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17일 2024/2025 솜포 위리그(WE리그) 시즌 마지막 경기.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이하 니가타팀)와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이하 히로시마팀)의 맞대결. 1 대 2로 니가타팀이 지고 있었다. 추가시간 1분에 니가타팀 수비수 요코야마 에마가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왼발로 살짝 공을 밀어 골문을 흔들었다. 동점골에 환호도 잠시, 2분 뒤 히로시마팀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히로시마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페널티킥은, 니가타팀의 ‘든든한 골키퍼’ 히라오 치카의 두 손에 막혔다. 곧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2 대 2 무승부였지만 경기는 마치 니가타팀이 이긴 것처럼 끝났다.
전후반 94분간의 치열한 경기를 끝낸 니가타팀 선수들은 피치(경기장)에서의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경기장 출구 쪽에 서서 팬들을 기다렸다. 경기장을 찾아준 관중에게 ‘찾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인사하는 ‘배웅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서다. 선수와 팬 모두가 좋아하는 행사다. 2025년 8월7일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한겨레21 취재진과 만난 가와스미 나오미 선수는 “홈경기가 끝나고 팬들이 경기장에서 나갈 때 기다리고 있다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서로 눈을 맞추는 그 순간이 참 좋다”고 말했다. 히라오 치카의 팬 구미코(41)도 열심히 뛴 선수들과 경기장의 흥분을 공유하고 마무리 짓는 이벤트라 꼭 참여한다고 했다. 5월17일 경기에서도 히라오 치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페널티킥 막아낸 것 축하해요.”
이날 니가타 홈구장에는 관중 2753명이 찾아왔다. 시즌 평균 관중 1524명을 1천 명 넘게 웃도는 수치였다. 가와스미 나오미 선수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오늘은 조금 평소보다 많네’라고 경기 중에 느꼈는데, 방문객 수가 발표됐을 때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셨다니!’ 굉장히 기뻤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축구계는 WE리그 사무국, 개별 클럽 프런트는 물론이고 코칭진과 선수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관중과 스폰서에 목말라한다. 2024/2025 시즌 WE리그 전체 평균 관중 수는 2138명이다. 일본 남자 프로축구 1부리그인 제이1(J1)리그 평균 관중 2만355명(2024년, J리그 통계 사이트)의 10% 수준이다. 지난 시즌 J리그 최다 관중 입장은 FC도쿄와 알비렉스 니가타의 경기로 5만7785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2부리그인 J2리그 평균 관중도 8490명이다. 오가와 다카시 니가타팀 강화부장은 “뿌리가 같은 알비렉스 니가타팀 경기에 5만 명이 넘게 찾아오는데,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WE리그 소속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에는 5천 명도 오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구단 구성원 모두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 여자축구팀은 관중 확보를 위해 안 하는 것 없이 다 한다.
가장 ‘흔한’ 노력은 팬이 선수와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이다. 니가타팀은 2024/2025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일주일 뒤인 2025년 5월24일, 정규시즌 내내 치열하게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2024/2025 서포터스 추수감사절’을 열었다. ‘서포터스 추수감사절’의 메인이벤트는 선수와의 대결이었다. 선수들과 낚시 대결, 링던지기 대결, 공차기 대결, 사격 대결, 리프팅 대결을 하거나 선수가 참여해 서포터스 팬의 얼굴을 그려주는 ‘닮은꼴 그려드립니다’ 코너도 있었다. 이날 이벤트에 참여한 중학생 히카리(13)는 “선수들이 직접 내 얼굴을 그려줘서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니가타팀의 공격형 미드필더 다키카와 유메 선수도 “감사절 이벤트에서 팬들 얼굴을 직접 그려줬는데, 처음 해본 일이어서 즐겁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훈련 일정을 공개하고 훈련 뒤 팬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일상적인 행사다. 한겨레21이 히로시마팀을 취재하러 간 2025년 8월6일 오전 9시에는 마침 히로시마팀의 ‘공개 훈련’ 일정이 있었다. 훈련 시작 40분 전인 아침 8시20분부터 팬들이 나와 있었다. 마케팅 회사에 다닌다는 와타나베 게이타(31)는 이날 하루 휴가를 쓰고 훈련 모습을 보러 왔다. 와타나베는 “시합에서의 모습만으로는 선수들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연습을 자주 보러 온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축구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은 매우 높다. 히로시마팀을 예로 들면, 모든 훈련과 경기 일정, 훈련 장소를 누리집에 게시한다. 훈련 공개 여부와 팬서비스 유무는 물론, 선수들의 생일도 써둔다. 이런 일정을 보고 팬들은 쉽게 선수를 만난다.
