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권계층 학생폭력, 가정폭력 은폐에 불붙은 논란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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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0. 오전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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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시민들 ‘소도시 브라만’에 분노하다…경제 침체기에 새 계급투쟁 싹트나
중국 쓰촨성 장유시에서 학생 간 괴롭힘·폭력 사건을 은폐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다큐멘터리 ‘장유 사건’ 갈무리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수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거대한 시위가 발생했다. ‘국회의원과 ‘부패 엘리트’ 특권 혜택에 인도네시아에서 시위 발생’이라는 제목의 2025년 8월25일치 영국 가디언 보도를 보면,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국회의원으로 상징되는 사회 상류층의 ‘특권’에 분노했다. 인도네시아 국회의원들이 월 급여 외에 일반인 평균 임금보다 약 16배나 높은 주택수당을 매달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시민의 평균 월 급여는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채 안 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도네시아 경제 역시 경제 침체와 실업률 증가로 서민의 삶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받는 각종 천문학적인 특혜 소식은 수많은 인도네시아 시민을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게 했다. 상류층이 향유하는 각종 특권은 다 같이 먹고살 만하고 일자리도 풍부할 때는 큰 불만을 야기하지 않는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하지만 참을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올라갈 사다리나 동아줄이 사라진 사회에서 확인되는 상류층과 그들이 누리는 각종 특권은 인도네시아 시위 사태처럼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적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월급 16배 국회의원 수당? 중국 더 심해


인도네시아 시위 사태에 관한 보도를 보고 한 중국 친구는 이런 농담을 했다. “이 사람들이 중국 ‘소도시 브라만 계급’(县城婆罗门)이 누리는 특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소도시 브라만 계급’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소셜미디어 등에서 가장 많이 회자하는 인터넷 유행어 중 하나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계급에 해당하는 브라만 계급을 중국 내 중소도시에 사는 특권 계층에 빗댄 표현이다. 중국도 인도네시아처럼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해 경제 침체와 이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각종 특권을 독점한 상류층을 향한 불만과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와 대비되는 ‘현성’(县城. 우리나라 군청 소재지에 해당하는 중소도시)은 최근 들어 대도시 실업률이 증가하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예전에 이곳은 대도시 중심의 경제 발전과 그 빛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 침체기가 찾아오고 각종 사회 불평등이 심화하자 사람들이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중소도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소도시에도 그들이 기다리는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는 없었다. 그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도시 브라만 계급’이 온갖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자원을 독점하고 지역 내 특권층을 이루고 있었다.

2025년 8월4일, 쓰촨성 장유시에서는 최근 들어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장유시는 인구 약 80만 명의 현급 중소도시다. 이날 시위는 시청 앞에서 밤새도록 이어졌다. 자칫 대규모 시위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외신에도 크게 보도됐다. 급기야 중무장한 경찰과 인근 경찰력이 총 투입돼 ‘피 튀기는’ 진압을 한 끝에 겨우 진정됐다. 중국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언론을 통제했지만, 그날 시위와 진압 현장은 사람들이 찍은 스마트폰 영상으로 유튜브와 틱톡 등 국외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다.

13살 여학생, 4시간 집단 폭행


시위의 발단은 7월 말, 이 마을에 살던 13살 여중생이 같은 동네 또래 여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다. 피해 여학생은 세 가해 학생으로부터 약 4시간 동안 극심한 폭행을 당했다. 심지어 강제 탈의까지 당했다. 동영상을 찍고 유포한 당사자는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피해자를 향해 “예전에도 비슷한 일로 열 번도 넘게 경찰서를 들락거렸지만 20분도 안 돼 풀려났다”며 오히려 피해자를 겁박했다.

피해자 부모는 즉각 경찰서에 찾아가 가해자들을 처벌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들이 모두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열흘 정도의 구금형과 약 1천위안(약 20만원)의 벌금형 등 대체로 가벼운 처벌만 했다. 분노한 피해자 부모가 그 마을 치안 담당 최고책임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엄벌을 호소하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게다가 피해자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 분노했다. 최고 치안담당자의 고압적 태도도 문제였지만 이 사건이 대규모 소요 사태로까지 번진 큰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가해자들의 신상에 관한 온갖 소문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장기간 폭력과 괴롭힘을 행사했고 그 정도가 매우 잔인했음에도 거의 처벌받지 않은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이른바 ‘소도시 브라만 계급’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퍼졌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그렇게 경미한 처벌을 받을 수 없다고 사람들은 믿기 시작했다.

장유시 당국은 소문은 날조된 것으로, 가해자들의 부모는 실직자이거나 대부분 평범한 노동자라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피해자가 마을에서도 가장 약자에 속하는 가난한 장애인 가정의 자녀인 반면 가해자의 부모들은 ‘소도시 브라만 계급’이라는 소문으로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특권 계층에 대한 울분이 활화산이 폭발하듯 거리로 분출된 것이다.

