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는 사람 없었는데, 달릴 생각을 못했어

한겨레21 기자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여자축구 희망 찾기]엄마·이모가 뛰어야 소녀들도 상상하는 운동장… ‘반반FC’가 만들어간 ‘이기나 지나 즐거운’ 축구리그
2024년 10월12일 ‘우리동네축구리그’가 열렸다. 반반 FC와 무지개FC, 달풀과 홍동초 축구부 소년들까지 총 네 팀이 홍동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해가 질 때까지 축구를 했다. 노해원 제공


긴 겨울을 지나 아이들은 개학하고 푹신해진 흙 위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2025년 봄날이었다. 집 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전국 유일의 면 단위 여자축구팀이라 불리는 ‘반반 에프시(FC)’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반반FC는 2021년 여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서 시작된 여자축구팀이다. 2025년으로 4년차가 됐지만 여전히 11명의 인원을 채우지 못해 정식 축구 시합에는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주 같은 자리에서 함께 달리고 소리 치며 동네 사람들의 구경과 응원을 꾸준히 받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겨우내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뛰어다니던 축구팀에 온 가족이 다 모이자 몇 주째 20명 남짓한 사람이 나왔다. 그야말로 축구 성수기였다. 나 역시 긴 겨울방학에 치여 한동안 축구를 하지 못하다 봄의 기운에 다시 홀리듯 운동장에 나갔다. 운동장 어귀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우리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마침 2025년 중학생이 된 큰아이 생각도 나고, 반반FC의 인간 전단 구실을 하는 사람으로서 습관처럼 (영입을 위해) 그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엔 뒷걸음하더니 곧 거침없이 슈팅


“친구들 여기 홍동중 다녀요? 몇 학년이에요?”

4명의 여학생 무리는 모두 중학교 3학년 또래 친구라 했다. 최근 학교 수업으로 축구를 배우며 재미를 붙여서 구경 오게 됐다고 했다.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잘 왔다고, 그럼 당장 오늘부터 같이 뛰겠느냐고 한발 더 다가갔다. 친구들은 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부담스러웠는지 약간의 뒷걸음질과 함께 오늘은 구경만 하고 다음에 오겠다고 했다. 도망갈 것만 같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들이댔나 싶어 조금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이왕이면 그 소녀들이 다음 훈련에 꼭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다음 훈련을 기다렸다.

걱정이 무색하게 소녀들은 바로 다음 훈련부터 운동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수줍은 겉모습과 달리 그들의 슈팅과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공을 차고 받는 간단한 행위에도 수십 가지를 생각하는 나에 견줘(인사이드로 찰까, 아웃사이드로 찰까, 오픈보디를 하려면 몸을 열어야 해, 이동 컨트롤을 해야 하니까 공을 살짝 밀어서…) 소녀들은 일단 냅다 차고 보는 에너지가 대단했다. 그런데도 공은 나보다 힘 있고 정확하게 나아갔다. 함께 뛰던 반반FC 팀원 조조가 내 옆에 슬그머니 와서 말했다. “역시 젊음은 달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소녀들이 있는 곳을 보고 함께 외쳤다. “어릴 때 축구를 하는 너희, 너무 부럽다!”

나를 포함한 반반FC 팀원들은 축구하는 소녀들을 보면 기특하면서도 매우 부러운 마음이 든다. 뒤늦게 축구를 시작해 늘지 않는 실력, 혹은 너무 느리게 느는 실력을 한탄하며 진작에 운동장에 나서지 못했던 지난날의 자신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중학교 친구들이 합류하기 전부터 우리의 부러움을 산 친구들이 또 있다. 그들은 바로 반반FC의 숙명의 라이벌 ‘달풀’의 소녀들이다. 달풀은 ‘달려라 풀무’의 줄임말로 마을에 있는 대안학교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 여자축구팀이다.

 

서로의 마음에 불씨 일으킨 ‘달려라 풀무’와의 대결


이 팀의 역사는 반반FC에서 시작됐다. 우리 팀이 어느 정도 기본기 훈련에서 벗어나 팀훈련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언제나 매치에 목말라 있었고, 특히 우리와 같은 체격, 비슷한 조건의 여자축구팀과 맞붙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매번 붙을 팀이 없어 족구팀 아저씨들이나 초등학교 축구부 남자아이들과 경기하며 여러 차례 굴욕을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님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느 날 마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섭외했다. 그 친구들은 우리처럼 훈련받지도 않았고 팀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었다. 유니폼은 물론 축구화를 신은 친구도 없었다. 그저 주말에 학교에 남은 학생 중 시간이 되는 친구들이 온 듯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결은 몹시 치열했다. 반반FC는 그날도 지고 말았지만 서로의 마음에 커다란 불씨를 일으킨 것은 확실했다.

