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보다 못한 이주노동자의 두 팔… 극우만이 아닌 모두의 선민의식

이재훈 기자
입력
수정 2025.09.23. 오전 12:12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만리재에서]
중증화상 산업재해로 양팔을 잃은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오기나.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5년 9월 초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노동자 등에 대한 체포·구금 사건은 한 극우 정치인의 신고에서 비롯했다. 강성 공화당원인 토리 브래넘은 “세제 혜택을 받는 한국 기업이 현지인을 고용하지 않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은 미국 경제에 해가 되는 불법행위”라고 신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사업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사회학자 엄기호에 따르면, 극우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국경은 신성한 것이고 국경에 대한 주권은 절대적으로 배타적이어서 다른 나라가 그 어떤 가치와 이유로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공유하기 때문’이다.(제1581호 이야기 사회학) 이들에게 모든 권리와 혜택은 오직 ‘그 땅의 원주인이자 상속자’에게만 돌아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일본의 극우 단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 재일 한국인과 조선인의 특별영주권 등을 ‘특권’이라고 주장하며 혐한 시위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극우가 이런 원칙과 신념을 공유하는 근간에는 자원과 이익을 독점하면서도 차별과 위계가 주는 혜택까지 고스란히 누리겠다는 선민의식과 배타적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선민의식과 배타적 이기주의가 한국에서는 유독 산업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가감 없이 표출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위험 노동이 아무런 안전 조처 없이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경기도의 농기계 제조 공장에서 금속 깎는 일을 하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40)는 어느 날 검은 가래를 뱉어냈다. 면마스크를 방진마스크로 바꿔달라고 작업반장에게 요청했더니, 반장은 “너 거지야? 네 돈으로 사!”라고 말했다. 아지트는 2021년 쇳가루에 의한 ‘간질성 폐질환’을 진단받았다. 1급 방진마스크는 개당 3천~4천원 정도다. 전남 고흥의 한 새우양식장에선 2025년 8월10일 3.5m 깊이의 양식장 바닥을 청소하던 타이인(28)과 베트남인(33) 이주노동자가 배수를 위해 수중 모터를 손으로 만지다가 감전돼 숨졌다. 이들에게 절연장갑과 방수화 등은 지급되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서 쓰는 저압용 절연장갑은 개당 가격이 3만~4만원 정도다.

겨우 4천원이고, 겨우 4만원이다. 그런데 이런 장비가 특히나 이주노동자에겐 지급되지 않는다. 한국인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들은 겨우 4천원이나 겨우 4만원의 ‘손해’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오기나(37)도 그랬다. 오기나는 2019년 태양광 설비 작업을 위해 전신주에 올랐다가 2만29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배변 기능 장애도 생겼다. 회사 대표와 현장 팀장이 50만원을 내고 한국전력에 송전 차단을 요청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산업재해였다. 역시, 겨우 50만원이다.(이번호 표지이야기)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특정 정치 영역이 아니라 이런 배제와 차별, 혐오가 아주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선민의식과 배타적 이기주의에 따른 극단적 이윤 추구는 특정 극우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오기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한국인들에게 이런 걸 질문하고 있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산재 피해 입은 오기나 후원해주실 곳

하나은행 153-910561-30607

예금주(오기나 본인): MUNKHERDENE UUGANBAYAR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