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군인 6명이 말하는 ‘애국자 vs 학살자’ 구도 바깥의 이야기… 군사노동에 국민 동원한 국가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누구든지 건들면 죽여버린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나를 건들지 말라고. (…) 그렇게 군대를 제대하고 나왔어요. ‘야, 내가 사고 안 치고 나온 게 너무너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계속 군대에서 애들하고 싸운 생각, 동료들이 죽어가는 생각, 그리고 사회가 나를 볼 때(의) 시선에서 이질감을 스스로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서 누가 조금이라도 건들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고 날마다 술이 아니면 살 수가 없고. 그때는 그렇게 방황했어요. 전부 싫어서. 군대 들어가면서 생각했던 꿈, 나를 변화시키고, 좀더 나은 목표를 향해서 나를 단련시켜야겠다고 계획한 것들이 있었는데, 전쟁 갔다 오고 영창 갔다 오고 나서는 자꾸 사고만 치게 되더라고요 . ”
오경열씨는 1970년 맹호부대 통신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곳에서 인간성을 매 순간 시험당했다. 전투 헬기를 타면 ‘몇이나 살아 돌아갈까’ 두려움에 떨었고, 사람의 귀를 잘라 모으는 동료를 보면 환멸을 느꼈다. 아군에게는 맹목적 충성심을 갖도록, 적군에게는 극단적 배타성을 띠고 덤비도록 훈련받았다. 그런 경험을 한 뒤로는 사회 적응도,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도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2025년 7월 출간된 책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알록 펴냄)에 실린 오씨의 구술 가운데 일부다. 오씨를 비롯한 베트남전 참전군인 6명의 구술을 후세대 평화활동가들이 듣고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오씨는 책 속에서 55년 전의 참혹한 전쟁 경험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고백한다. 전쟁이 일상이 된 오늘날, 노령 참전군인의 증언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책을 기획한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를 2025년 8월18일 서울 종로구 두잉굿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가 활동하는 어디서나 참전군인을 만났어요. 2015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과 응우옌떤런이 처음 한국에 오셨을 때 조계사 일대가 항의하는 참전군인들로 꽉 차서 두 분을 몰래 숙소로 모셨고요. 고경태 한겨레 기자의 ‘한마을 이야기’ 순회 전시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분들이 무조건 반대하는 게 답답해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잘 안 됐어요.”
2014년 베트남전을 주제로 평화 활동을 시작한 이래 석 대표는 곳곳에서 “성난 할아버지들”을 마주쳤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자신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반발하는 참전군인들이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만남이 잦아지자 소통 욕구도 커졌다. “참전군인도 전쟁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당사자인데 그들을 배제하고 전쟁 문제를 얘기하려니 해야 할 걸 안 하는 느낌이었다.”
고민은 차곡차곡 쌓여 2022년 전쟁 기억을 기록하는 단체 ‘아카이브평화기억’ 설립으로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참전군인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쓰는 낯선 언어를 견뎌내니 그 언어를 만든 국가의 전쟁 교육이 조금씩 귀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석 대표가 자주 들은 말 중엔 “‘딱콩’ 소리 나면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 “좀 전까지 나랑 밥 먹었던 전우가 그렇게 죽으면 분노가 일지 않겠냐”라는 말이 있다. 총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그중에는 ‘사실 적을 본 적은 없다’거나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멋쩍게 웃은 참전군인도 있었다. 전투와 무관한 사람이 전장의 공포를 이토록 실감 나게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적’이라는 그림책을 보면 적은 실제로 존재하기보다 ‘전쟁할 때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에 가까워요. 적이라는 존재가 있어야만 전쟁하고 총을 쏠 수 있잖아요. 그랬을 때 참전군인들이 실제로 경험한 적과 교육받은 적이 혼재돼 있죠. 자신이 전장에서 죽음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부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 학습된 이야기를 자기 언어처럼 말하는 경우도 있는 거죠.”
전쟁터에서 ‘적’은 살인을 정당화하는 명분이자 아군의 성과를 증명하는 근거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간 병사들은 ‘전과’(전쟁 성과)를 증명하려 사람의 신체를 수집하는 기행을 저지르곤 했다. “작전을 나가서 전과가 없으면 위에서 욕하고 난리를 치거든요. 왜 전과가 없냐, 거기 분명히 적이 있었는데 왜 못 찾고 빈손으로 돌아오냐고 말이에요. 작전 나갈 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데 전과를 세우라니까 (병사들이) 그런 방법을 억지로 생각해내는 거예요.” 책에 수록된 오씨의 말이다.
석 대표도 ‘포로는 생포하기보단 죽여야 전과가 된다’ ‘적은 내가 잡았는데 공로는 상급자가 취하더라’라는 참전군인의 말을 자주 접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군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의 이야기엔 평화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해요. 그분들이 전쟁에서 겪었던 피로와 고통, 두려움, 그리고 반드시 가난이 등장하고요. 가난을 매개로 국민을 군사노동에 동원한 국가의 책임을 어떻게 기억하고 물을지가 중요하죠. 우리가 어떻게 (그 전쟁에) 연루돼 있는지도 사회운동 안에서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고요. 그걸 가까운 존재부터 시작해보자고 한 게 참전군인과의 만남이에요.” 석 대표가 말했다.