공개 훈련이 있는 이날, 훈련이 끝나기 20분 전인 오전 10시40분 히로시마 구단 직원이 경기장 한쪽에 러버콘(안전고깔)과 흰색 줄을 설치했다. 11시 훈련이 끝나자 팬들이 하나둘 관람석에서 내려와 경기장 구석 흰색 줄 앞으로 모여들었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팬들 쪽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더러는 사인도 했다. 선수들은 지역 기자와 인터뷰하거나, 자유롭게 개인훈련을 하다가 또 팬과 이야기를 나누며 1시간 정도 팬들 가까이 머물렀다. 와타나베는 “팬과 선수 간 거리가 가까운 것이 여자축구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서포터스인 ‘팬’뿐만 아니라 팬층을 확장하기 위한 지역 활동도 많다. 2025년 8월7일 오후 2시, 가미오노베 메구미 니가타팀 선수가 우오로쿠 슈퍼마켓 신도사점에서 WE리그 클럽 경기를 알리는 전단을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우오로쿠 슈퍼마켓은 니가타팀의 ‘유니폼 스폰서’다. 니가타팀은 금액에 따라 스폰서 등급을 구분하는데 유니폼 스폰서는 가장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메인 스폰서에 해당한다.
‘전단을 배포’하는 가미오노베 메구미는 일본 여자축구와 니가타팀의 상징적 선수다. 2011년 일본이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와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서 준우승할 때 주전 멤버로 2009~2016년 7년간 일본 국가대표 ‘나데시코 재팬’으로 뛰었다. 게다가 선수 생활을 시작한 2006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니가타팀에서만 뛰어온 ‘원클럽맨’이다. 일본 여자축구가 프로리그로 전환되기 전인 나데시코 리그 시절 베스트일레븐에 다섯 차례나 뽑혔다.
이날 가미오노베 메구미를 비롯한 니가타팀 선수 15명은 오전 9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오전 훈련을 마치고 우오로쿠 슈퍼마켓 네 지점에서 서너 명씩 짝지어 ‘관중 확보’를 위한 전단 배포에 주력했다. 선수들이 경기 일정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자 쇼핑카트에 바구니를 담아 슈퍼마켓에 들어가면서 “오~ 알비렉스” 하고 반가워하는 손님도 있었고, 장을 보고 나가면서 “여자축구팀이 있었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손님도 있었다. 가미오노베 메구미 선수는 전단을 배포하기 전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전단 배포를 여러 장소에서 자주 하는데 아직도 우리가 축구를 한다는 걸 모르는 지역 분이 많아서 나도 놀란다”며 “잘 모르는 분들에겐 니가타 지역에 여자축구팀이 있음을 알리고, 또 몇 번이고 와주는 소중한 팬들에게 이렇게 만나서 감사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WE리그에서 평균 관중 수가 5482명으로 1위인 히로시마팀도 선수들이 직접 거리로 나가 경기를 홍보하거나, 팬들을 경기장으로 초청해 함께 운동하는 행사 등을 정기적으로 연다. 최근에는 선수가 직접 히로시마팀 유니폼 가게에서 일일 점원으로 일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와타나베는 “행사 등을 통해 선수들을 직접 만나면서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평균 관중 5천 명 시대’. 2021년 9월 WE리그 개막을 앞두고 당시 초대 이사장인 오카지마 기쿠코는 이렇게 공언하고 다녔다. 정작 그 흥행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비판과 냉소도 꽤 받았다. 실제 WE리그 개막 직후인 2021/2022 시즌 평균 관중은 1560명이었다. 더 심각한 점은, 다음 시즌에 1326명으로 더 꺾였다는 것이다. 오가와 다케시 니가타팀 강화부장은 “WE리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며 “니가타팀이 한국 언론 취재에 응한 것도 WE리그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보자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WE리그 사무국은 2025년 4~5월 미국 ‘내셔널 위민스 사커 리그’(NWSL)를 직접 방문하고 잉글랜드와 스페인, 독일까지 4개국 자료를 조사해 세계 여자축구의 성장 전략을 파악하고, 일본 여자축구의 성장 및 흥행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WE리그 보고서에서, 2019년 유럽축구연맹이 처음으로 수립한 여자축구 성장 전략에 따르면 2030년 여자축구 시장 규모는 2021년의 6배인 6억8600만유로(약 1120억엔)에 이른다. WE리그 비상근 이사이기도 한 야마모토 히데아키 니가타팀 사장은 “2024년 새로 선임된 노노무라 요시카즈 이사장은 일본 프로축구리그 이사장이면서 일본축구협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일본 여자축구를 살릴 능력도 있고, 열정도 있다”며 “‘유럽은 성장하는데 일본은 왜 못하는가’에 대해 지금 WE리그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화’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흥행 부진’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일본 여자축구계는 그러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한국 여자축구계와 다르다. 그리고 그 고민의 길에 모든 개별 팀이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한다는 점도 다르다.
2025년 8월17일 니가타현 ‘덴카 빅 스완 스타디움’에서 열린 니가타팀과 미쓰비시중공업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레이디스의 경기는 0 대 5로 니가타팀이 크게 패했다. 니가타팀의 팬 구미코는 “대패배의 날에도 어김없이 배웅 하이파이브는 있었다”고 말했다. 구미코는 침울해하는 선수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짧은 응원을 건넸다. “다음에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