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여 한겨레21은 매주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소식을 독자께 전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공포와 살풍경, 극한의 굶주림과 참혹한 죽음이 뉴스의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한 이유가 있습니다. 처벌받지 않은 범죄는 반드시 재발한다는 경험칙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0월13일(현지시각) 이집트 샤름엘세이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1단계 휴전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서명식 참석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입니다. 교전 당사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하마스 대표단도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번 ‘휴전’은 ‘유통기한’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휴전 협상에 따라 하마스 쪽은 붙잡고 있던 생존 인질 20명을 풀어줬습니다. 2년여 만에 생환한 인질들이 가족 품에 안기는 장면은 뭉클했습니다. 깡마른 인질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인질이 풀려나자 이스라엘도 붙잡고 있던 팔레스타인 수감자 2천 명을 놔줬습니다. 역시 깡마른 수감자들도 사랑하는 이들을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만만다행입니다.
“멈추지 않던 수년의 전쟁과 끝없는 위험을 지나, 오늘에야 하늘은 평온하고 총성은 고요해졌으며 사이렌이 멎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13일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를 두고는 “특출한 용기를 가진 남자”라고 상찬했습니다. 득의만만한 네타냐후 총리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많이 갖고 있다. 솔직히 그 가운데 상당수를 이스라엘에 공급했다. 비비(네타냐후 총리 애칭)가 ‘이 무기, 저 무기, 또 저 무기 좀 달라’고 요청했다. 일부는 내가 알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요청한 무기를 이스라엘에 다 내줬다. 이스라엘은 그걸 잘 활용했다. 강력한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평화를 불러왔다. 힘이 곧 평화를 이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잘 활용했다’는 무기는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주민을 죽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자백’이란 낱말을 떠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집단살해)는 미국의 ‘조력살인’입니다. 미국은 방관을 넘어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를 주도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방관도, 지원도 범죄입니다. 힘으로 강제한 평화는 강제당한 이들에게 평화일 수 없습니다.
사망 인질 주검 인도가 늦다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향하는 인도적 구호물품을 다시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무차별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힌 주검은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곧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집 잃고 배 곯은 가자 주민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겁니다. 전쟁이 끝났다고요? 제노사이드를 잊지 마세요.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740일째를 맞은 2025년 10월15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6만7938명이 숨지고 17만169명이 다쳤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