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당시 대통령이던 윤석열이 기조연설에 나섰다. “대한민국은 공적개발원조(ODA)를 과감하게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이는 윤석열이 대통령 당선 초기부터 내세운 목표였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세계 10위 ODA(2022년 기준 16위) 공여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지원됐다. EDCF는 개발도상국에 저리로 장기간 자금을 빌려주는 원조 제도로, 대표적 ODA 정책이다. 이 차관으로 개발도상국은 항구, 다리, 도로, 댐, 병원 등 시설을 짓게 된다.
국가 간 격차 해소와 빈곤 문제 해결을 고려하면 취지는 좋은 제도다. 하지만 EDCF에는 큰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철저한 심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EDCF 운용위원회가 대외경제협력기금법 제7조를 바탕으로 지원 효율성이 있는지, 한국과의 경제 교류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지원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시기 EDCF 사업은 이런 심의 과정을 요식 절차로만 진행한 상태에서 불공정과 비리로 얼룩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캄보디아와 우크라이나 EDCF는 이권 청탁, 주가조작 등 논란이 커지고 있고 특정 기업 밀어주기와 평가 기준이 모호한 EDCF 협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이 캄보디아에 제공한 EDCF 차관은 최근 특검 수사로 불공정한 과정이 드러났다.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 수사에서 캄보디아 EDCF 사업이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로비로 인한 특혜성 지원이라는 혐의가 제기된 것이다.
통일교 고위 간부인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제20대 대선 직후인 2022년 3월22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소개로 당선자 신분인 윤석열을 만나 통일교가 메콩강 핵심 부지에 종교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공적원조를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윤 전 본부장이 2022년 7월 6천만원대 그라프사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2개 등을 김건희씨에게 전달했다는 게 특검의 설명이다. 이 청탁은 현실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캄보디아 EDCF 지원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약 9730억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30억달러(2022~2030년)로 증액했다.
캄보디아 EDCF 지원 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 밀어주기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석열 정부 때 EDCF 사업을 수주했거나 수주를 시도했던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희림)가 이 특혜 논란의 주인공이다. 희림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권 특혜설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김건희씨가 대표인 코바나컨텐츠의 전시회 후원 기업이었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때 설계·감리도 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캄보디아 사업 특혜 지원 사건에서도 희림이 등장한다. 윤 전 본부장이 통일교와 김건희씨를 연결한 것으로 알려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메시지에 “희림 대표도 같이 한번 뵙겠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희림의 누리집 등을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희림은 EDCF로 지원한 캄보디아 국립의과대학 부속병원 건립 사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다. 수출입은행 보고서상 참여 시점은 2021년이다.
희림은 윤석열 정부 들어 캄보디아뿐 아니라 다른 EDCF 사업에도 관여했다. 희림은 2023년 7월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잔지바르에 60㏊ 규모의 기업회의·관광·컨벤션·전시 단지를 조성하는 게 골자다. 그런데 희림이 탄자니아와 이 사업을 약속하고 2년이 지난 뒤 이 사업에 EDCF 지원이 논의된다. 수출입은행이 해당 사업에 EDCF 지원을 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2025년 7월31일 발주한 것이다.
EDCF 사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희림이 탄자니아 EDCF 사업 개발을 위해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이고, 탄자니아 정부가 희림이 작성한 마스터플랜을 근거로 수출입은행에 EDCF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며 “희림이 EDCF 컨설팅 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뿐만이 아니다. 희림은 이외에도 EDCF로 진행하는 여러 사업을 따낸다. 희림은 케냐 나이로비 지능형 교통망 구축 및 교차로 개선 사업(2022)과 우즈베키스탄 화학 연구개발(R&D) 센터 건립 사업(2022)에 컨설턴트 역할로 참여했고, 탄자니아 잔지바르 빙구니 병원 및 훈련센터 사업(2023), 모잠비크 베이라 및 펨바 국제공항 현대화 사업(2024) 등의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희림 쪽은 EDCF 특혜 의혹을 두고 “20년 전부터 국외 사업을 수주해왔다. 지난 정부에서 EDCF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탄자니아 사업도 지난 정부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희림 쪽은 통일교의 EDCF 청탁에 희림이 등장하는 것을 두고도 “통일교 관련 사업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아직 희림에 대한 계약 해지 사유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출입은행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중하게 살펴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시기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EDCF 지원 또한 주가조작 재료로 쓰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건희씨 주식 계좌 관리인이던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2023년 5월14일 해병대 예비역 단체대화방인 ‘멋쟁해병’에 “삼부 체크하고”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틀 뒤인 5월16일 윤석열 부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배우자와 만났다. 이때부터 삼부토건과 삼부토건 회장이 소유하던 기업 웰바이오텍 주가가 상승한다.