사망진단서 조작하려면 인맥 필요


2025년 8월22일 허베이성 창저우시 멍춘회족자치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이었다. 가해자는 26살 남편 진하오였다. 그는 25살 아내 류밍야오를 둔기로 장시간 잔인하게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 폭행 현장에 시어머니도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류밍야오의 사망이 확인되자 곧바로 현장 증거를 인멸한 뒤 사고인 것처럼 꾸며 구급차를 부르고 주검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에서는 류밍야오의 사망원인을 ‘심근경색’이라 진단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하지만 류밍야오의 부모는 온몸에 멍이 들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심근경색이 원인이라는 사망진단서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부검을 요구했다. 부검 결과 뇌출혈, 척추 골절, 폐좌상, 비골 파열 등 둔기로 인한 중대한 외력이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른 사실이 확인됐다.

파장이 크게 일었다. 아내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끔찍한 가정폭력도 문제였지만 사람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가해자 남편과 그 일가족이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인맥과 자원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진하오와 류밍야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 같은 대학에 진학하며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이다. 사건 발생 뒤 인터넷에서는 진하오의 집안이 동네에서 유명한 ‘소도시 브라만 계급’이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큰 병원 원장 출신이고 아버지 역시 고위 공직자라는 것이다.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폭행 방조와 증거 인멸 혐의로 구속된 진하오의 어머니가 그 동네 병원 의사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류밍야오의 사망진단서를 심근경색으로 위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집안 배경과 인맥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추측했다. 사망 직후 그렇게 빨리 사건 현장을 처리하고 주검을 병원으로 옮겨 사망진단서까지 조작한 것은 병원, 검찰청 등과 인맥이 닿은 특권 계층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전문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중국의 불평등 관련 보도. 이코노미스트 누리집 갈무리


진하오는 2021년 결혼 직후부터 줄곧 가정폭력을 행사해왔다. 그의 가정폭력은 가족과 주변 지인들, 심지어 온 동네 주민 사이에서도 유명했지만 한 번도 신고되거나 처벌받은 적이 없었다. 중국은 2016년부터 ‘가정폭력방지법’을 제정해 시행했다. 이 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모든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포함하고 이에 해당하는 폭력을 발견하거나 목격한 사람들과 모든 기관은 강제로 신고할 의무가 있다.

진하오는 한 번도 신고를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사람들이 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아내를 자주 폭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 앞에서도 폭행을 일삼았지만 누구도 그를 제지하거나 류밍야오와 분리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소도시 브라만 계급’의 독생자녀로 성장하며 마을의 작은 폭군 노릇을 했던 진하오는 아내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뒤에도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옆에서 그의 어머니가 모든 ‘뒤처리’를 다 하며 범죄 현장과 증거들을 은폐했기 때문이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탄식했다. “이 사건은 아내를 폭행하고 문서를 조작하는 것이 범죄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중국식 ‘소도시 브라만 계급’의 비극이다. 그들은 법보다는 자신들이 장악한 소도시 내 사회·경제적 인맥과 특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중국 계급 적대감 고조”


“경제가 둔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많은 중국인은 이제 ‘사회 고화’(社会固化), 즉 사회 정체라는 말을 한다. 하층민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엘리트 계층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계급적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2024년 9월23일치 기사 내용 일부다. 이 기사 제목은 ‘중국에서 새로운 계급투쟁이 싹트고 있다’(A new class struggle is brewing in China)였다.

기사는 중국 사회가 과거와 달리 정치적 이념으로 갈등하기보다는 갈수록 양극화되는 경제 불평등과 특권 계층이 장악한 온갖 혜택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용불안 심화, 청년 실업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불만은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단골 주제가 되고 있다. 1985년 이후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의 경험처럼 중국도 장기 경제 침체기로 빠질 우려가 커지면서 공정과 특권, 불평등 등을 둘러싼 각종 논쟁과 불만이 폭발적으로 터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장유시 사건처럼 대규모 소요 사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계급투쟁의 싹’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이제 소도시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브라만 계급’을 향한 중국인들의 ‘새로운 계급투쟁’이 인도네시아에서처럼 잠재적인 정치적 위협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2025년 8월30일, 중국 충칭시 충칭대학 캠퍼스 건물 벽면에 거대한 레이저빔 문구가 등장했다. ‘붉은 파시즘을 타도하자, 공산당 폭정을 전복하라.’ 경찰의 유혈진압은 불가능했고 레이저빔이 쏘아 올린 글자는 약 50분간 밤하늘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고 한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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