그간 미디어에서 베트남전 참전군인은 주로 ‘월남에서 온 김 상사’나 ‘민간인 학살 군인’으로 그려지곤 했다. 목숨 바쳐 큰돈을 벌어온 애국자이거나 베트남 현지에서 무고한 양민을 죽인 학살자. 무엇이 옳은지를 두고 참전군인과 평화운동가들은 오래 갈등했다. 석 대표는 그 구도 바깥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게,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이 애국·보훈·경제발전 같은 국가 서사나 민간인 학살을 중심으로 한 피해 서사로만 남아 있다는 거예요. 정작 거기 동원된 병사들이 전장에서 겪은 일은 자세히 듣기가 어려워요.”
군인들의 증언을 매개로 평화운동을 하고 싶었다. 워낙 많은 사람(32만 명)이 파병됐고 그중 절반가량(17만 명 추정)은 생존해 있으니, 그들에게 평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실제로 참전군인의 ‘말’을 듣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한 주체였기에 군사분쟁을 옹호하거나 학살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쓸 때가 많았다. 그럴 땐 ‘의미 깨기’를 시도했다.
“여러 안 맞는 얘기가 많죠. 그냥 지나가면 마치 동의하는 것처럼 될까봐 ‘저는 선생님의 생각과 달리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요. 그러면 어떨 땐 그분들도 받아보지 않은 질문이라 답변을 제대로 못하거나 좀 우물쭈물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말해보는 현장이 되게 만드는 거죠.”
책에도 논쟁적인 대목이 있다. “아직도 시신 썩는 냄새가 안 잊힌다” “기억하기 싫은 전쟁이다”라는 군인도 있었지만 “대민 지원만 했고 전투는 안 했다” “베트남을 한 번 더 다녀올 수도 있다”던 군인도 있었다. 전쟁의 비극에 관해 들을 줄 알았던 기록자들은 당황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턱 막히는 심정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워했다.
그 모든 것이 전쟁의 다층적인 얼굴이다. 총알이 오가는 전투만을 보여주는 티브이(TV) 속 전쟁과 달리 실제 전쟁은 거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식량 조달부터 군인 육성, 대민 프로파간다까지 고도의 ‘전투 지원 체계’가 작동한다. 군인들이 ‘살상과 무관하다’고 믿는 각종 물자 지원도 실은 전쟁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그렇기에 참전군인의 말을 ‘듣기’는 우리가 모르는 전쟁을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이다. “순전히 ‘아무것도 연루되지 않은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중에 누가 있겠어요. 연루됨은 우리가 자각하고 못하고의 문제지 연루되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그랬을 때 자꾸 전쟁의 모든 원인을 참전군인한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한계를 깨는 작업도 해야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심판하고 가해자-피해자 이분법을 공고히 하는 대신 그걸 좀 흔들고 우리도 스스로 흔들리는 성찰 지점이 있다면 저는 이 책이 제 구실하는 거라고 봅니다.” 석 대표가 말했다.
책에는 참전군인 아버지에게 고엽제 후유증을 물려받은 고엽제 2세 이재춘씨의 이야기도 실렸다. 병과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 베트남전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전쟁이 야기하는 죽음은 비단 전사(전쟁 중 사망)만이 아니다. 고엽제와 불발탄처럼 긴 시간에 걸쳐, 오늘날 찾아오는 죽음도 있다”고 석 대표가 말하는 이유다.
그는 책을 매개로 평화에 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뤄지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반복되는 국외 파병과 무기 수출 문제도 꼭 다뤄야 할 주제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이후로도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동티모르, 이라크 등에 꾸준히 파병했다. 물론 군사 분쟁지에 파병된 군인이 경험한 일상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제가 뵌 분 중에 국외 파병을 수차례 다녀온 분이 계신데요. 그분은 ‘왜 다들 그곳이 전장이 아니라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요. 국외 파병지도 군사 분쟁 지역이고 군인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곳인데 전혀 위험하지 않은 양, 평화를 위해 가는 양 말하는 건 잘못됐다는 거죠.”
석 대표는 전쟁을 떠받치는 논리의 허상을 시민들과 더 많이 나눌수록 평화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학교에 평화교육을 하러 가면 ‘군인이 꿈’이라면서 ‘국외 파병 가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을 만나요. 무기도 너무 말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다보니 위화감이 전혀 없잖아요. 그런 허상을 계속 벗겨내는 일이 결국 우리가 경험했던 전쟁을 돌아보는 일이고요. 실제로 전장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갖는 힘이 있다는 거죠.”
석 대표는 “평화란 갈등이 없는 고요한 상태가 아니라 잘 갈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거기를 향해 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런데 평화를 추상적 개념으로 설명하면 ‘평화를 위해 전쟁한다’ ‘힘으로 평화를 지킨다’며 평화와 무관한 수단을 동원하더라고요. 그래서 평화를 얘기할 구체적인 사례가 늘 있어야 하고요. 베트남전쟁도 그런 다양한 평화의 관점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