 않으려 해 어려움이 컸다.

처음 인연이 닿고 1년 동안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지냈다. 생활이 안정되자 주변 이웃들도, 주민센터 공무원들도 평화를 되찾았다.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병원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어르신은 “집에 있겠다”며 완강히 버텼다. 보통의 고집이 아니어서 아무도 어르신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주말 저녁에, 잠시 들른 요양보호사가 상황을 확인하고 간호사를 통해 나에게 연락이 왔다.

찾아뵙고 어르신을 살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던 중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하신 듯했다. 먼저 도착한 간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대소변 기저귀를 정리했다. 멀리 사는 자녀가 장례식장으로 바로 오기로 했단다. 그렇게 운구차가 도착하고 어르신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며칠 뒤, 간호사는 “보호자가 감사하다는 인사 한마디 없네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어르신의 마지막 1년을 함께한 요양보호사와 간호사가 가족의 역할을 대신한 셈이었다. 어르신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가는 길이 혼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어르신의 생활상 어려움에 집중하느라, 가족 간의 관계까지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외면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기에


어르신과 자녀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깝게 지내지 못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어르신의 죽음을 마주하고 엉켜 있던 감정이 조금은 풀렸길 바랄 뿐이다. 장례를 치르며 가족이 모였으니, 마지막으로 마음의 정리를 하셨기를 바란다. 서운했던 마음을 조금은 털어버리셨길.

어르신의 죽음은 일종의 고독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곁에는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나 죽음은 고독한 일이겠지만, 누군가가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꼭 슬프지만은 않을 듯하다. 유한한 인생살이에서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라고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선생님의 ‘노 땡큐!’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홍종원 선생님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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