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묻지마’ 선교 탓에 탈북민들 공안에 무더기 검거됐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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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집단 모임으로 중국 공안에 손쉽게 노출… 무더기 검거에 강제 북송 이어지기도
탈북민들이 선교단체로부터 종교 교육을 받다가 공안에 붙잡혔다는 점을 알리는 문자메시지. 선교단체 관계자가 보냈다. 탈북민 제공


“중국에서 탈북민 자매들이 성경 공부를 하다가 잡혔는데, 감사하게 북송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금이 1인당 5만위안(약 997만원)을 내야 한답니다. (…) 기도와 후원이 필요합니다.”

2024년 12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돕는 개신교 선교단체들과 교회에 공지된 문자메시지다. 국내의 한 개신교 선교단체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민 수십 명에게 교리 교육을 하던 중 탈북민 여성들이 중국 경찰에 검거됐는데, 이 여성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벌금을 모금하는 중이라는 내용이다.

한겨레21이 탈북 브로커 황지성(47)씨 등 탈북민들의 증언과 관련 녹취 등을 확인한 결과, 이 내용은 사실로 파악됐다. 이 개신교 선교단체의 선교 활동으로 교리 교육을 받던 탈북민이 중국 공안에 검거된 건 이 여성들을 포함해 2024년 12월에만 최소 12명이나 된다. 게다가 이 12명은 중국 ○○시에서만 검거된 탈북민 수로, 다른 도시에서 검거된 탈북민까지 합치면 실제 구금자는 수십 명이 되리라 추정된다.

2024년 한 해에만 수십 명 검거 추정


이 개신교 선교단체는 탈북민 4천 명의 한국행을 도와 ‘탈북민 구출 영웅’으로 불리는 ‘슈퍼맨’ 목사 최아무개씨가 이끌고 있다. 종합하면, 탈북민의 중국 내 이동과 종교 활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중국에서 슈퍼맨 목사 등의 무리한 선교 활동으로 되레 탈북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뤄지는 탈북민에 대한 지원과 이들의 한국행을 위한 도움은 주로 개신교계 선교단체나 국제인권단체가 진행한다. 특히 개신교 선교단체의 경우, 탈북민에게 도움을 주는 대신 종교 활동 참여를 요청하는 일이 많다. 탈북민 지원은 인도적 성격도 있지만 포교의 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종교 활동을 통제하는 중국과 북한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취지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이사는 “복음주의적(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 전파를 목표로 하는 것) 선교단체들이 ‘우리가 복음화를 해서 성공했다’는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 중국 관련 선교를 해왔다”고 말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선교단체 관계자가 비대면 종교 교육을 하는 모습. 탈북민 제공


문제는 이런 공격적 선교 활동이 중국 수사당국의 감시망에 쉽게 포착된다는 점이다. 탈북민은 중국 공안에 존재 자체로 검거 대상이다. 그런데 중국 내에서 탈북민을 대규모로 한 장소에 모아놓고 교육하다보면 공안에 발각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실제로 한겨레21이 확보한 슈퍼맨 목사 등이 이끄는 탈북민 대상 선교단체의 교육 영상을 보면, 비대면 회의 플랫폼에서 76명 정도가 한 선교사의 설교를 듣고 있다. 이 교육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민이다. 황지성씨는 “소속 인원이 수십 명인 이런 (탈북민) 그룹이 여러 개 있다”며 “(개신교 선교단체가) 이들에게 종교 활동을 하게 하려고 탈북민 리더에게 한 달에 10만원 남짓을 준다. 탈북민에게 이는 큰돈이기에 자연스레 종교 활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런데 탈북민 중에는 공안에 포섭된 사람이 꼭 있다”며 “(이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탈북민을 검거했다가 (공안에 포섭된) 그 사람만 살짝 빼주는 시스템으로 탈북민들을 검거한다”고 덧붙였다.

