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입장문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말로는 피해자를 위한다면서 여전히 사실 공방을 하려는구나. 저는 아직 누구한테도 사과를 못 받았는데도요. 이런 당의 대응이 정말 피해자를 위한 건지 묻고 싶어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을 퇴사한 ㄱ씨가 말했다.
2025년 9월21일 조국혁신당 누리집에 ‘공보국 알림’이 떴다. ㄱ씨가 당한 괴롭힘 피해가 최근 언론에 보도되자 당이 “괴롭힘이 아니다”라고 공개 반박한 것이다. 당은 두 달 전인 7월 ㄱ씨 사건 조사 때도 신고 내용 대부분을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를 감시할 의도가 없었다”는 가해자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당내 성폭력·괴롭힘 대응 실패를 뼈아프게 돌아보겠다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지 엿새 만이었다.
위계를 이용한 폭력의 가해자들은 통상 조직 안에서 직급이 높거나 ‘윗선’과 친분이 두터운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조직 차원에서 단호한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편가르기와 2차 가해가 만연하며 조직 전체 갈등으로 비화한다. 조국혁신당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당사자들의 문제였지만 대응 과정에서 조직 문제로 확대됐다.
문제의 사건은 2025년 2월 발생했다. ㄱ씨에게 적대적인 상사 두 명이 어느 날 ㄱ씨 책상 뒤에 전신거울을 설치했다. ㄱ씨의 뒤통수와 컴퓨터 화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구도였다. 상사들은 다른 부서 직원에게 “재밌는 일 있었다”며 그 사진을 찍어 보낸 뒤 “ㄱ씨 이제 빌런 돼서 다 싫어한다. 화면 궁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감시와 모욕주기 정황이다. ㄱ씨는 이 사건을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그런데 당은 내부 조사를 벌여 이 사건을 두 개의 사실로 쪼갠 뒤 ‘거울 설치 행위’는 문제가 없고 ‘메시지를 보낸 행위’만 괴롭힘이라고 인정했다. “거울은 옷걸이 바로 옆에 두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신고인도 당시엔 이의가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는 이유(9월21일 반박문)다. 당은 심지어 “거울 설치 과정에서 신고인의 의사를 무시하거나 감시의 목적으로 설치된 사실이 없다”고 못박았다.
ㄱ씨는 반발했다. “그 사람들이 분명히 거울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인격모독성 발언을 했잖아요. 거울을 설치한 의도가 사실상 그 메시지로 드러난 건데 당은 왜 일방적으로 가해자 변명만 듣나요?”
실제로 괴롭힘 여부를 볼 땐 당과 같은 제삼자의 관점보다 피해자의 관점이 더 우선시된다. 대법원 판례(2017두74702)는 직장 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부도 이를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다.
현실에선 피해자 의사가 뒷전이었다. ㄱ씨가 처음부터 ‘외부 조사를 원한다’고 했지만 당은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의 법조인 경력을 내세워 당내 조사를 밀어붙였다. 그러다 도중에 입장을 바꿔 외부 노무법인으로 사건을 보냈다. 당은 “내부 조사와 노무법인 조사 결과가 같았다”고 말했지만, 정작 노무법인 보고서는 피해자에게 비공개했다. “신고인도 알지 못하는 내용들까지 사실 조사한 결과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이유다.
당은 ㄱ씨에게 가해자 징계 결과를 통보하면서 비밀서약도 요구했다. “원래는 인사 규칙상 징계 대상자(가해자)에게만 보여주는 건데 이번엔 신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ㄱ씨가 받은 서류엔 ‘다른 목적으로 사용시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고 가해자 이름과 직책은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통보는 피해자의 알권리로, 조직이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신고해서 가해가 멈추면 거기서 끝내거든요. 그런데 조사를 원했다면 그건 정말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가해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회사가 조사 결과와 가해자 징계 처분을 신고인에게 알려야죠. 반발을 차단하겠다고 비밀서약까지 요구하는 건 말도 안 되죠.”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연구자인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말했다.
사건 초기 피해자들을 돕던 당 여성위원회 운영위원들도 비밀서약을 요구 받았다. 피해자를 대리한 강미숙 전 고문은 공론화를 막는 조처라 생각해 거부했다. 당 차원의 후속 논의 기구 ‘인권 향상 및 성평등 문화 혁신 특별위원회’ 위원들도 비밀서약을 했다. 이후 피해자 추천 위원들은 논의 내용 일체를 피해자에게 함구하고 소통을 피했다. “특위에서 다뤄야 할 과제를 전달하는 것조차 차단당했다”고 강 전 고문은 말했다. 괴롭힘 사건 조사자의 비밀 준수 의무(근로기준법 제76조 3)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항인데 되레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수단이 됐다.
당은 여전히 ‘서약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고인도 조사 과정에서 새로 취득하는 정보 등이 존재할 수 있”고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사안에 대해 피신고인들 평판이 저하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경우 신고인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가해자 이름을 가린 것도 “피신고인 불이익 처분이 담긴 징계의결서를 외부에 노출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당의 조처가 있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전 수석대변인을 피해자와 분리한다며 피해자 조력자인 ㄴ씨 옆으로 자리를 배치한 것이다. ㄴ씨는 2024년 12월12일 강미정 전 대변인이 성추행당할 때 “나쁜 손 치우라”며 김 전 수석대변인의 손을 탁 쳐서 제지한 적이 있다. ㄴ씨는 “당시엔 제가 참고인인 걸 몰랐을 수 있다. 그래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여성 직원 옆으로 보내는 게 구성원 보호가 맞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은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는지 비대위에서 다시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9월15일 김 전 수석대변인을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 지도부가 9월7일 총사퇴했지만, 남은 구성원들도 사태 장기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를 들어 비대위 부위원장인 서왕진 의원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두 명의 상관이었다. 서 의원이 혁신정책연구원장으로 재임 중이던 2025년 1월, ㄱ씨가 괴롭힘을 호소하며 자리 이동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조처가 없었고 ‘직장 내 괴롭힘’을 명시한 사직서도 반려당했다. 결국 피해가 더 커져 4월께 괴롭힘 신고에 2차 가해 신고까지 해야 했다. 그를 도운 ㄴ씨도 5월1일 2차 가해자에게 불려간 뒤 상황을 서 의원에게 알렸다. 연구원 내부 갈등이 폭발하던 시기였지만, 서 의원은 별다른 조처 없이 5월 초 원장직에서 당 원내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신장식 의원은 2차 가해 발언을 무혐의 처분하고 피해 조력자만 징계한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4월 괴롭힘 피해자 ㄱ씨가 상급자에게 불려가 “그게 무슨 괴롭힘이냐”라거나 “너 하나로 열 명이 불편하다”는 비난을 받자 동료 ㄴ씨가 도우려고 그 대화를 녹음했다가 감봉 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정작 피해자를 비난한 상급자는 2차 가해로 신고됐으나 문제없다는 판단을 받았다. 두 사건 모두 신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던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됐다.
“비대위 기자회견을 보는데 서왕진 의원이 사과 한마디 없이 ‘정기국회 과제 잘 추진하겠다’ ‘추미애 의원 페이스북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피해자들의 상사였고 원내대표로서 권한도 있는 분이 책임감을 느낀다면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 의원도 제 징계를 의결한 인사위원장이었고요.” ㄴ씨가 말했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연구원장 때는 피해자들과 사안에 관해 특별히 논의한 바가 없었다. 원내대표 때는 당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인권특위 구성 등으로 도왔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인사위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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