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했지만 한국은 못 한 것

류석우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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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축구 희망 찾기]일본 여축 현장 리포트 ② 프로리그 입성한 일본 여자축구 클럽 선수 “더 나은 플레이 꿈 꿀 수 있었다” … “재정자립도 더 높여야 완전한 프로로 갈 수 있어”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시노노이 도후쿠지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9번 카와스미 나오미 선수가 공을 트래핑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여자축구로는 밥벌이가 어렵다’ ‘여자팀 단독 경영은 힘들다’ ‘인력도 자금도 경험도 없는데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변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남자팀에서 법인을 독립해 나간 직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그런 걱정과 우려는 더 커졌습니다.”

2025년 4월30일 일본 여자축구 최상위 프로리그인 위리그(WE리그)에 속해 있는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사장 야마모토 히데아키가 말했다. 이날은 니가타팀이 새 유니폼 스폰서로 ‘주에쓰 운수’와 계약했다고 발표하는 날이었다. 야마모토 사장은 “주에쓰 운수의 기업 브랜드 슬로건 ‘불가능을 해결하자’가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의 도전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며 구단이 독립의 첫걸음을 내딛던 6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2019년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남자축구 위기를 ‘여자축구 없애’ 모면?


야마모토 사장의 시작은 알비렉스 니가타 남자축구팀이었다. 2004년 팀이 일본 남자 프로축구 2부 리그인 제이2(J2)에서 1부 리그인 제이1(J1)로 승격하면서 홍보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구단 프런트의 홍보·영업 총괄로 영입됐다. 알비렉스 니가타 구단은 남자축구팀을 중심으로 운영했지만, 2002년 창단한 여자축구팀인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와 유스팀 등도 운영하고 있었다.

2018년 알비렉스 니가타 남자축구팀에 위기가 왔다. 성적 부진으로 J1리그에서 J2리그로 강등됐다. 대안을 모색하던 구단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구단의 사람과 재정, 물품 등 모든 지원 역량을 남자축구팀에 올인해 다시 J1리그로 복귀하도록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여성을 삭제하는 사회적 관행이 축구팀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당시 아디다스에서 유니폼을 지원받고 있었는데 연습 유니폼마저 여자팀에는 안 준다는 거예요.”

2025년 8월7일 오전 이날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팀 오전 훈련이 이뤄진 니가타현스포츠공원 경기장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야마모토 사장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는 듯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여자축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당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에서 뛰고 있던 뛰어난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국가대표 이효경 선수도 당시 우리 팀에 있었고, 당시 일본 국가대표로 지금 영국 에버턴FC에서 뛰고 있는 팀의 뛰어난 수비수 기타가와 히카루도 우리 팀에서 뛰고 있었어요.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다 뺏기면 2002년부터 니가타 여자축구팀이 어렵게 쌓아올린 역사도 다 무너지는 거죠.”

당시 야마모토 홍보·영업 총괄은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도 남자팀 못지않게 지역에서 축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팀이다’ ‘그동안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를 응원한 수많은 팬도 실망해서 떠날 것이다’ ‘팀 전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일이다’라고 역설했다. 구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마모토는 독립을 결심했다. 그동안 맺어온 여러 스폰서 기업과 관계를 이어나간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2019년 1월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구단이 독립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2년 뛴 선수도 생계 압박에 그만둬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가 독립 법인을 꾸린 시기와 일본이 프로리그를 도입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던 시기는 겹친다. 일본은 2011년 월드컵 우승을 했지만 이후 국제무대 성적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여자축구를 다시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했다. 선수 기량 상승, 자본 유입, 관중 확보 등을 동시에 일굴 방법으로 ‘여자축구 프로화’를 떠올렸다. 당시 일본 여자축구는 ‘기술 축구’ ‘전략 축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세계에 ‘여자축구 명가’로서 위상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정작 일본 최상위 리그이자 준프로리그이던 나데시코 리그를 뛰는 선수들의 실상은 녹록지 않았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의 열렬한 서포터스 900명 중 한 명인 안나(22)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12년간 축구를 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축구부 혼성팀에서, 중학교 때부터는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유스팀에서 뛰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19년 안나는 축구를 관뒀다. “제가 축구할 때 나데시코 리그의 상황은 너무 열악했어요. 축구만 할 수 있도록 ‘프로 계약’을 하는 선수는 당시 한 팀에 한 명 있으면 많은 거였어요. 모두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축구 연습을 하고, 주말에 경기를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낮에는 수업을 듣고, 화·수·금·토·일요일 오후에는 축구를 하고, 월·목·토·일요일에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어요. 이 생활을 고등학교 졸업한 뒤에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결국 저는 축구선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시노노이 도후쿠지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의 9번 카와스미 나오미 선수가 머리로 공을 경합하고 있다.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2020년 6월 일본 WE리그는 선수들의 이런 ‘열악한’ 상황이 절실한 토대가 되어 출범했다. 프로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연봉 수준과 훈련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그와 소속 구단들이 자체 운영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선수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하는 스폰서 확보도 절실하다.

