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학급의 아이들이 죽는다

이재훈 기자
입력
수정 2025.08.11. 오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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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2025년 8월4일 전쟁으로 인해 고향에서 쫓겨난 한 팔레스타인 소녀가 구호 식량을 받으러 와서 냄비를 들고 울부짖고 있다. EPA 연합뉴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은 집단살해죄를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구성원에게 행해진 살해 등’으로 규정했다. 이 협약은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집단살해(홀로코스트)에 맞서기 위해 제정됐다.

그런데 77년이 지나 이번에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이 가해자가 되어 저 규정에 해당하는 집단살해(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권단체 ‘점령지인권정보센터’와 ‘인권을 위한 이스라엘 의사회’마저 지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시민사회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25년 8월7일 가자지구를 완전히 점령하는 계획을 승인하기 위한 전쟁내각 회의를 소집했다.(이번호 이슈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7809.html)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범죄를 저지른 국가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8월5일 소셜미디어 엑스 공식 계정에 이렇게 썼다.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22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만8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폭격으로 죽고,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죽고, 의약품과 의료시설 부족으로 죽었다. 가자지구에서는 매일 어린이 28명이 살해당하고 있다. 이는 한 교실 규모다.” 튀르키예의 공영 국제뉴스 채널인 ‘티아르티(TRT)월드’는 8월4일 올린 기사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가자지구에서의 시간은 아이들의 삶으로 측정된다. 거의 2년 동안 매시간 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이스라엘에 학살당했다.”

튀르키예의 공영 국제뉴스 채널인 ‘티아르티(TRT)월드’가 만든 ‘이스라엘이 매시간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한 명씩 살해하고 있다’는 제목의 그래픽


‘매일 한 학급 규모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매시간 한 명씩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는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끔찍하다. 한 어린이의 모든 가능성과 꿈이 학살에 의해 한순간 소멸하는 일이 지난 2년 동안 매시간 한 번 이상, 1만8천 번이나 일어났다. 이런 참극 앞에서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저 문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세계 시민들은 이 문장에 답하고 있는 것 같다. 8월3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하버브리지에서는 폭우와 강풍 속에서도 주최 쪽 추산 약 3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즉각 휴전”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영국 런던과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도 가자지구에서 식량 배급을 기다리던 중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나온 시민들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온라인 뉴스 플랫폼 ‘인디(indy)100’의 7월29일 보도를 보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 시민들과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튀르키예 시민들이 플라스틱병에 쌀과 밀가루, 렌틸콩 등을 채워 지중해에 던지고 있다. 가자지구의 굶주린 주민들에게 이 병에 담긴 식량이 가닿길 바라는 것이다. 실제 TRT월드가 공유한 영상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플라스틱병을 들고 “이집트 형제들이여, 렌틸콩과 쌀이 담긴 병이 가자지구 해안에 도착했다”고 말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2025년 8월3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하버브리지에서 이스라엘의 행동과 가자지구의 지속적인 식량 부족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가 펼침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 모든 움직임이 굶주리는 가자,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쓰러지는 가자, 자신들의 땅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가자를 향한 연대다. 사람이 만드는 희망으로 참극을 밀어내기 위한 연대 말이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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