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말자와 최말자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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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최말자씨가 2025년 9월1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받은 뒤 법원 앞에서 꽃다발을 받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국가가 남성의 이름으로 폭력을 가했다. 가해는 61년 동안 이어졌다. 79살 최말자씨의 삶에서 4분의 3에 달하는 기간이다. 검찰은 성폭력 피해자인 최씨가 저항하며 가해자의 혀 일부를 끊어냈다는 이유로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그런 최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2차 가해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최씨가 18살 때 벌어진 일이다.

이후 최씨의 삶은 형법 교과서와 ‘법원사’에 범죄자로 기록된 채 이어졌다. 그런 삶이 크게 두 가지 계기로 뒤바뀐다. 첫 번째 계기는 67살이던 2013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입학이다. 최씨는 이 학교에서 ‘성, 사랑, 사회’ 강의 영상을 수십 번 돌려 봤다. 이 공부를 통해 평생 가슴에 막연한 응어리로 남아 있던 억울한 감정을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의한 피해라는 구체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구체적 언어를 갖게 되자 “사건 당시보다 판결문을 보고 더 억울하고 화가 났다”.

두 번째 계기는 72살이던 2018년 들불처럼 일어난 ‘미투’ 운동이었다. 그해 1월 서지현 전 검사가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의 성폭력을 고발했고, 3월에는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렸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고은 시인, 연극계 대부 이윤택 감독 등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고, ‘스쿨미투’ 운동이 확산했으며, 혜화역 시위가 열렸다. 최씨는 그 2018년을 마무리 짓듯 그해 12월 재심 청구를 결심하고 한국여성의전화 문을 두드렸다. 최씨의 결심은 이후에도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에야 재심 무죄라는 결실을 볼 수 있었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최씨의 싸움은 두 개의 결을 지닌다. 하나는 국가의 가해로 인한 고통을 마침내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피해를 외부 세계와 공유 가능한 경험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개인적 과정이다. 최씨는 이를 통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굳은 의지를 키웠고, “우리가 어떤 정의를 기억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기록할 것인지 선택”(서혜진 변호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개인의 의지가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투’ 운동으로 확산한 동료 여성들의 용기가 최씨의 재심 청구라는 직접행동을 이끌어낸 사회적 과정이다. 이렇게 나온 최씨의 직접행동은 또 다른 여성들을 일깨우는 선순환 연대로 이어질 것이다. 최씨가 “사법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후세까지 나 같은 피해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 자리에 섰다”거나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 건 이런 맥락으로 연결된다.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의지를 변화시킨 것이다.

변화의 끝에서도 가해는 끝이 없다. 최씨의 61년 싸움 끝에 이번에는 강미정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을 비롯한 다수의 피해자가 당내 성폭력에 맞서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의 싸움에서도 가해자의 가해만큼이나 당 지도부의 피해 회복 외면, 고위 간부들이 남성의 이름으로 얹는 2차 가해가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들에게 최씨가 남긴 말을 전한다. “지금 성폭력 사건이 사회에 넘치고, 넘치고, 넘치고, 너무 많아요. 그 피해자들을 위해 제가 힘이 있다면 그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겠습니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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