WE리그는 이런 재정적 자립 요건을 갖춘 구단들로 리그 소속팀을 구성하기 위해 △가입비 2억엔 및 연간 회비 2억엔 납부 △연고지에 5천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경기장 확보(조명, 탁아소 1곳 이상 등 각종 시설 규정 충족 필수) △프로 계약 선수 15명 이상 확보(A계약 선수(연봉 4600만원 이상, 상한 없음) 5명 이상, B·C계약 선수(연봉 2700만원 이상) 10명 이상) △U18, U15, U12 유스팀 소유 등을 리그 가입 조건으로 두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여성 임파워먼트’(Women Empowerment)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WE리그’라는 이름에 걸맞게 △클럽 운영 법인 내 임직원 50% 이상 여성으로 구성할 것 △의사결정 권한자 가운데 1명 이상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할 것이라는 조항도 법인 운용 조건으로 정했다. 여성이 여자축구단 운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프로 계약 후 더 나은 플레이 꿈꿔”


니가타시에서 도로상 거리로 865.2㎞ 떨어진 곳에 있는 히로시마에는 WE리그 출범과 함께 창단을 준비한 뒤 2021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설립된 여자축구 프로팀이 있다. 팀 이름은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다. 애초 히로시마를 연고지로 하는 J1 남자축구팀 ‘산프레체 히로시마’는 별도의 여자축구팀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WE리그에 참여할 의사도 없었다.

하지만 지역의 나데시코 2부리그에 소속된 여자축구팀이 재정 위기로 존속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2021년 센다 신고 산프레체 히로시마 구단 대표이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산프레체가 손을 들지 않으면 일본 여자축구 리그에 히로시마라는 이름이 사라진다는 말에 선수도, 감독도, 스태프도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여자팀을 창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더 많은 여성이 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프로팀 무대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WE리그의 ‘희망’이 새로운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여자축구 프로팀 창설로 이어진 것이다.

WE리그로 바뀐 뒤 선수들은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2020년 AC 나가노 파르세이루 레이디스에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로 이적한 팀의 ‘골게터’ 다키카와 유메는 8월7일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다키카와는 나가노에 있을 때는 나가노현 은행 총무부에서 일했고, 니가타로 이적해서도 2021년에야 프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 전에는 니가타 시청 스포츠추진과에서 체육관 대여·관리 등의 일을 했다. 다키카와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 계약을 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관중들이 돈을 써서 시합을 보러 오기 때문에 더 나은 플레이로 돌려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졌어요. 이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밤에 연습하니 어떻게 몸을 관리해도 사실 힘들고 지쳐 축구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연습한 만큼 그에 비례해서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뻐요.”

다키카와는 여자축구 리그가 프로리그로 전환된 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2023/2024 시즌에는 21경기에 출전해 5골을 기록했고, 2025년 5월 끝난 2024/2025 시즌에는 22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8골을 넣었다. “제 개인 통산 최고기록이에요. 올 시즌(2025/2026)에는 지난 시즌보다 2골 이상 더 넣어서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고 싶어요.” 그의 말 속에서 자신감이 빛났다.

 

30%는 여전히 아마추어로 일·운동 병행


WE리그는 2020년 6월 출범했지만, 아직 온전한 프로라고 볼 수는 없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는 이번 시즌에 계약한 선수 25명 가운데 18명만 프로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 7명 가운데 3명은 대학생이고, 4명은 일을 병행하는 아마추어 계약을 맺었다.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 역시 모든 선수를 프로로 계약하지는 않는다.

