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피해자를 여러 단계에 걸쳐 비참하게 만든다. 물리적 폭력이나 괴롭힘, 집단따돌림을 당할 때 피해자는 우선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고립으로 인해 비참해진다. 그다음에는 가해자가 자신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욱 비참해진다. 다음 단계는 자책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나에게 왜 이렇게 강렬한 적의를 보이는 걸까’ 생각하며 자신의 외모나 차림새, 말투와 행태 등에서 원인을 찾는다. 내가 맞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심지어 자신에게서 폭력의 원인을 찾는 것도 비참한 일인데, 최악은 아직 남아 있다. 피해자는 끝내 가해자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냥 그래도 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 그리고 가해자가 그냥 그래도 되는 배경에 자신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서열과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비참함은 무력감과 함께 극에 달한다.
그는 “애들 사이에서 왕”으로 불렸다. “왕”은 충남 천안 북일고 야구팀의 ‘에이스’다. 북일고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투수라는 얘기다. 심지어 같은 나이대 한국 최고 투수로 꼽히기도 한다. 피해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이 전국구 에이스의 폭력은 복종을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무람없이 심부름을 시켰다. 그다음에는 수치심을 안겼다. 샤워하는 알몸을 촬영한 것이다. 피해자가 어렵사리 그 영상을 삭제하자 이번에는 욕설이 시작됐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동원해 집단따돌림을 하게 했다.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피해자를 돕기 위해 에이스의 폭력을 고발했던 후배 두 명이 또 다른 욕설과 집단따돌림의 피해자가 됐다. 추가 피해자 중 한 명은 야구를 그만두고 학교를 옮겼고, 다른 한 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에이스의 폭력 가해가 가능했던 배경엔 스포츠에 만연한 실력 지상주의가 있다. 특히 구기 종목에선 에이스와 같이 실력이 뛰어난 선수의 팀 내 위상을 근거로 자연스레 가해자가 그냥 그래도 되는, 피해자는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서열과 계급구조가 형성된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프로팀의 지명을 받아 학교 이름을 알리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야구는 1년에 110명이 프로팀에 드래프트된다.) 이런 구조에서 “이른바 ‘잘하는’ 선수의 득을 보는 학교 관리자도, 지도자도, 선수도 그리고 학부모까지 동조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낸다”.(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학교와 교육기관은 야구팀 선수들의 실력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특히 북일고에서 야구부원은 담임교사와 마주칠 일도, 학기 초 상담도 하지 않는다. 공부나 학교생활은 중요하지 않고, 그냥 야구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거다. 이런 환경에서 감독과 코치 등은 에이스의 폭력을 “사소한 말다툼”으로 여겼고, 야구부장은 “훈계하고 타이르는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으로 판단하고 말았다.
“왕”이 비단 천안 북일고 에이스뿐일까. 한국의 학원 스포츠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체가 온통 능력주의에 기반한 서열과 계급구조를 당연시하는 한 “왕”은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다. “왕”들의 전횡 뒤에서 자책하며 자신을 버리는 수많은 피해자를 짓밟으면서 말이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