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12일 오후 최현주씨의 휴대전화에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지인이 ‘유튜브에서 봤다’며 다급하게 영상을 보내왔다. 화면 속에는 낯익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영상에는 ‘아리셀 참사’ 때 회사 입장을 대변했던 전혜선 열린노무법인 노무사의 발언이 담겨 있었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의 배터리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발생한 리튬배터리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최씨는 그때 남편 김병철씨를 잃었다. 최씨는 사고 직후부터 합의를 종용하는 전 노무사의 연락을 수없이 받았기에 그의 얼굴을 잘 알았다. 그런데 사고 1년이 지난 2025년 7월17일, 전 노무사가 법무법인 율촌 등이 개최한 ‘경영책임자와 실무자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안전보건확보의무 대응 실무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해 이 사건을 언급한 것이다.
전 노무사는 사고 당일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속 김병철씨와 또 다른 희생자 김남협씨를 가리켜 “이 사람들은 법률 용어로 관리감독자다. 37초 동안 누군가 대피하라고 했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데 누가 대피를 하라고 지시했어야 하나. 이게 사장님 몫인가. 공장장이 했어야 할 일인가. 결국은 관리감독자의 역할이신데 두 분은 사람을 구하지 않고 배터리를 구하셨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희생자들 탓으로 돌리는 발언이다.
그러나 아리셀 참사는 한두 사람의 순간적 판단으로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 회사는 화재 위험이 큰 리튬배터리를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에 쌓아뒀고 그마저도 비상구 앞에 두어 대피로를 차단했다. 직원 수가 실제 100명이 넘는데도 불법파견으로 서류상 50명 미만으로 유지해 안전관리자 고용 의무를 회피했다.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쓰면서 비상구 위치 등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참사는 안전관리 시스템이 통째로 부재한 결과로 일어났고 그 정점에는 경영진이 있었다.(관련기사☞위험물과 노동자가 한자리에 있었다)
전 노무사는 이 발언으로 인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2025년 9월1일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는 영상을 보고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전 노무사를 고소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 약 한 달간 올라가 있다가 최근 삭제됐다.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몸이 정말 벌벌 떨릴 정도로 화가 났어요. 참담하다, 분노스럽다 이런 말로는 모자라요.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싶었어요. 아리셀이 8개월가량 법정에서 고인들한테 책임 전가하는 걸 제가 한 번도 안 빠지고 다 봤는데 이런 일까지 터지니까 말로 (울분을)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최씨는 아리셀 1심 재판을 방청하며 회사 관계자들의 2차 가해 발언을 숱하게 들었다. 유족의 알권리를 위해 힘들어도 재판에 갔지만 피해자를 탓하는 말은 매번 가슴을 후벼 팠다. “그 영상을 아이들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가장 분노했어요. 요즘은 애들도 SNS에 빠르잖아요. 이제는 이런 일에 종지부를 찍고 싶더라고요.”
전 노무사는 자신의 발언을 보도한 ‘충북인뉴스’의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기사에 얼굴과 이름이 공개돼 경영에 피해가 있다’는 취지다. 그 점이 최씨를 더 분노케 했다.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무슨 피해를 본 건지. 고인 얼굴을 빨간색 동그라미 쳐서 대중에게 유포하는 건 괜찮고 자기 얼굴은 노출돼서 경영에 위협을 느낀다니요? 이는 (피해자 탓하는) 그들의 행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거 같아요.”
전 노무사는 아리셀 참사 때 회사 쪽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합의를 종용한 인물이다. 싫다는 유족에게 하루 수차례 연락해 “경영이 매우 어려운 중소기업”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이름을 틀리거나 자녀가 없는 고인의 가족에게 ‘학자금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유족의 항의를 받으면 그는 “제가 뭘 보냈는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조심하겠다”고 답했다.(관련기사☞가족 잃은 유족에게 “회사도 힘들다”)
전 노무사는 이번에도 ‘오해’라는 입장이다. 그는 한겨레21에 “관리감독자가 긴급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회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불법파견, 인력공급으로 인해 관리감독자의 의무가 모호한 점도 설명하려 했는데 시간상 오해가 생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