북한 U-17 대표팀을 거친 재일교포 이성화(26)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 구단과 2024년 초 아마추어 계약을 하고 입단했다. 이성화는 애초 에스엠지(SMG) 요코하마에서 프로 계약을 할 참이었다. SMG 요코하마는 일본의 실업리그인 나데시코 1부리그에 속해 있다. 그러나 대학교 졸업을 앞둔 4학년 때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2년 동안 축구를 쉬어야 했다. 부상에서 회복했을 때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추어 계약을 했기 때문에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의 메인 스폰서 기업 중 하나인 에디온(일본의 가전 판매점) 계산대에서 점원으로 채용돼 매일 오전 2시간 축구선수로 운동하고, 오후 1시30분 매장으로 출근해 저녁 7시30분까지 점원으로 일했다. 아마추어 계약을 한 선수들의 일자리는 구단이 스폰서 기업이나 지역 행정기관에 의뢰해 구해준다.

프로 계약을 한 선수들은 오전 팀훈련을 마친 뒤 오후에 웨이트 등 개인훈련을 하지만, 이성화처럼 아마추어 계약을 한 선수들은 오전 훈련을 마친 뒤 곧바로 웨이트를 하고 출근하거나 퇴근 이후 저녁에 개인훈련을 해야 했다. 일본 여자축구 프로리그인 WE리그는 출범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이렇듯 ‘완전한 프로’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2025년 8월9일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시노노이 도후쿠지 나가노 U 스타디움에서 만난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야마모토 히데야키 대표. 나가노(일본)=이종근 선임기자


구단은 그 이유로 부족한 리그 수익을 꼽는다. 모든 선수를 프로로 계약하기에는 재정이 불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하시카와 가즈아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 감독은 “모든 선수를 프로선수로 계약하려면 리그 수익이 지금의 10배는 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시카와 감독은 2년 전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 전까지는 쭉 국가대표 유스팀 감독에 이어 일본축구협회에서 코치를 하다가 J2리그에서 지도자로 생활했다. 하시카와 감독은 “J1리그는 매출이 아닌 수익이 5억~10억엔 수준이고, J3리그도 수익이 1억엔은 된다. WE리그는 수익이 3천만~5천만엔 수준인데, 이 수익으로 모든 선수를 프로화하기는 어렵다”며 “평균 관중이 3천 명은 돼야 ‘모든 선수의 프로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는 2300만엔 자본금을 바탕으로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뒤 꾸준히 매출을 신장해왔다. 2022/2023 시즌 구단 매출은 3억1300엔이었지만, 2023/2024 시즌 3억6200엔, 2024/2025 시즌 3억9200엔으로 꾸준히 늘었다. 매출 비중은 스폰서 수입이 2억5천엔 정도로 전체 매출의 63% 정도를 차지한다. 그 외 굿즈 판매가 9%, 관중 입장료 수입 5% 정도다. 야마모토 사장은 “관중 수를 늘려 스폰서 수익과 입장료 수익, 기타 수익을 3:3:3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운영 예산이 연간 4억엔인데, 이 가운데 50%는 선수 연봉 및 복지 등 선수를 위해 쓰려고 하기 때문에 관중과 스폰서를 늘려서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파이를 키워 장기적으로 모든 선수와 프로 계약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생계와 병행해도 프로 향한 열망은 여전


이성화는 한겨레21을 만나기 한 달 전인 2025년 7월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1년 반 동안 스스로 갈고닦으며 쟁취한 계약이다. 일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다른 프로선수와 격차가 생길까봐 조바심이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하지 않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웨이트 등 필요한 개인훈련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프로에 대한 강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목표를 달성해서 좋다”고 말했다.

하시카와 감독은 “지금 WE리그에 있는 선수들이 일과 축구를 병행하다가 프로선수로 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축구를 대하는 마음, 프로선수가 됐다는 보람이 굉장히 남다른 것 같다”며 “일과 축구를 병행하는 기간이 실력과 태도를 쌓아가는 기간이라고 본다면 지금의 과도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단에서 선수 영입 등 선수단 운영을 총괄하는 산프레체 히로시마 레지나 구단의 고이치 가와이 강화부장도 “프로 계약과 아마추어 계약을 병행하는 것은 예산 문제도 있지만 사회인으로 선수를 성장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축구는 이렇게 준프로리그에서 프로리그로의 전환기를 차곡차곡 치열하게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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