2023년 10월에도 600여 명 강제 북송


서두에 언급한 2024년 12월 중국 ○○시에서 검거된 12명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들은 교리 교육을 받던 중 공안에 검거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탈북민은 현장 증언 녹취에서 “오늘 둘이 잡혀 나갔다. 막 가슴이 떨린다”며 “오직 (종교 활동) 이거밖에 (잘못이) 없지”라고 말했다. 황씨는 “선교 활동에 참여하다가 잡힌 탈북민이 당시 1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무리한 탈북 선교 시도가 사실상 대규모 강제 북송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2023년 10월 초 중국에 구금돼 있던 탈북민 600여 명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 당시 강제 북송 규모가 워낙 커서 국내외 인권단체에서 반대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황씨는 “600명이 하루아침에 구금된 것이 아니다. 교회 활동으로 인한 검거가 대부분으로, 중국 내에서 계속 잡혔다”며 “슈퍼맨 목사 등 북한 선교 목사들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한 탈북민 선교단체 관계자도 슈퍼맨 목사 등의 무리한 선교가 강제 북송의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선교사가 그분들을 만나고 집회를 한다든지 모임을 가졌는데, 중국 공안이 체포하게 되면 선교사는 추방당하고 탈북민은 감옥에 가둔다”며 “탈북민에게 북송시키겠다고 위협하고, 북송시키지 않더라도 10만위안(약 2천만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 브로커 ㄴ씨도 “몇 해 전 중국 청도(칭다오) 지역에 있는 선교단체에서 기도하는 과정에 (탈북민) 20명이 붙잡혔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을 연구해온 이대훈 전 성공회대 평화학 연구교수는 “해당 국가의 국내법을 무시한 종교단체의 활동이 갖고 온 예견된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선교단체에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슈퍼맨 목사 등이 운영하는 개신교 선교단체는 일부 탈북민에게 탈북 비용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국에 가기 전 3개월 동안 종교 교육을 듣겠다는 ‘서약서’를 쓰도록 한 사실이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서약서에는 중국을 떠나 라오스·타이 등 동남아 국가에서 3개월 동안 선교 교육을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탈북민이 중국을 벗어나면 상대적으로 검거나 강제 북송 위협이 적다. 이 때문에 선교단체는 탈북민이 북한이나 중국에 머무르는 불안한 시기에 이런 서약서를 쓰도록 한 뒤 동남아 국가 등에 당도하면 한국으로 서둘러 가기보다 종교 교육부터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 선교단체들은 이를 위해 타이·라오스 등에 선교센터도 세웠다.

 

탈북민에게 지원하는 대신 종교 교육을 받겠다는 서약서를 받으라는 슈퍼맨 목사의 지시 문자(왼쪽). 슈퍼맨 목사가 지시해서 쓰게된 탈북민들의 서약서를 보고하는 문자(오른쪽)


“3개월 선교 교육 받아야 탈북 비용 지원” 서약


한겨레21이 확보한 서약서를 보면, 사실상 강제조항으로 보이는 대목이 적지 않다. ㄱ목사가 운영하는 선교회와 한 탈북민의 이름이 들어간 서약서를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시 전 구출 비용(한화 2천만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다. 종교 교육을 받지 않으면 탈북 구출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다. 개신교인이 되지 않으려면 탈북을 지원할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서약서에는 “촬영된 모든 영상 일체 (저작권이) ○○에 있음을 동의하고 확인한다”며 탈북 과정을 담은 영상의 저작권을 선교단체가 가진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겨 있다.

슈퍼맨 목사 또한 탈북 브로커 황지성씨를 통해 탈북민에게 이런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서약 내용은 이렇다. “본인은 슈퍼맨 목사님 도움으로 한국으로 가면서, 3개월간 교회 관계자 선생님들의 말씀을 성실히 따를 것을 서약합니다. 탈북 비용 한화(2천만원)는 목사님께서 지급하셨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본 내용 미이행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것을 서약합니다.”

이대훈 전 교수는 “온전히 탈북민 의사에 의해서 불이익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계약이 체결돼야 한다. 그런데 한쪽(탈북민)이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렇게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서약서를 쓰는 것 자체가 위법 소지가 있다”며 “종교 행위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나라 헌법에 있다. 종교 기관에서 하는 교육을 의무적으로 듣게 하는 것 자체로 위법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슈퍼맨 목사는 종교 모임을 주도해 탈북민이 공안에 체포된 상황을 두고 “저는 그런(선교) 것은 하지 않는다. 한 탈북민을 다른 선교단체에 소개해준 적이 있는데, 그 탈북민이 나를 안다고 말하고 다녀서 오해가 발생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단체에서 성경을 가르쳤고, 공안에 잡혔다. 이후 풀려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600명이 잡힌 부분에 대해서도 관여한 바 없고, 오히려 그들을 석방하기 위해서 돈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서약서 작성 논란을 두고는 “인권적으로 오해 소지가 있는 것을 안다. 코로나19 전에는 나도 서약서 쓰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코로나19 이후에 탈북 비용이 높아지면서, 성경 공부를 하지 않고 동남아 국가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탈북민 4명에게만 서약서를 쓰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ㄱ목사는 “그걸(서약) 안 하면 돈을 물어내라고 한 것은 사실인데, 단 한 명한테도 돈 받은 사람이 없다. 있으면 책임지겠다”며 “영상도 공개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ㄱ목사는 이어 “(탈북민의) 목숨을 살려주고, 안전하게 (동남아 국가에) 데려다놓고, 그 3개월을 공부하게 한 것이 인권 탄압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조윤상 다큐멘터리 감독(전 한겨레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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