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지만 서로를 믿어”… 공 차는 여자들의 땀과 우정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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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축구 희망 찾기][우리 클럽을 소개합니다] 수어로 전술회의, 눈맞춤으로 팀워크 만드는 ‘데프스피릿FC’
데프스피릿FC 선수들이 2025년 5월29일 서울 강남구 중앙대학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풋살장에서 친선경기를 뛰고 있다. 데프스피릿FC 제공


2024년 8월, 농인 여성들이 직접 만든 풋살팀 데프스피릿FC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25년 창단 1주년을 맞은 이 팀은 8월15일 기념 엠티(MT)를 열며 짧지만 굵은 발자취를 돌아봤습니다. 듣지 못해도 목소리 대신 수어와 눈맞춤 그리고 호흡으로 연결되는 팀, 그것이 바로 데프스피릿FC입니다.

팀 이름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긍정과 열정으로 맞서며 ‘가장 나답게’ 그라운드를 즐기는 농인 여성 풋살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농인 여성들이 중심이 된 풋살팀은 국내에서도 드문 사례입니다. 창단 배경에는 ‘스포츠 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농인 여성들의 자리를 우리가 만들자’는 자발적인 의지가 있었습니다.

 

들을 수 없지만 빠른 몸짓으로 신호 교환


데프스피릿FC 선수들은 모두 농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학생, 직장인, 주부까지 저마다 다른 일상을 살면서도 경기장에서는 모두가 한 팀이 됩니다. 빠른 발로 수비를 책임지는 이도 있고, 날카로운 슛으로 경기를 바꾸는 이도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웃음으로 분위기를 살려내는 에너자이저가 있습니다. 서로의 개성과 에너지가 모여 데프스피릿FC만의 색깔을 만듭니다.

우리 팀의 끈끈한 팀워크는 훈련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전술 회의는 수어로 진행되며, 경기장 안에서는 눈빛과 손짓이 곧 지휘 신호가 됩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누구보다 집중력 있게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고, 빠른 몸짓으로 신호를 교환합니다. ‘서로를 믿는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원칙이 경기력의 밑바탕이 됩니다.

데프스피릿FC 선수들이 2025년 8월15일 경기 용인시의 한 숙소에 모여 창단 1주년을 기념하는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데프스피릿FC 제공


창단 당시 6명의 선수로 시작한 팀은 현재 2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21명의 농인 멤버와 함께 여성 수어 통역사도 같이 뛰며 점점 더 많은 농인 여성이 이 무대에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선수 증가는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닙니다. 농인 여성에게도 스포츠가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창단 1주년 MT는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낮에는 그동안 팀을 운영하면서 멤버와 임원들 사이에 궁금했던 점이나 각자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저녁에는 함께 음식을 나누며 지난 1년을 돌아봤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운동뿐 아니라 일상과 고민을 나누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단순한 팀이 아니라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되어주고 있다”는 공감대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데프스피릿FC가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한 승리가 아닙니다. “농인 여성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가능성을 더 크게 드러내는 것, 그리고 장애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스포츠를 즐기는 것.”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지향점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언젠가 농인 여성 유소년 선수를 발굴하고 데플림픽(농아인올림픽)에서 풋살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를 꿈꿉니다.

데프스피릿FC 선수들이 2025년 5월29일 서울 강남구 중앙대학교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풋살장에서 친선경기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데프스피릿FC 제공


우리 목표는 경기 승리가 아니기에


지금 데프스피릿FC는 2025년 9월6일 대전 바우풋살클럽에서 열리는 제1회 농여성 풋살 연합 친선경기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농인 여성 풋살팀으로서 맞이하는 첫 연합 무대입니다. 그라운드 위에서 수어와 눈맞춤, 그리고 호흡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가 벌써 기대됩니다.

 

호예원 데프스피릿FC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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