달풀이 결성된 것은 그 경기를 치르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팀 결성 이후 유니폼과 축구화를 구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담당 선생님을 섭외하여 나름의 훈련 과정을 거치기까지 했다. 자신들의 시그니처 응원도 만들었다. 이후 우리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숙명의 라이벌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3승 3패의 대등한 전적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의 친구에게 뜬금없는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기…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당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당신의 책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보기에 이 어린이 친구는 ‘작가’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당신’이라는 단어를 썼고, 매일 보던 아줌마가 책(2024년 6월 흐름출판에서 펴낸 ‘시골, 여자, 축구’)이란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해서 평소 쓰지 않는 표현을 한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어딘지 번역기를 돌려놓은 것 같은 말투의 이 어린이가 귀엽기도 하고, 아직도 어딘가에서 내 책이 읽히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무엇보다 그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소녀라는 것이 기뻤다. 드디어 반반FC의 영향력이 고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이제는 초등학교까지 도달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갑자기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한 지역에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몹시 경이롭고 흥미로운 일이고 축구인 입장에서는 유소년 시절부터 그들의 가능성을 지켜볼 좋은 기회다. 나는 내 책을 읽고 있다는 4학년 친구가 책을 덮은 뒤 운동장으로 힘껏 뛰어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날부터 학교에서 뛰어다니는 소녀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저 정도 스피드면 윙포워드를 뛰는 것이 좋겠어.’ ‘저런 단단한 골격이면 수비수를 하기 좋을 것 같은데.’ ‘저 에너지! 저 친구는 주장감이야.’ 언젠가 저 아이들이 우리 팀의 일원이 되거나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우리의 상대가 돼줄 날을 기대하면서.



‘그 책’ 읽는 소녀들에게 결코 멋없지 않을 것


반반FC는 한동안 마을의 유일한 여자축구팀이기도 했고, 이래저래 (책도 나오고, 대회도 만들고) 요란하게 지내는 편이어서 구경꾼(이자 응원단)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본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리는 항상 졌다. 숙련된 남성들과 경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들과 한 경기에서도 대부분 졌다. 반반FC에서의 축구 생활을 쓴 ‘시골, 여자, 축구’에도 온통 지는 얘기만 있어서 한번은 어떤 독자님이 “그래도 이겼던 적이 있죠?”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경기를 열심히 뛴 사람으로서 그것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팀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가끔 걱정됐다. 이렇게 지는 모습만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앞으로 우리 팀의 주요 선수층을 이뤄줄지도 모르는 소녀들에게 우리가 너무 멋없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런데 요즘 꾸준히 우리 팀에 관심을 가져주는 소녀들의 등장을 보며 이기고 지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축구인이 되고나서 운동장에 발도 들이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운동장을 누리지 못한 그 시절이 너무 아쉬웠다. 생각해보면 누구도 내가 여자라서 운동장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었는데 왜 나는 직접 달려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책하거나 지나온 시절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문득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시절 운동장에 나와 있는 여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한번 해봤다. 그때 만약 우리 엄마가, 옆집 이모가, 친구 엄마가 지금의 반반FC 팀원들처럼 운동장을 누비고 있었더라면. 내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더라면. 그러면 나도 한번쯤 지금 우리와 함께 달리는 중학교 친구들처럼 주변을 서성이다가 운동장으로 달려들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달풀처럼 그들과 붙기 위해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멋있게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소녀들 주변에서 꾸준히 뛰는 엄마, 옆집 이모, 혹은 친구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반FC는 팀이 창단된 이래 인원이 적든 많든 꾸준히 운동해왔다.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동네 사람들과 축구를 하고 매주 일요일이면 마을 학교 운동장들을 순회하며 훈련했다. 아이들은 그런 우리를 우연히 구경하거나 일부러 구경하다가 같이 뛰곤 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 마을에서 축구를 하는 소녀들과, 축구를 하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의 차이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얼마 전 입추가 지나면서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은 봄 다음으로 찾아오는 두 번째 축구 성수기다. 나도 더위를 피해 집에만 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슬슬 운동장에 나갈 준비를 한다.

2024년 이맘때쯤 반반FC는 ‘우리 동네 축구리그’라는 행사를 열었다. ‘시골, 여자, 축구’를 보고 우리에게 매치 신청을 한 경기도 양평의 무지개FC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멀리서 원정까지 와주는 그들과 신나게 뛰어놀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마을에서 맞붙었던 팀들을 초대했다. 그렇게 반반FC와 무지개FC, 달풀과 홍동초 축구부 소년들까지 총 네 팀이 홍동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해가 질 때까지 축구를 했다. 그때도 우리는 대부분 졌지만 그래도 마을에서 축구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축구 대잔치를 열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마을에서 반반FC와 함께 성장해온 팀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맨날 져도 뛸 수 있다면, 아이들이 볼 수 있다면


언젠가 ‘홍동 여자축구 리그’를 개최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지금 함께 뛰고 있는 중학교 친구들, 꾸준히 팀으로 성장하고 있는 달풀, 내 책을 읽은 어린이와 잠재력을 가득 안고 있는 마을의 소녀들이 한데 모여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날을 상상한다. 언젠가 맞이할 그날을 위해 우리는 언제든 만만히 붙어줄 수 있는 상대가 돼줄 것이다. 자주 지고(맨날 지고),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우리 모습을 마을에서 자라나는 소녀들이 오래오래 목격해주면 좋겠다.

 

노해원 ‘시골, 여자, 축구’ 저자·반반FC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