이어진 윤석열 정부의 EDCF 논의는 지속해서 주가 상승에 호재로 작용한다. 2023년 5월17일 추경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과 만나 EDCF 추가지원을 약속하는 방안에 가서명했다. 이후 5월22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삼부토건 인사와 함께 폴란드에 가서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했다. 윤석열 부부는 7월15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삼부토건과 웰바이오텍 주가는 2023년 5월부터 급등해 윤석열 부부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있던 7월까지 크게 올랐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2024년 4월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에 21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약정도 했다. 현재 환율로 2조9276억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이 차관 협정 직전인 4월9일 삼부토건은 우크라이나 건설사와 우크라이나 내 주택사업 협력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역시 발표 당일 주가가 17%가량 올랐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EDCF 사업 추진이 무리하다고 지적한다. 한 EDCF 전문가는 “사업이 진행되려면 일단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당시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도 한국 기업이 재건 사업에 대대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며 “그래서 업계에서 굉장히 무리한 사업이란 걸 알고 있었고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EDCF 사업 경험이 많은 한 사업가는 “윤석열 정부 들어 EDCF 집행 목표치가 감당하기 어렵게 높아졌다. 당장 사업 실행이 불가능한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이상했다”며 “EDCF 사업으로 ‘누군가 해먹겠구나’ 하는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2023년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력해 △키이우 교통 마스터플랜 △우만시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보리스필 공항 현대화 △부차시 하수처리시설 △카호우카 댐 재건 지원 △철도노선 고속화(키이우~폴란드 등) 사업을 집중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모두 사업 초기 단계이거나 진행되지 않았다. EDCF 지원 약속이 주가조작 재료로만 쓰였다는 의문을 더하는 대목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는 EDCF에서 한국 기업 간 경쟁입찰 지원이 가능한 국가”라며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종전이 되면 재건 시장이 바로 열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협정을 체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한겨레21의 질의에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의아한 EDCF 지원 협정은 또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5월16일 중남미의 인구 40만 소국 벨리즈에 EDCF 차관을 지원하기로 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적절한 지원이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벨리즈는 소국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교민도 20명 정도로 한국과 교류가 거의 없는 국가다.
수출입은행은 한국과의 경제 교류시 상호 보완적 효과가 큰 대상을 ‘중점지원국가’로, 이 밖의 국가를 ‘일반지원국가’로 정하는 등 EDCF 지원 우선순위를 등급별로 정해놓는다.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벨리즈는 ‘중점’ 또는 ‘일반’ 지원 대상 국가 등급 분류에도 없었다가 2023년 9월 ‘일반지원국가' 중에서도 4그룹에 포함됐다. 일반지원국가 4그룹은 앞선 등급 기준에서 가장 낮은 순위다. 한 EDCF 전문가는 “지원 대상국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오랜 심의를 거치는데, 이런 심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수출입은행이 2024년 4월 작성한 ‘최근 5년 EDCF 승인 사업' 문서를 보면, 벨리즈에는 97억원(700만달러)의 차관 지원이 승인된 상태다. 승인된 사업은 ‘벨리즈 연도별 보건시스템 효율성, 품질 및 접근성 개선 사업'이다. 2023년 9월 윤석열은 벨리즈 총리와 정상회담을 여는 등 그동안 한국과 교류가 많지 않던 벨리즈와 수차례 교류에 나서기도 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벨리즈와의 EDCF 차관 지원 협정에 대해 “벨리즈가 EDCF 지원 대상국 분류에 들어가게 된 것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사항이며, EDCF 차관 지원이 승인된 것도 기재부와 미주개발은행(IDB)이 협의한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는 한겨레21의 질의에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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